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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6 이후 불패 신화 ‘품새 퀸’…태권도계 김연아 될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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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 이주영

‘품새 퀸’ 이주영(조원고 2)이 태권도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태권도 품새 국가대표인 이주영은 지난 4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2022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 여자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생 때부터 ‘천재 품새소녀’로 이름을 날렸던 그의 경기 영상 중에는 357만 뷰를 넘는 것도 있다.

이주영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지금까지 출전한 개인전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불패 신화’를 써 가고 있다. 김연아가 대한민국 피겨의 위상과 인기를 단번에 끌어올린 것처럼 ‘태권도계 김연아’ 이주영이 태권도 품새를 인기 스포츠 반열로 끌어올릴 거라는 기대감도 크다.

이주영이 운동하고 있는 경기도 수원의 태권도장에서 그를 만났다. 스승인 송기성 관장이 운영하는 이 도장에는 30여 명의 엘리트 품새 선수들이 수련하고 있다. 도장 이름은 ‘국가대표효자효녀체육관(KHH)’이다.

겨루기는 너무 아파 품새에 매달려

태권도 자유품새 종목 청소년부 국가대표인 이주영 선수가 지난 13일 수원시 국가대표 효자효녀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표 등을 밝혔다. 정준희 기자

태권도 자유품새 종목 청소년부 국가대표인 이주영 선수가 지난 13일 수원시 국가대표 효자효녀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표 등을 밝혔다. 정준희 기자

도장 이름이 재미있네요. 무슨 뜻을 담고 있나요.
“저도 자세히 몰라서 관장님께 여쭤봤는데 태권도 수련을 하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거고, 태권도인은 모두 효자 효녀가 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요. 저도 이제 부모님께 자랑거리가 됐으니까 나름 효녀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태권도를 하게 됐나요.
“태권도를 처음 접한 건 아기 때, 기저귀 차고 다닐 때부터였어요. 아버지가 태권도장을 운영하셔서 도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아기 때부터 언니 오빠들 하는 품새를 뒤에서 뒤뚱뒤뚱 따라했거든요. 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신 아버지가 품새 전문 도장을 운영하시는 송 관장님께 데려오셨죠.”
보통은 겨루기를 하다가 품새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금은 추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대회는 안 나갔지만 겨루기는 좀 했어요. 국기원 심사할 때 겨루기를 했는데 정강이를 맞고 너무 아팠어요. ‘이러다 죽겠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싶어서 품새에 더 매달리게 됐죠. 하하.”
초등 6학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던데 특별한 훈련법은.
“남다른 훈련법은 없고, 그냥 남들이랑 똑같이 하는데 아기 때부터 승부욕이 많이 세서 초등학생 때도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 이기고 싶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했어요. 송기성 관장님이 운동할 때 칭찬을 잘 안 해 주세요. 칭찬 받고 싶어서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선수 영상에 ‘예술이다’ ‘교과서다’ 같은 댓글이 달리는데, 본인은 어떤 표현을 쓰고 싶은가요.
“예전보다 더 성장하는 모습이요. 지금은 품새의 교과서라고 하는데 교과서를 더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예 새로운 교과서를 쓰는 선수라는 수식어를 받고 싶습니다.”

지난 세계품새선수권에서 이주영 선수가 우승한 뒤 펑펑 울면서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8강전 금강 품새 도중 한쪽 발로 서는 학다리 자세에서 중심을 잡지 못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탈락의 위기까지 갔지만 다른 품새에서 상대 선수보다 월등한 점수로 앞선 덕에 겨우 이겼고, 결국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

태권도 자유품새 종목 청소년부 국가대표인 이주영 선수가 지난 13일 수원시 국가대표 효자효녀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표 등을 밝혔다. 정준희 기자

태권도 자유품새 종목 청소년부 국가대표인 이주영 선수가 지난 13일 수원시 국가대표 효자효녀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목표 등을 밝혔다. 정준희 기자

세계선수권 영상을 보셨나요.
“품새 하는 건 봤는데 우승하고 우는 건 아직 안 봤어요. 너무 창피해서요. 그래서 후회하고 있어요. 울지 말 걸. 8강전 때 경기장에 들어가면서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실수를 했거든요. 경기장 바닥이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살짝 간지러웠어요. 개인전에선 져본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지는 건가’ 싶었죠.”
본인의 영상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남들이랑 똑같아 보이는데…. 좀 다른 건 전체적으로 저는 살짝 단단한 게 보이고 순간 속도도 남들보다 조금 빨라서 사람들이 원하는 품새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이 선수의 영상에 대해 ‘2배속으로 돌려놓은 거 아니냐’는 댓글이 많이 올라온다.)
‘태권도계 김연아’ 얘기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김연아 선수님한테 조금 죄송스럽고요. 김연아 선수, 아니 운동선배님 귀에 들어가면 별로 안 좋아하실 수도 있어요.”
오히려 기특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품새가 더 인기를 얻으면 김연아보다 더 화려한 선수도 될 수 있잖아요.
“아, 그럴까요? 우리 전체 태권도인이나 품새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되는 게 좋은 거겠네요. 그렇다면 제가 더 열심히 해서 진짜 태권도계 김연아가 되겠습니다.”
그 유명한 ‘유퀴즈’ 프로그램에도 출연한다면서요.
“네. 근데 유재석 아저씨 직접 보면 너무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요. 남들이 부러워하니까 기분은 좋은데요. 그만큼 띄워 놨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있어요. 무패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 그걸 깨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기록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자체를 제가 깨버리겠습니다.”

고교 졸업 때까진 무패기록 안 깰 것

그럼 은퇴할 때까지 한 번도 안 지겠다는 뜻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관장님이랑 약속한 건 내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지키자는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니까 7년이 되는 거죠. 그 뒤에는 태권도에만 너무 열중하기보다는 그동안 못해 봤던 걸 접해보고 싶어요.”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고2의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50분에 일어나서 화장도 못 하고 학교에 갑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화장 하거든요. 오후 5시에 수업 끝나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한 뒤에 7시부터 10시까지 도장에서 운동을 합니다. 개인 시간이 없지만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서 곯아떨어지는 순간까지 30분 정도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친구들이랑 카톡도 하고, 재미있는 유튜브도 보고요. 잠들기 직전 졸릴 때가 제일 행복해요. 하하.”
앞으로 목표와 계획은.
“작년에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국제적인 인기를 얻었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그런 시범단 같은 데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 태권도와 품새를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품새가 올림픽 종목에 들어간다면 당연히 출전해서 금메달 따야죠. 제가 30살 되기 전에 올림픽 종목이 되겠죠? 서른 넘으면 좀 힘들 것 같아서요.”
중앙UC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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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된 품새, 올림픽 진입도 노려

“세계 곳곳의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요. 태권도도 연령에 맞춰 품새를 개발하면 모두가 편하고 즐겁게 수련할 수 있을 겁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는 지난해 12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권도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무도이자 스포츠가 되기 위해서는 품새 태권도가 더 확산돼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태권도 경기는 크게 겨루기와 품새로 나뉜다. 현재 올림픽에 걸린 8개의 금메달(남자 4체급, 여자 4체급)은 모두 겨루기에서 나온다. WT는 품새의 올림픽 종목 채택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올림픽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설득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품새는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는 채택돼 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부터 세부 경기가 열렸다.

품새 경기는 지정된 시간(1~2분 이내)에 고려·금강·태백·비각·한류 등 개별 품새 중에서 주최 측이 지정한 것을 경연한다. 심판이 1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채점 기준은 정확성(3점: 기본동작, 각 품새별 세부 동작), 숙련성(4점: 균형 및 동작의 크기, 속도와 힘), 표현성(3점: 강유, 완급, 리듬, 기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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