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관심 MZ세대 ‘제로 탄산’ 열풍, 콜라·사이다 불티

중앙선데이

입력 2022.06.18 00:02

업데이트 2022.06.1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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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호 08면

탄산의 경제학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코카콜라 주식을 사 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코카콜라 주식을 팔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오랜 선택이 최근 증시 투자자 사이에서 다시 화제다. 이달 현재 코카콜라 주가는 반년 전보다 20%가량 오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기간 글로벌 통화 긴축 공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등 초대형 악재로 미 증시 3대 지수가 20~30% 하락하고 구글·애플 등 다른 우량주들이 나란히 고꾸라진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 역주행이다.

여기에 코카콜라의 라이벌 기업 펩시코(펩시콜라 제조사)도 1년 전보다 주가가 오른 상태로 증시에서 선방하고 있다. 두 기업이 단순히 불황 국면에 강한 식음료주인 때문일까. 하지만 이 경우 스타벅스 주가가 반년 동안 약 35% 빠진 것은 설명이 안 된다. 더구나 스타벅스는 글로벌 ‘위드 코로나’ 전환의 대표적 수혜 대상이었다. 이에 식음료 업계에선 코카콜라와 펩시코의 최고 무기, 바로 탄산(sparkling)이 한층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란 가설을 내놓는다. 코카콜라는 콜라 외에도 ‘스프라이트’ ‘환타’ 등 500종이 넘는 탄산음료를 제조한다. 펩시코도 인기 음료 ‘마운틴듀’ 등을 보유해 두 기업이 세계 탄산음료 시장을 확고히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탄산음료 시장 580조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탄산음료 시장은 지난해 4500억 달러(약 580조원) 규모였던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연평균 5%가량 성장해 2028년엔 6300억 달러(약 81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이미 4000종이 넘는 코카콜라 전체 음료 제품의 10%대에 불과한 500여 종의 탄산음료에서 이 회사 전체 판매량의 60%대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탄산음료의 인기 자체는 그동안 꾸준했다. 코카콜라는 1800년대 후반부터 130년 넘게 인류 입맛을 사로잡은 스테디셀러다. 펩시코도 2000년대 들어 코카콜라를 제치고 첫 업계 1위에 오른 바 있을 만큼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처럼 새로울 게 없던 탄산음료의 인기에 어떤 가속 페달이 추가된 걸까. 국내 업계 관계자는 “20대와 30대 ‘MZ세대’ 사이에서 이른바 ‘제로 탄산’에 열광하는 마니아가 급증해 전체 탄산음료 시장 저변이 과거보다 대폭 확대됐다”고 말했다. 제로 탄산은 제로 칼로리 탄산음료의 준말이다. 콜라 등 기존 탄산음료는 단맛을 내기 위해 설탕을 많이 첨가한 고칼로리 음식이라 사람 건강에 안 좋은 면이 있다. 이와 달리 제로 탄산은 설탕 대신 열량이 없거나 극히 적은 아스파탐 등 인공 감미료를 써서 단맛을 낸다. 이 때문에 건강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상대적으로 좋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활동량이 줄면서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아진 MZ세대가 집중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지난해 334억3000만 달러였던 세계 스파클링 워터(탄산수) 시장 규모는 2028년 769억5000만 달러로 연평균 12.6%의 급성장이 예상된다. 같은 기간 5%대로 예상되는 전체 탄산음료 시장의 성장세를 훨씬 웃돈다. 탄산수는  대부분이 무설탕 제품이라 제로 탄산 열풍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국내에서도 전체 탄산음료 시장 규모가 연평균 3.8% 성장(소비량 기준)할 동안 제로 탄산 시장 규모는 2016년 903억원에서 지난해 2189억원으로 5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유로모니터 집계). 그만큼 일반 탄산음료에 비해서도 제로 탄산의 수요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MZ세대가 이렇게 제로 탄산에 열광하면서 ‘설탕은 포기해도, 탄산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건강만 생각하면 녹차처럼 칼로리와 탄산 둘 다 없는 음료를 고를 수도 있는 일이다. 직장인 문지영(32)씨는 “탄산음료 특유의 톡 쏘는 청량감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제격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빠른 경제적 자립과 여가생활을 중시하는 MZ세대는 회사나 학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밤잠을 아껴 투잡(two jobs)에 몰두하거나 투자 공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또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공간) 이용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로 인해 심신이 늘 피곤한 상태에서 건강하고 기분 좋게 졸음을 물리치는 각성제 용도로도 제로 탄산을 찾게 된다는 게 문씨 같은 MZ세대의 설명이다.

“건강에 유리한 음료 관심 커질 것”

서울 강남의 탄산 전문 카페에서 소비자들이 탄산커피 등을 즐기고 있다. [사진 카페뽀글]

서울 강남의 탄산 전문 카페에서 소비자들이 탄산커피 등을 즐기고 있다. [사진 카페뽀글]

이에 국내외 기업들은 앞 다퉈 제로 탄산과 MZ세대 공략에 적극 나섰다. 이는 국내 시장 분위기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코카콜라는 기존 ‘코카콜라 제로’에서 레시피를 변경 적용한 제품을 올 3월부터 한국에서 LG생활건강을 통해 유통하고 있다. 연내 제로 탄산 라인업 확대도 계획 중이다. 펩시코는 지난해 한국에서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선보인 ‘펩시 제로 슈거’가 라임향을 첨가한 차별화 요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제조사의 반격도 만만찮다. 올 4월 롯데칠성은 과일향 제로 탄산 ‘탐스 제로’ 3종, 웅진식품은 ‘815 피즈 제로’를 각각 선보였다. 롯데칠성은 지난해 ‘칠성사이다 제로’의 국내 판매량이 1억 캔을 돌파해 고무된 분위기다.

SNS로 MZ세대와 격의 없이 소통 중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신세계푸드도 콜라와 사이다를 자체 개발, 최근 제로 탄산 제품까지 내놨다. 이런 흐름을 타고 국내에서 탄산을 테마로 삼은 이색 창업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올해 서울 교대역 인근에 문을 연 ‘카페뽀글’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색적인 탄산 전문 카페다. 전형적인 탄산음료를 제공하는 대신 커피와 홍차, 허브차 등에 저당 또는 무당의 탄산을 가미한 자체 개발 음료 메뉴로 제로 탄산 마니아들에게 어필한다. 그랜드뷰리서치는 아직 틈새시장으로 형성된 세계 탄산커피 시장이 2028년까지 연평균 13%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제로 탄산 열풍이 향후 전체 탄산음료 시장의 판도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에서 건강 정보를 공유하는 소비자가 급증한 만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건강에 유리한 식음료에 대한 관심도가 꾸준히 높을 것”이라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제품군이 과거 대비 대폭 늘어난 것도 더 많은 소비자 발걸음을 이끄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국내외 증시 투자에선 탄산 관련 종목이 그간 전체 장세(場勢)에 비해 두드러진 주가 상승을 했던 만큼, 신규 진입엔 어느 정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선 제기된다.

원유 정제과정서 나오는 탄산, 공급망 대란에 수급 비상
코카콜라는 이달부터 국내에서 스프라이트·환타 등 주요 탄산음료 가격을 약 5%씩 인상했다. 주요 경쟁사들도 가격을 이미 인상했거나 인상 시점을 저울질 중이다. 세계를 덮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여파로 각종 원부자재 가격이 오른 게 작용했다. 이에 더해 ‘탄산 공급망 대란’이 기업들을 덮쳤다. 탄산은 정유 업계의 원유 정제나 석유화학 업계의 원자재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1차 생성된다. 이것을 탄산 기업들이 액화탄산으로 만들면 고압가스 업계가 탄산음료 제조사 등에 납품하는 구조다.

그런데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급등, 기업들이 수소 제조 때 나프타 대신 천연가스(LNG)를 이용하게 되면서 탄산 생산량도 평년 대비 5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 한국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탄산 생산량은 지난달 2만4470t이었고 이달엔 1만5430t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 대비 70~80% 수준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2분기에 정기 시설 보수에 나서면서 생산 일정이 일시 지연된 것도 탄산 생산량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탄산음료 제조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제로 탄산의 폭발적 인기로 가뜩이나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거꾸로 공급은 기존보다 태부족한 수급 불균형에 직면해서다. 게다가 여름철 성수기를 코앞에 두고 벌어진 상황이라 전망은 더 좋지 않다. 그나마 탄산 재고 보유량이 많은 대기업들은 사정이 낫지만 뷔페나 패스트푸드 등 눈앞의 탄산음료 수요가 많은 중소 규모의 외식 업계 발등엔 이미 불이 떨어졌다. 이 같은 사태에 정부도 관련 업계와 함께 대책 마련을 강구 중이다.

특히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정기 시설 보수가 2~3년 주기로 실시되는 만큼, 탄산 공급망 대란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심승일 고압가스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은 “유통 업계가 드라이아이스 대신 얼음팩을 이용하는 등의 상생 노력을 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통 업계는 신선식품 포장과 배송에 드라이아이스를 많이 쓰고 있다. 이런 드라이아이스는 탄산으로 만들어야 해서 시중의 탄산 공급량이 이쪽으로 갈리는 효과가 생긴다. 얼음팩은 드라이아이스와 같은 용도로 쓸 수 있지만 제조하는 데 탄산이 없어도 돼 탄산 수급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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