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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똥 싸지마"…흙수저 대학생과 살게된 나문희 첫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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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하는 '룸 쉐어링'은 까다롭고 별난 할머니 금분(나문희)과 흙수저 대학생 지웅(최우성)의 한집살이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22일 개봉하는 '룸 쉐어링'은 까다롭고 별난 할머니 금분(나문희)과 흙수저 대학생 지웅(최우성)의 한집살이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할머님들이 혼자 계시는데 공간이 있으면 룸 쉐어링(room sharing) 해서 학생들과 살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주연 영화 ‘룸 쉐어링’(22일 개봉)에서 독거노인과 대학생의 한집 살기를 간접 경험한 배우 나문희(81)의 말이다. 그는 공동 주연을 맡은 신인 배우 최우성, 이 영화로 장편 연출 데뷔한 이순성 감독과 함께 15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시사 및 간담회에 참석했다.

22일 개봉 영화 '룸 쉐어링' #나문희, 평생 혼자 산 금분 역 #대학생 세입자 들이며 삶 변화 #"챙겨주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두는 것, 제가 바라는 가족이죠"

출연 작품마다 소외된 노년층의 목소리가 돼온 나문희다.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7)의 남편한테 무시당하고 며느리한테 치이는 문희,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옥분, ‘오! 문희’(2020)의 치매 노인 문희 등이다. ‘룸 쉐어링’에선 피붙이 없이 혼자 사는 금분이 됐다. 사람을 잘 믿지 못 하던 금분은 아파트 빈방에 대학생 지웅(최우성)을 세입자로 들이면서 변화하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혼자서 학비‧생계를 충당해온 지웅도 까칠한 금분의 진짜 속사정을 이해해간다.

나문희 "챙겨주고 사랑하고 자유롭게 두는 게 가족"

15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 영화관에서 열린 영화 '룸 쉐어링' 언론시사 후 주연 배우 최우성(왼쪽부터)과 나문희, 이순성 감독이 포즈를 취했다. 이 감독은 “‘룸 쉐어링’은 하나의 판타지”라 밝혔다. 외로운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희망적 상상을 보탰다는 점에서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15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 영화관에서 열린 영화 '룸 쉐어링' 언론시사 후 주연 배우 최우성(왼쪽부터)과 나문희, 이순성 감독이 포즈를 취했다. 이 감독은 “‘룸 쉐어링’은 하나의 판타지”라 밝혔다. 외로운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희망적 상상을 보탰다는 점에서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지난 5월 이 영화가 초청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고 오늘 또 봤다”는 나문희는 “영화가 참 따뜻하다”면서 “너무 실감 나고, 세상에 이렇게 외롭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감동스럽게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가족이란 그날 하루 어떻게 지냈나, 걱정해주는 것”이라며 “뭐가 필요한지 챙겨주고 사랑하고 편안하게 그냥 그 자리에 자유스럽게 두는 게 제가 바라는 가족”이라고 영화가 전하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짚었다.

영화는 세대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의 일상사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버무려냈다. 금분은 평생 낯선 남자와 한 변기를 써본 적 없다며 이사 온 첫날 지웅에게 “집에서 똥은 싸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청소‧절약 지침은 기본, 금분이 빨강(금지 구역), 노랑(공용 구역), 파랑(지웅 생활 구역) 테이프로 철저히 구분한 아파트 거실은 몬드리안 그림을 방불케 한다. 이런 짠내 나는 생활상을 키득대며 쫓노라면 그간 가슴에만 담아왔던 두 사람의 삶의 애환에 다다른다. 각자의 아픈 사연은 극 후반부 가서야 드러난다. 눈물기 걷어낸 담백한 어조여서 더 울림이 크다.

감독 실제 주택정책·맥도날드 할머니에 영감받아

‘아이 캔 스피크’ ‘사자’ ‘82년생 김지영’ 등에서 영화 동시 녹음 감독으로 활동해온 이 감독이 실제 서울시 청년 주택 정책에 영감 받아 각본까지 쓴 작품이다. 고립되기 쉬운 독거노인 집에 대학생이 저렴한 비용으로 세 들어 살 수 있게 연결해주는 정책이었다. 여기에 10여년 전 서울 정동 등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거리 생활을 하던 노인의 반전 과거가 드러나 화제였던 ‘맥도날드 할머니’ 사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는 또 노인 고독사, 빈부 격차, N포세대 문제부터 파독 간호사, 유품 정리사, 펫시터 등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여러 소재를 섞어냈다. 산만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는 상황에서 나문희는 영화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연기의 달인”이란 이 감독 표현대로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과 866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수상한 그녀’(2014) 못지않게 그가 매 장면을 쥐락펴락했다. 괴팍한 금분의 성격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캐릭터 묘사로 영화의 긴장감이 떨어질 법한 대목마다 관객의 시선을 되돌려 놓는다. 금분의 반전 과거가 느닷없이 느껴지지 않는 데에도 이런 연기력에 더해 나문희 스스로 다양한 도전을 거듭해온 이미지가 한 몫 한다. 나문희는 올 초 JTBC 예능 ‘뜨거운 싱어즈’에서 여든다섯 김영옥 등과 합창단을 결성하며 “할머니들도 집구석에만 있지 말고 좀 나와서 노래도 하고, 우리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문희 "늙어서 못 한다는 생각 없어…좋아서 합니다"

지웅(왼쪽) 역할의 최우성은 '룸 쉐어링'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15일 간담회에서 그가 "촬영하는 동안 나문희 선생님을 의지했다. 과일, 음식도 주시고 잘 챙겨주셨다"고 하자 나문희는 "내 손자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화답했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지웅(왼쪽) 역할의 최우성은 '룸 쉐어링'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15일 간담회에서 그가 "촬영하는 동안 나문희 선생님을 의지했다. 과일, 음식도 주시고 잘 챙겨주셨다"고 하자 나문희는 "내 손자라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화답했다. [사진 엔픽플, 트윈플러스파트너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묻자 그는 “좋아서 하는 것”이라며 “저는 사람이 늙어서 못 한다는 생각이 없다. 철이 없는 모양이다.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연기를 내 나이에 맞게, 또 내 차례가 오니까 그냥 한다”고 말했다. 출연작 선택 기준에 대해선 “이 나이에 뭔 기준이 있겠나. 하라면 좋아서 한다”면서도 “‘룸 쉐어링’ 같이 외로운 할머니, 치매도 여러 치매를 연구하려 한다. 이제 할 역할은 치매 환자가 많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노년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지를 밝힌 셈이다. “누구나 다 좋아서 하겠지만 저는 (연기가) 정말 좋습니다. 내일이면 또 무슨 일이 있을까. 그냥 남의 신세 지지 말고 세상을 갔으면, 제일 좋은 게 그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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