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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에 연일 ‘中 역할론’ 부각 美…中 ‘코로나 영향력’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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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사실상 완료한 가운데 미국이 연일 이를 막기 위한 ‘중국 역할론’을 띄우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의 핵실험을 바라지는 않지만, 치열해지는 미‧중 간 경쟁 구도 등을 함께 고려하는 분위기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中과 소통" 연일 강조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 민간연구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주관한 대담에서 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중국과의 협의 관련 질문에 “북한이 핵실험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를 두고 중국과 소통해왔다”고 답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두고보자”라면서다.

앞서 그는 지난 13일 룩셈부르크에서 양제츠(杨洁篪)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과 만나 북핵 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논의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는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지난 7일 전화브리핑에서 “우리는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공유한다고 여전히 믿는다”며 “북한이 한반도와 그 너머에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동을 삼가는 게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이크 설리번(오른쪽)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왼쪽)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회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캡처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제이크 설리번(오른쪽)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왼쪽)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회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캡처

핵실험 시 책임론 명분 쌓기

미국이 연일 중국 역할론을 띄우는 건 현 상황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7차 핵실험은 이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엔 동시에 북한이 결국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중국의 책임론을 제기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사후적으로라도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 등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중국을 향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 기관도 제재) 적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지난달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뒤 부결이 뻔한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 결의 채택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고, 중국의 거부권 행사를 공식 기록으로 남긴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미국은 두고두고 이를 근거로 중국을 비판하고 있다.

실제 북한이 거침 없이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던 2016~2017년에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 중국이 안보리 등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의 ‘뒷배’ 역할을 자처하는 데다 최근 북한의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는 ‘방역 동아줄’ 역할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제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 실험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는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제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이 실험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장착할 수 있는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코로나ㆍ제재에 中 더 의존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7일에도 코로나19로 의심되는 신규 발열 환자가 하루 사이(15일 오후 6시~16일 오후 6시) 2만 3160여명 발생했다며 사흘째 2만명대 발생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적 완쾌율이 99.104%라고도 밝혔다.

과장된 통계일 가능성이 크지만, 북한이 이처럼 확산세를 잡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중국산 백신 등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방역 물자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제재 장기화 국면에서 ‘뒷문’을 열고 숨통을 틀 수 있는 통로로도 중국이 가장 유력하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 미사일까지는 두둔해왔지만, 핵실험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동북아 유일의 핵보유국’이라는 지위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 대사도 지난 9일 방송에 출연해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확고부동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느 측이 핵을 갖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ㆍ중 갈등에 영향

게다가 올가을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20차 전국대표대회도 앞두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감행은 시 주석의 위상에 손상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핵 문제는 이미 미‧중 간 갈등 전선의 소재로 자리 잡은 분위기다. 안보리에서 벌어지는 극한 대립이 방증이다.

북한의 ICBM 도발에도 중국은 “미국이 북한의 모라토리엄(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중단)에 보상하지 않고 압박만 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식의 궤변을 댔다. 북핵 문제도 미국과의 전략 경쟁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북한의 핵실험 감행이 끼칠 전략적 손해와 대미 강경노선 유지에 따른 전략적 이익 사이에서 속내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국제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 상황과, 향후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할 경우 마주할 책임론에 대한 부담이 크다"며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초점을 흐리거나 미국 대북 정책의 한계를 부각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방관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제동을 걸만한 의지와 영향력을 사실상 잃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ㆍ중 관계 전반에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과거만큼 크지 않다"며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한 국면에서도 미국의 책임론을 띄우고 한국전쟁을 소환하는 것으로 보아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감행하더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말릴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핵실험은 ‘일시 정지’시켜둔 가운데 우선 민심 다독이기에 여념이 없다. 코로나19에 이어 일부 지역에서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창궐하자 김정은을 비롯한 지도부가 발 벗고 나서 의약품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이 황해남도 해주시 일대에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최고지도자 용으로 준비된 의약품을 해주시에 지원하면서 각종 대응책을 지시했다. 뉴스1

북한이 황해남도 해주시 일대에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16일 밝혔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최고지도자 용으로 준비된 의약품을 해주시에 지원하면서 각종 대응책을 지시했다. 뉴스1

北 의약품 기부 행렬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의 책임일군(간부)들인 조용원 동지, 이일환 동지, 김여정 동지, 현송월 동지는 16일 가정에서 성의껏 마련한 의약품을 급성 장내성 전염병이 발생한 황해남도 해주시와 강령군의 주민세대들에 보내달라고 부서 초급당위원회에 제기하였다”고 보도했다. 전날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직접 ‘1호 약품’을 하사한 데 이은 조치다.

통신은 전염병이 퍼진 규모를 800세대로 밝혔는데, 최소 주민 2000여명이 콜레라, 이질, 티푸스 등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

통신은 또 전날 김정은이 보낸 약품이 주민들에게 전달됐다며 “사랑의 불사약을 받아안은 해주시 인민들은 고마움의 눈물로 두 볼을 적시며 ‘김정은 동지 만세!’를 목청껏 외쳤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 이어 또 ‘사랑의 불사약’을 들고나온 건 그만큼 민심 동요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핵 도발 스케줄 역시 이런 내부 사정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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