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1세 이원희 ‘올림픽이여, 다시 한 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2004 아테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원희가 14년 만에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용인대 유도장에서 만난 그는 도전자를 뜻하는 청색 도복을 입었다. 김상선 기자

2004 아테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이원희가 14년 만에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용인대 유도장에서 만난 그는 도전자를 뜻하는 청색 도복을 입었다. 김상선 기자

“저 다시 시작합니다. 목표는 2024년 파리 올림픽이에요.”

한국 유도의 살아있는 전설 이원희(41·용인대 교수)가 현역으로 전격 복귀한다. 2008년 오른발 부상으로 은퇴한 지 14년 만이다. 16일 용인대 내 유도장에서 만난 이원희는 유도복을 입은 30여명의 거구들과 뒤엉켜 땀범벅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쉬지 않고 상대를 메쳤다. ‘진짜 돌아올 줄 몰랐다’고 하자, 이원희는 “나는 유도를 걸고 농담하지 않는다. 컨디션과 감각을 끌어올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1분 1초가 아까울 만큼 진심을 다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유도 경기에서 흰색 도복은 챔피언이나 랭킹이 더 높은 선수, 청색은 도전자를 뜻한다.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이원희. [중앙포토]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이원희. [중앙포토]

이원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유도 남자 73㎏급 금메달리스트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유도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모두 우승)을 달성했다. 최전성기를 달리던 2003년엔 국제 대회 48연승(8연속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이중 무려 44경기가 한판승이었다. 무적이었던 그에겐 ‘한판승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주특기인 빗당겨치기를 비롯해 배대뒤치기, 업어치기 등 한국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기술이 다양했던 이원희는 웬만해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유도 종주국 일본 선수들에게도 경계 대상 0순위였다.

감독을 해야 할 나이에 그가 매트에 돌아온 이유는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서다. 1981년생 이원희는 “선수 시절 많은 사람의 응원과 도움으로 챔피언이 됐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그분들이 힘들어하더라”면서 “내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힘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특히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평범한 40~50대 아재들에게 ‘마흔 넘은 이원희도 저렇게 악을 쓰며 20대와 뒹구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 다카마쓰를 꺾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이원희. 한국 유도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순간이다. [중앙포토]

일본 다카마쓰를 꺾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한 이원희. 한국 유도 최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순간이다. [중앙포토]

이원희는 지난해 7월부터 84㎏였던 체중을 77㎏까지 감량했다. 본격 훈련은 12월부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1시간 동안 동네 뒷산을 달리고, 다시 1시간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선수 시절 못지않은 ‘지옥 코스’다. 이원희는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많은데, 그럴 땐 ‘유도가 이원희고, 이원희가 유도’라는 좌우명을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 ‘내 41년 인생 자체가 유도인데, 여기서 포기할 순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유도 훈련은 오후 유도학과 실기 강의 시간을 통해 해결한다. 대학 선수들과 겨루면서 실전 감각을 쌓는다. 퇴근 후에도 훈련은 계속된다. 탁구 국가대표 출신 아내 윤지혜(39)는 든든한 조력자다. 이원희는 “집에선 아내의 코칭을 받는다. 훈련할 때만큼은 코치와 선수처럼 깐깐한 지도를 받는다”며 웃었다.

현역 시절처럼 고무 밴드를 당기며 근력을 키우는 이원희. 김상선 기자

현역 시절처럼 고무 밴드를 당기며 근력을 키우는 이원희. 김상선 기자

지난 6개월간 흘린 땀방울은 성과로 이어졌다. 이원희는 최근 한 예능 프로에서 마련한 이벤트 경기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김대현(20)을 꺾고 건재를 알렸다. 먼저 절반을 뺏겼으나, 경기 종료 55초를 남기고 밭다리후리기 한판승을 따내며 역전승을 거뒀다. 이원희는 “마음속으로 ‘너무 빨리 이겨버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할 만큼 자신 있었는데, 예상대로 돼 짜릿했다”고 말했다.

이원희는 오는 11월 열리는 2023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을 준비 중이다. 마침 남자 73㎏급은 안창림의 은퇴로 1진 자리가 공석이다. 최종 목표는 파리 올림픽이다. 그는 “나가도 그냥 참가로 끝나면 안 된다. 올림픽 2연패를 이룬 세계 최강 오노 쇼헤이(일본)를 꺾고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