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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생각, 해도 괜찮아. 모두 너란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2.06.17 06:00

업데이트 2022.06.17 10:15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2003년 개봉한 일본 영화 ‘사토라레’를 아시나요? 3살 때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외과 의사가 주인공인데, 특이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주위 사람들에게 그대로 들리는 거예요.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고요.사토라레는 마음속 생각을 남에게 들키는 사람이란 뜻이죠. 영화를 보며 궁금했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에 이 의문이 풀렸어요. 이탈리아 그림책 작가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를 읽으면서요. 그래서 오늘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유리 아이는 몸이 투명합니다. 그래서 생각과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죠. 남다른 외모(온몸이 유리잖아요!)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관심을 한 몸에 받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아이를 칭송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이 변하는 덕분에 어느 장소와도 잘 어울린다고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읽혀 대화하기 쉽다는 것도 사람들은 칭송하죠. 하지만 유리 아이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의 생각이 많아졌거든요. 투명한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좋은 생각 뒤로 점차 나쁘고 부정적인 생각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흉한 것들을 보여주는 게 창피하지도 않니?”
아이의 생각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이 불순하다고 다그치더니, 아예 생각하지 말라고까지 합니다. 어른들의, 그것도 무자비한 비난을 무심히 넘길 수 있는 아이가 있을까요? 게다가 이 아이는 예민합니다. 유리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상처를 받으면 몸에 금이 가죠. 아이를 안고 보듬어주면 좋을 텐데, 사람들은 깨지고 금 간 아이를 피합니다. 불쾌하다는 겁니다. 아이는 억울합니다. 스스로 몸을 깨부술 수도, 생각을 감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트레싱지(반투명 종이)를 이용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등 인간의 다면성을 표현했다.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트레싱지(반투명 종이)를 이용해 긍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생각 등 인간의 다면성을 표현했다.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이 책을 집어 든 건 몸이 유리로 된 아이라는 소재에 끌려서였어요. 작가의 남다른 상상력이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아렸습니다. 유리 아이가 남 같지 않았거든요.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건 그림책 밖에 사는 우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또래 관계가 일상의 전부인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중요한 일이고요. 저 역시 매일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자극받으며 살고 있죠.

유리 아이가 남 같지 않아지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하지만 어른도 그러기 쉽지 않죠. 유리 아이는 도망칩니다. 어딘가에는 자기 생각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곳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유토피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요. 작가 역시 그 사실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유리 아이를 이해해준 곳은 없었다고 쓰거든요. 그림책이니 해피엔딩으로 쓸 법도 한데요, 작가는 냉정했습니다.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유리 아이는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자신은 가냘프지만 빛나고, 예민하지만 투명한 존재라는 걸요.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도 나라는 걸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보듬어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것도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고 안아줘야 상황이 바뀐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인간은 누구나 남과 다른 면을 갖고 있고, 그 개성을 스스로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이 책이 주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유리 아이는 어디서 이 깨달음을 얻은 걸까? 이 의문을 해결하려고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봤는데요, 그제야 유리 아이가 집을 떠나있던 시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리 아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곳, 유토피아를 찾아다니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 책에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 다움’의 중요성을 깨닫기 위해선 방황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죠.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유리 아이』. [사진=출판사 이마주]

“집으로 돌아온 유리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알아가고 있어요.”   

작가는 마지막까지 유리 아이가 나 다움을 완성했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고 썼죠. 여기에 두 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나 다움은 한순간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타인에게 평가받고, 상처받고, 흔들리며 완성해 가는 그 여정 자체가 나다움입니다.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아 온몸에 금이 가더라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거죠.

이 책은 쉬워 보이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습니다. 깊이가 있죠.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함께 존재하는 게 인간이니까요. 그런 인간을 다루는 게 간단할 리가요. 친절하게도 작가는 트레싱지(반투명 종이)를 이용해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겹겹이 쌓아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을 시각화했죠. 또 주변 사람의 얼굴은 콜라주 기법으로 그려 넣어 인간의 변덕스러움을 표현했고요.

아이가 책을 어려워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유리 아이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상황마다 변하는 유리 아이의 마음을 유추하며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것부터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 될 테니까요.

· 한 줄 평 ‘나 다움’은 한 순간에 깨우칠 수 없습니다. 밝지만 어둡고,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이기도한 이중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끌어안고 인정할 때야 비로소 나다워지는 것이죠.
· 함께 읽으면 좋을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다른 책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남보다 조금 부족한 다섯 친구가 사는 집에 흠 없이 '완벽한 친구'가 찾아오면서 소동이 일어난다. 완벽한 친구의 멸시에도 굴하지 않는 못난이 5명의 행복 코드는 무엇일까?
『사라지는 것들』영원할 것 같던 것도 결국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변치 않고 내 옆을 지키는 게 있다. 무엇일까?
· 추천 연령  『유리 아이』는 초등학생 저학년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이라면 유리 아이가 되는 상상을 해볼 수 있고, 초등 고학년이라면 나와 친구, '다름'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고요.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와 『사라지는 것들』은 쉽게 읽을 수 있어서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 저학년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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