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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적 노사관계를 자율로 풀라니…'尹노믹스' 방관적 노동개혁 [뉴스분석]

중앙일보

입력

민주노총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주요 도심에서 '차별없는 노동권, 질좋은 일자리 쟁취 결의대회'를 열고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예고한 노동개혁을 규탄했다. 뉴스1

민주노총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주요 도심에서 '차별없는 노동권, 질좋은 일자리 쟁취 결의대회'를 열고 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예고한 노동개혁을 규탄했다. 뉴스1

정부가 16일 내놓은 향후 5년간의 경제정책방향(이하 경방)은 국가 경제 체질의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미래 기반을 확충하는 방향이다. 그 방향타로 각 부문의 구조 개혁을 내세웠다.

공공·교육·금융·서비스 부문과 함께 노동 분야도 개혁해야 할 분야로 꼽았다. 낮은 노동생산성과 경직적인 노사관계 등을 비중 있게 언급했다. '이대로 두면 다른 부문을 고쳐도 후진적 노동분야가 경제 기반을 흔들고, 지속적인 성장을 해칠 수 있다'는 진단이 읽힌다.

그런데 정작 이날 발표된 경방에선 노동개혁 방안이 제대로 안 보인다. 경방이 제시한 노동시장 개혁의 큰 줄기는 '노사 자율·선택 방식'이다. 문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전투적 노사관계가 만연한 국가라는 점이다. 이런 노사에게 개혁을 맡기겠다고 선언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노사가 잘 해보라. 우린 지원할게'라는 식으로 비친다"며 "정부가 앞장서 진두지휘하며 뭔가를 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는, '방관적 개혁'이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정책 중 구체적인 방안이 담긴 항목은 근로시간 제도 개선이 고작이다. 주당 최대 52시간제의 틀 안에서 근로시간 운용 방식을 다양화하겠다는 것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와 같은 유연근로제 활성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단위 확대와 같은 방안을 내놨다.

노동개혁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선 공공기관의 보수와 인사·조직 관리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는 게 전부다. 민간 임금체계 개편 확산 방안으로는 컨설팅 확대나 임금체계 가이드북 제작 정도다.

500대 기업 인사·노무 실무자 대상 설문조사. 자료: 전경련

500대 기업 인사·노무 실무자 대상 설문조사. 자료: 전경련

그렇다고 전투적 노사관계를 털어낼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노조에 실어준 힘에 대적할 사용자의 대항권 규제를 풀지 않는 등 노사 힘의 균형 방안도 빠졌다. 이걸 기반으로 노사 자율을 지원해야 하는데, 이대로면 노사 자율·선택이란 명분으로 노사 중 어느 쪽의 힘이 센가에 따라 근로시간 운용 방식이나 임금체계가 선택될 판이다.

심지어 플랫폼 경제 확산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려 범정부 협의체를 꾸린다면서 고용노동부는 참여 부처에서 제외됐다. 기획재정부, 과학기술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으로 구성된다. 디지털 중심의 '산업 4.0' 시대는 필연적으로 '노동 4.0'으로 연결된다. 독일 등 선진국은 2000년대 들어 '노동 4.0'에 맞춘 인력확충, 직업훈련, 플랫폼 종사자 보호 등과 관련된 개선책을 쏟아내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명예교수는 "'고용부는 경제부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디지털은 향후 경제 운용 방안의 핵심인데, 그에 맞춘 체계를 갖춘다면서 고용부를 제외하는 것은 다소 안이한 인식을 노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고용보험의 효율적 운용과 관련해서도 구호성 방향만 내놨다. 정부는 고용보험을 개인별 소득기반으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맞는 방향이다. 소득이 투명한 직장인과 달리 자영업자나 플랫폼 종사자 등은 소득 파악이 안 돼 적게 내고, 많이 가져가는 구조로 고용보험의 건전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향은 있는데, 방안이 없다. 고작 '연구용역'을 하겠다는 게 전부다. 이외에 고용보험의 재정건전성 확보 방안 등에 대한 대책은 안 보인다.

그나마 이번 경방에서 눈길을 끄는 노동정책은 외국인력 운용과 관련해서다.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외국인력 비자를 신설하고, 숙련 인력의 쿼터를 확대하는 고용허가제 개편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맞춘 전향적 대책으로 평가받는다.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는 방안도 최저임금제의 폐해를 개선할 대책으로 주목된다. 일정 소득 이하의 일하는 저소득층에게 국가가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문 정부에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노동시장이 휘청거리자 정부가 사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대신 주는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시장 교란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근로장려세제 확대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정하고, 생계비 등 복지의 영역은 정부가 떠안는 형식이다. 따라서 국가가 임금을 정하는 최저임금제 기능을 시장과 국가로 역할을 분할하는 효과를 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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