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 되려다 계좌 0원…"코인충 꼴 좋다" 말에 2번 죽었다 [밀실]

중앙일보

입력 2022.06.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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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 것 같기도 하고, 잠을 잘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깨고요. 죽고 싶은 마음이 이런 건가 싶고….”
루나 사태로 인해 전 재산을 잃은 이모(33)씨의 한숨 섞인 말입니다. 한때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했다는 그는 홀로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고 투자에 전념했다고 합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코인 투자는 악몽이 됐습니다.

[밀실]<제92화>
2030 코인러의 눈물

“1339 자살상담센터에 2번 정도 상담을 받았어요. 극단선택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며 경찰관이 찾아오기도 했죠.” (30대 코인러 이모씨)

약 58조 원이 증발한 국산 암호화폐 ‘루나 사태’의 후폭풍은 처참했습니다. 루나 코인 투자자인 이씨는 이틀에 걸쳐 전 재산인 3200만원을 잃었고, 코인 계좌에는 사실상 ‘0원’에 가까운 금액만 남아있었습니다.

밀실팀과 만나 한숨을 깊게 내쉬던 이씨는 “가족을 볼 면목이 없었다. 차라리 그 돈을 아이에게 썼으면 괜찮았을 텐데…어리석었다”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더니 “거래소를 믿고 투자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비트코인 관련 일러스트. 셔터스톡

비트코인 관련 일러스트. 셔터스톡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나만 알고 있는 MZ 트렌드,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MZ의 이야기 등을 메일로 보내주세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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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 돈 증발” 극단 선택까지 고민하는 MZ

코인 투자로 전 재산을 잃고 생을 마감하려 했다는 2030의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2020년 3월부터 코인 투자를 시작한 20대 이모씨는 5000만원을 투자해 4500만원을 잃었습니다. 이씨는 “휴대폰 하나면 장소 상관없이 쉽고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어 2030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다 투자 중독이 되고, 현실 돈이 게임머니 같았다”고 했습니다.

“돈이 없었지만 영혼을 끌어모아 코인 시장에 진입했던 터라 고달프죠. 좋지 않은(극단선택)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요. 계속 끙끙대며 지내고 있을 뿐이죠.” (20대 코인러 이모씨)

이씨는 “(투자금을) 잃고 나면 죽고 싶어지고 우울증이 걸리기 마련”이라며 “한때 코인 투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지만, 도박이나 다름없는 노름판인 것 같다. 죽어라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5000만원 이상으로 단타를 쳐서 단 2~3분 만에 100% 원금 이상 버는 걸 경험했지만, 결국은 피땀 흘려 번 돈을 잃는 과정이었다. 정 하고 싶으면 대출 투자는 절대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99% 이상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긴 '루나사태'로 투자에 실패한 2030 코인러들은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밀실 영상 캡처

99% 이상 폭락으로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긴 '루나사태'로 투자에 실패한 2030 코인러들은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밀실 영상 캡처

‘빚투’의 비극…어린 자녀 두고 극단선택 

“암호화폐 때문에 극단 선택을 해 소중한 가족을 두고 떠난 것에 화가 나고 가족을 대신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30대 정모씨)

주변에서 들려온 비극적인 소식도 접하게 됩니다. 한때 암호화폐 투자를 했던 직장인 정모씨(30대)는 최근 연이어 들려온 부고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옛 직장 동료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는 그는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고 하더라. 함께 일하던 사장에게도 1억 이상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했습니다.

고인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이 막 지난 아이를 생각하니 한동안 옛 동료의 죽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튿날 가족의 지인 중 암호화폐를 했던 또 다른 분도 지난해 극단 선택을 했다는 말을 들으며 충격이 가중됐다고 합니다.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타나고 있다. 뉴스1

파이어족의 덫…코인 중독 주의보

전 재산을 잃고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30 코인러들이 현 상황까지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투자의 위험성을 몸소 느꼈다는 한 투자자는 강한 ‘중독성’을 얘기했습니다. 파이어족(30대 후반~40대 초반 은퇴)이 되고 싶은 열망과도 맞물려 있었습니다.

“1시간 만에 50만원을 버는 걸 보니 짜릿했어요. 중독되는 것 같고 마치 도박 같았죠.” (30대 코인러 김모씨) 

2년 전 테슬라 CEO인 일론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언급해 화제가 되고, 회사 선배가 “하룻밤에 200~300%가 오르고 수십억을 벌어서 판교에 집을 산다더라”는 말을 듣고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는 30대 회사원 김모씨는 총 1200만원을 잃었습니다.

이현상의 퍼스펙티브.암호화폐 루나 코인 추락.

이현상의 퍼스펙티브.암호화폐 루나 코인 추락.

김씨는 “100만원으로 시작한 투자금이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늘어났고, 1000만원까지 늘었다”며 “온종일 화면만 보고 알람을 맞춰두고 분 단위로 샀다가 팔았다. ‘한탕주의’를 노렸던 것도 맞다”고 했습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2030의 코인 투자 열풍은 도박 심리와 같다. 성장이 멈춘 뉴노멀 시대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들이 빠른 은퇴를 종용하고, 일이 아닌 투자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젊으면서 뭘 그래” “너희 잘못” 악플에 상처

루나 사태로 손실을 본 2030 코인러들의 아픔은 묵인되기 일쑤입니다. “일확천금을 바라다가 꼴 좋다”거나 “젊으니까 기회가 많다” “뭐 그걸로 극단 선택을 하냐”는 등의 반응이 대표적입니다. 온라인에 올라온 투자 실패로 힘들다는 글에는 어김없이 악플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들을 ‘코인충’ 이라 조롱하거나, 극단선택을 종용하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코인 투자로 돈을 잃은 2030은 “억지로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한 건데 누구를 탓하냐” “욕심부리다가 그렇게 됐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코인 투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등에는 ‘한강 수온 따뜻하냐ㅠ’ ‘한강 마렵다’ 등 극단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의 게시글이 적지 않았습니다.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손실을 본 2030 코인러를 향한 악플. 밀실 영상 캡처

암호화폐 투자 실패로 손실을 본 2030 코인러를 향한 악플. 밀실 영상 캡처

코인 투자에 실패한 2030 코인러들은 자책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연이은 극단선택 비보를 듣고 “그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했던 정씨는 “365일 24시간 차트만 보고 있으니 일상생활은 불가능하고 힘들게 번 돈이 순식간에 없어지니 돈이 돈 같아 보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코인 관련 법 미비…책임지는 곳 없다

투자로 돈을 잃은 2030 코인러들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현실도 또 하나의 문제입니다. 국내 코인 관련 처벌법이 미비한데다, 책임지는 곳이 없는 탓입니다. 2030 투자자들은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제대로 된 법안과 모니터링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이 구축됐으면 좋겠어요. 시세 조작 등이 많은 시장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시세 변동률을 줄이거나 안전한 투자를 할 수 있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네요.” (20대 코인러 이모씨)

주식 시장의 약세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현재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주식 시장의 약세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현재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죽지 맙시다’ 위로·연대하는 MZ 코인러

아픔 속에서 2030 투자자들은 다시 일어서려 합니다. 배달 대행업에 종사 중인 김모(31)씨는 자영업을 하며 대출받은 6000만원과 코인 투자에 넣었던 7000만원까지 총 1억 3000만원의 빚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며 빚을 갚고 있다는 그는 “코로나로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재테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빚을 내서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를 감행했던 그는 루나 코인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코인에 투자했다가 많은 투자금을 잃었습니다. ‘실패한 투자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허무함이 컸지만 스스로 ‘괜찮다’고 했다”며 “투자에 있어선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김씨가 지난달 온라인 코인 투자 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 '코인으로 돈 잃어서 극단선택 하신다는 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앞으로 잘 살 궁리를 하자. 같이 이겨내 보자″고 독려했다. 김씨 제공

김씨가 지난달 온라인 코인 투자 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 '코인으로 돈 잃어서 극단선택 하신다는 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앞으로 잘 살 궁리를 하자. 같이 이겨내 보자″고 독려했다. 김씨 제공

김씨는 “루나 코인 투자자들의 글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게 답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월급으로는 내집 마련이 ‘하늘의 별따기’인 우리 사회는 ‘재테크가 답’이라 부추겼습니다. 코인에 투자했던 2030 투자자들의 선택이 과연 틀렸던 걸까요. ‘욕심쟁이’라는 손가락질,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할까요.

모든 잘못을 홀로 떠안고 큰 아픔을 겪는 이들의 희망과 미래가 무너지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끄러움과 자책감을 이겨내고 밀실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의 용기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청년들의 절망에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정책과 대안을 많이 만들어내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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