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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규제혁파의 시대, 정당도 예외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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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지방선거가 마무리 된지 보름 남짓, 연극의 시간은 끝나고 권력투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에게 일을 맡기고 주권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자, 여야 정당들(실제는 정당을 지배하는 의원들)은 비대위, 혁신위, 처럼회, 초금회 등을 가동하며 권력투쟁에 돌입하고 있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당개혁을 외치지만, 대한민국에서 얼마간 지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다. 개혁과 쇄신의 민낯은 결국 당권, 다가올 총선 공천권 다툼이라는 것을.

필자나 독자들이나 그들만의 말잔치의 표준 공정은 익히 알고 있다. 1.격렬한 내부 다툼 끝에 일부 낡은 인물들의 퇴진 2.새로 주도권을 장악한 이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당내 경선규칙 변경 3.새 규칙에 따라 MZ세대 등 새 인물들이 일부 수혈되지만, 이는 새로운 권력의 입지를 강화, 포장하는 데에 그침 4.궁극적으로 정치귀족의 정당 지배는 계속되고 시민과 정당정치의 괴리는 여전.

선거 이후 내부 권력투쟁에 몰두
독과점 체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
정당법 17조 진입 규제 철폐하고
비례대표 후보는 추첨으로 뽑자

독자들에게 식상한 이야기일 테지만 우리가 정당들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학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대로 정당들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기관차까지 되지는 못하더라도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객차임은 분명하다. 정치경험이 전무하던 윤석열 대통령이 깜짝 당선되는 데에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객차가 중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화두가 규제 혁파이니만큼, 오늘 필자는 두 가지 정치규제 개혁안을 제안하려 한다. 첫째 정당 독과점 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정당법 17조, 18조 규제의 철폐. 둘째, 개방형 공천이니 전략공천이니 하는 복잡한 공천절차를 없애고, 시민들의 눈높이를 가감없이 반영하는 비례대표 의원후보 추첨제 도입.

먼저 우리 정당정치의 온갖 병폐가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생활물가(리터당 2천원을 훌쩍 넘은 휘발유 값, 어느덧 한판에 1만원에 육박하기도 하는 계란값)속에서 시민들의 주름살은 늘어가지만, 여의도 정치귀족들이 한가하게 권력투쟁에만 몰두할 수 있는 배경은 하나로 모아진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기성정당들은 망해서 문을 닫는 일이 없다. 개인도, 기업도 부채, 금리 상승의 광풍 속에서 파산할 수 있지만, 정당은 절대 파산하지 않는다. 상황이 정 어려워지면 정당들은 간판을 바꿔다는 신장개업으로 살아남아왔다.

정당 독과점체제에는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 신규 경쟁자의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둘째는 기성정당들이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국고보조금을 비롯해 독과점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합법적으로 과점하는 것.

정치시장에 신규 정당진입이 어려운 이유는 정당법에 잘 나와 있다. “정당들은 5(개) 이상의 시, 도당을 가져야 한다.”(정당법 17조) “시, 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정당법 18조) 또한 시, 도당은 사무소를 가져야 한다. 거대한 자금력, 인적 네트워크, 조직력 등을 갖추지 않으면 정당경쟁에 뛰어들 수 없다. 지난 30여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주영, 문국현, 박찬종 등 소수의 리더들이 새로운 바람으로 기성정당 카르텔을 부숴보려 했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정당법 17조는 메말라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도 바뀌어야만 한다. 엊그제 강준만 교수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서울에 중앙당 소재를 규정하고 5개 시도당 요건을 규정하는 정당법을 없애야 한다고 『무등일보』 칼럼에서 주장하였다.)

신규 경쟁자 진입을 봉쇄하는 동시에 기성정당들은 국고보조금 나눠먹기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존립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수백억 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의 절반은 우선 국회 안에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기성정당들이 똑같이 균등하게 나눠받는다. 이어서 복잡한 공식을 거쳐서 군소정당을 포함한 정당들과 함께 국회 의석수, 득표율 비율 등에 따라 나머지 절반을 배분받는다. 이런 독과점은 철폐되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고 싶은 또 하나의 방안은 비례의원 후보 추첨제이다. 복잡한 절차와 경쟁을 거쳐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방식을 혁신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이 혁신적이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화려한 경력, 소신을 갖추었다던 새 인물들이 여의도에 모여서 보여주는 것은 주로 입법폭주와 난폭 의정이었다.

뜬금없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추첨제도는 사실 2천년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되고, 단순하며, 심지어 정의로울 수도 있는 선출방식이다. 모든 성인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비례후보를 뽑는다면, 젠더, 세대, 능력 모든 기준에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균등하게 대표된다. 추첨으로 뽑히는 이들은 당연히 보통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는 이들로 구성되게 마련이다.

2024년 총선까지 앞으로 2년. 마침 우리 삶을 옭아매는 온갖 규제들을 해소하려는 흐름이 커지는 만큼, 정치에서는 두 가지가 먼저 혁파되어야 한다. 정당법 17조, 18조 폐지와 비례대표 추첨제 도입.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