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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인욱의 문화재전쟁

중국이 미국에 앞선 건 문화재 “당 간부도 공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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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진핑의 고고학 띄우기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중국 최고 상무위원회는 현안을 토론하고 공부하는 ‘집체학습’이라는 모임을 1~2개월에 한 번씩 연다. 중국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올라오는 이 자리에 지난달 29일에는 ‘고고학’이 올라왔다. 2020년 9월에 이어서 벌써 두 번째이다. 코로나19, 경제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산적한 현안을 제치고 고고학을 집체학습의 주제로 올려 주목된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문명의 기원을 밝히고 중국의 특색 있는 고고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자”라는 메시지를 냈다. 과거 중화문명을 화려하게 채색하여 세계에 홍보하고, 그 영광을 재현하자는 뜻이다. 지구촌 패권을 넘보는 중국이 고고학과 문화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배경에는 21세기 중국의 큰 그림이 숨어 있다.

상무위 집체학습 주제로 2회 선정
지구촌 패권 노리는 ‘중국몽’ 일환

중국고고학 100돌 성대하게 치러
전국 20개 대학에 고고학 단과대

유물·역사가 문화전쟁 첨병 역할
경제·과학 열세 덮으려는 노림수

스웨덴 학자가 찾아낸 양사오문화

중국 현대 고고학의 출발로 꼽히는 허난성 양사오문화의 채색토기. 1921년 스웨덴 학자 요한 앤더슨이 처음 발견했다. [사진 바이두]

중국 현대 고고학의 출발로 꼽히는 허난성 양사오문화의 채색토기. 1921년 스웨덴 학자 요한 앤더슨이 처음 발견했다. [사진 바이두]

2021년 중국 고고학계는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시진핑의 집체학습에 맞추어 중국 고고학 100주년을 선포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왜 100주년인가. 그 시작은 어디인가. 1921년에 중국을 대표하는 신석기시대 양사오문화(仰韶文化)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양사오문화는 중국인이 아니라 스웨덴 사람인 요한 앤더슨(1874~1960)이 찾아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광물을 조사하며 틈틈이 유적을 찾아다니던 앤더슨은 허난성(河南省) 양사오라는 마을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그릇 조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 토기들은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 토기인데, 그가 이전에 근동지역에서 보았던 것과 너무나 유사했다.

양사오문화박물관 외경. [사진 위키피디아]

양사오문화박물관 외경. [사진 위키피디아]

사실 이런 토기를 ‘채도(彩陶)’라 부르는데,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주로 아열대와 온대 지대에서 널리 발견됐다. 한국과 시베리아 일대에서 사용한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유라시아를 양분하는 대표적인 선사시대 토기다.

하지만 그런 내막을 몰랐던 앤더슨은 중국 문명이 근동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증거로 생각했다.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이 한국의 문화를 ‘타율성론’으로 설명하듯이 20세기 중반까지도 한동안 서구학자들은 중국 문명이 서방에서 기원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니 앤더슨의 양사오 발굴을 중국 고고학의 기원으로 본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일제강점기 때 빗살무늬토기를 캐던 일본학자의 발굴을 한국 고고학의 기원이라고 광고하는 셈이다.

해외 개척에 고고학자 동행

중국 내몽골 얼다오징즈 유적. [사진 강인욱]

중국 내몽골 얼다오징즈 유적. [사진 강인욱]

중국은 일찍이 송나라 때부터 골동품을 모으는 고고학 취미가 유행했다. 또 현대의 고고학 발굴은 갑골문으로 유명한 상나라 수도인 은허(殷墟) 유적을 발굴한 1928년으로 잡는 것이 더 적합하다. 그럼에도 굳이 서양 사람의 발굴을 100주년으로 잡을 필요가 있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시진핑이 권력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고고학 100주년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는 추정이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시진핑은 젊은 시절을 흔히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라 일컫는 산시성(陝西省)에서 보냈다. 그런 까닭인지 유독 고고학과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2013년 세계로 뻗는 중국의 경제 패권 사업을 실크로드를 의미하는 ‘일대일로’로 이름 붙였다. 과거의 해상과 육상 실크로드처럼 세계 경제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도였다.

중국 내몽골 얼다오징즈 유적(위 사진)과 그 밑으로 뚫은 고속도로. [사진 강인욱]

중국 내몽골 얼다오징즈 유적(위 사진)과 그 밑으로 뚫은 고속도로. [사진 강인욱]

중국의 해외시장 개척은 고고학자와 함께 이루어졌다. 곧바로 스리랑카와 같은 남아시아는 물론 멀리 아프리카까지 진출하는 중국의 기업들과 함께 중국 고고학자들의 조사가 이어졌다. 2019년에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세계문화유산인 마하발리푸람 앞에서 회담하며 상호 친선을 강조했다. 중국과 인도가 문화재를 중심으로 외교를 펼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중국의 이번 고고학 집체학습은 실크로드 공정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그 주제가 ‘중화문명’으로 바뀌었으니, 세계와 교류를 강조하는 일대일로(=실크로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화문명의 우수함을 알리겠다는 선포와 같다.

한국과 일본의 경계심 커져

레고랜드가 들어선 청동기 시대 마을터인 춘천 중도 유적지. [사진 중도 종합보고서]

레고랜드가 들어선 청동기 시대 마을터인 춘천 중도 유적지. [사진 중도 종합보고서]

정치적인 의도야 어떻든 최근 중국 고고학은 주변국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베이징대·지린대 등 주요 20개 대학에서 고고학은 학과가 아니라 단과대학으로 편제됐다. 고고학 단과대마다 전공 교수가 50~60여 명에 달하는데, 이는 한국 전체의 고고학 교수 수와 비슷하다. 지난해 10월에 중국 고고학계는 신규로 285명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전체 학예직 연구원 수와 비슷한 규모다. 물론 막대한 자금력과 풍부한 유물 덕분이다. 한국이나 일본이 이미 넘볼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

한국의 고고학 교수가 보기엔 이러한 중국의 지원은 부러울 뿐이다. 왜 시진핑의 중국은 이렇게 고고학과 중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을까. 순수한 과거에 대한 열정만은 아니다. 그 뒤에는 단순한 문화재 사랑을 넘어서 고고학을 기반으로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려는 문화전쟁이 숨어 있다.

중국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임은 상식이다. 4000년 전에 쓰던 글자를 계속 쓰고 있고, 또 넓은 평원지대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용광로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이 자국 고고학을 세계에 알리려는 방침은 단순한 문화홍보의 차원을 넘어선다. 세계에 과시할 중국만의 소프트파워가 없음을 의식한 행위로 해석된다. 중국은 미국과의 G2 경쟁 구도를 펼치고 있지만, 사실 기술과 과학 대부분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것을 차용한 것이다. 미국과 각축을 겨루면서 또 다른 편으로는 수많은 인재를 서양에 유학 보내는 역설적 상황이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월하다고 꼽는 게 바로 역사와 문화다. 300년 역사도 안 되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중 미국을 압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아이템이 고고학과 문화재다. 중국 국민의 자존심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로 키우고 있다. 고고학을 통해 중국의 소프트파워를 내세우려는 그랜드 전략이다.

우리는 제대로 대비하고 있나

고고학으로 세계 최고 국가로 올라서려는, 이른바 고고학판 ‘중국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동북공정 같은 역사 분쟁을 일으켜온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로선 더욱 그렇다. 중국이 중화문명을 내세우며 티베트·신장(新疆)·만주·내몽골 같은 주변 지역도 자국 역사로 편입해온 것도 이제 새롭지 않다. 그런 중국 일변도의 행보를 세계 곳곳으로 확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이에 비해 한국의 문화재 기상도는 어두운 편이다. 경기 김포 장릉 주변에 아파트가 예정대로 건설되면서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지위가 위험해지고 있다. 또 3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2200개 집자리와 150개 고인돌이 있었던 한국 최고의 마을터인 춘천 중도 유적지를 6년 만에 급하게 발굴하고, 그 위에 레고랜드를 지었다. 청동기시대의 최대 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올릴 수 있는 유적이었다.

중국은 유적 보존에 우리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일례로 2009년에 홍산문화로 유명한 중국 내몽골 치펑시 근처에서 고속도로를 건설 중에 4000년 전 성터가 발견됐다. 얼다오징즈(二道井子)라는 이 유적은 중도 유적지의 10분의 1 도 안 되는 규모다. 더욱이 주변에는 크고 중요한 유적이 이미 수백 개나 발견된 상태였다. 하지만 중국은 그곳에 유적 보존 박물관을 지었고, 고속도로는 유적 밑으로 긴 터널을 뚫으며 완성했다. 중국의 고고학 굴기를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중국 못지않게 크다. 그런데 정작 문화재는 경제개발의 걸림돌로 여겨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도성장을 추구해온 중국이 왜 이토록 고고학과 중화문명을 강조하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할 때다. 한국 최고의 유적이 놀이동산으로 뒤바뀐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중국에 있는 우리 유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