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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한슬의 숫자읽기

틀니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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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 약사·작가

이번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투표율 50%인 무관심 선거의 승패를 가른 건, 출구조사 기준 67% 수준의 투표율을 보인 노령층의 적극 투표 덕분이란 해석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 민주당 지지층은 이런 상황을 비꼬아 기표소에 도장과 투표용지 대신 ‘키오스크’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롱을 내놓는다. 조건 없이 보수정당만 찍는 ‘틀딱’들의 투표를 막아버리잔 식이다. 그런데 노령층의 지지는 생각과 달리 그리 무조건적이진 않다. 노인들은 실제로 보수정권에서 구강 건강 혜택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구강 건강을 평가하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객관적 지표로는 치아의 개수나 충치, 잇몸질환 유무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는 치과의사와 같은 전문 인력만이 파악할 수 있는 탓에 대규모 조사가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인 보건 통계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저작 불편 호소율을 중점적으로 조사해 추이를 파악하는데, 노령층에서의 저작 불편 호소율이 급격히 변하게 된 계기가 있다. ‘노인 임플란트’ 공약을 내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이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박근혜 정부는 틀니와 임플란트 건강보험 적용을 임기 중에 꾸준히 밀어붙였다. 2013년엔 부분 틀니, 2014년에는 임플란트, 2015년에는 전체 틀니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관련 정책의 건강보험 적용 대상 인구도 65세 이상으로 하향되어 법적으로 노인인 인구는 모두 틀니와 임플란트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임기 첫해인 2013년경엔 40.9%이던 저작불편감이 2020년 기준 27%로 떨어지는 엄청난 장기 성과를 낸 것이다.

단순히 지지층 챙기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소득에 따른 건강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영역 중 하나가 구강 건강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런 시비도 힘을 잃는다. 이가 모두 빠진 상태를 뜻하는 무치악 비율은 2020년 기준 소득 최하위군인 1분위에서는 4.1%였던 반면, 소득 최상위군인 5분위에서는 1.1%에 불과했다. 같은 노인이라도 소득 수준에 따라 치아 손실률이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보건 분야에서는 흔한 건강 불평등이고, 치료 비용이 큰 질환을 가난한 이들이 주로 앓는 상황을 해결해주는 건 복지의 올바른 실현이다.

이처럼 틀니는 노인들이 보수정당에 몰표를 줘 쟁취한 성과물에 가깝다. 지지층에서 복리 증진을 요구하면, 정치인은 정책으로 화답하는 건강한 구조다. 그런데 정작 노인들의 정치적 경직성을 조롱하는 이들이 노인보다 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게 놀라울 뿐이다. 노인들은 본인을 위해 틀니라도 얻었지만, 팬덤 정치에 몰입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체 누굴 위해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일까. 어쩌면 그걸 모르는 게 진짜 패배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