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는 기업'이라는 尹 "저녁때 연락 달라, 도시락 먹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는 기업이다. 민간주도·기업주도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비공개 토론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정부와 기업”이란 다섯 글자엔 윤석열 정부 5년간의 경제정책 청사진이 집약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다른 점 한 가지를 든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겠다”고 답했던 윤 대통령이 취임 한 달여 만에 정부에서 민간·기업·시장 중심으로의 성장 패러다임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대통령실에 따르면 60분간 진행된 비공개 토론에서 윤 대통령은 “정부와 기업은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항공모함이 태평양을 간다고 할 때 (그 항공모함이) 미국 국방부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수천 수만 개 전 세계 기업들이 같이 바다 위를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예를 들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거나 일을 해나가려면 엄청나게 많은 기업과의 협업 내지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한 기업인에게는 “함께 정책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면서 “저녁시간이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많이 비어있으니 기업인들 연락을 많이 달라. 도시락 같이 먹으면서 경제 문제를 같이 의논하겠다”는 당부도 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도 새정부 5년간의 경제운용 주축이 민간임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어려울수록 또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 주도, 시장 주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복합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16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그러면서 정부엔 규제철폐와 구조개혁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민간의 혁신과 신사업을 가로막는 낡은 제도와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관행적인 그림자 규제, 이런 것들을 모조리 걷어낼 것”이라며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고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제도와 규제는 과감하게 개선하고, 그러면서도 공정한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발붙일 수 없게끔 할 것”이라고 했다. 또 “민간 투자 위축과 생산성 하락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며 “경제안보 시대의 전략적 자산인 반도체 등 국가 전략산업의 R&D 지원과 인재 양성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도 반드시 밀고 나가겠다”고 다짐한 윤 대통령은 “청년에게 일자리의 기회를 막는 노동시장, 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제도,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연금제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두 팔 걷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라면 마땅히 가야 할 길이며, 정치권도 여야를 떠나 초당적으로 협력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노동·교육·연금 분야 등을 중심으로 새정부 초기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대선공약 등을 통해 노동분야에서 노동시간 유연화를, 교육은 고교체제와 대입전형 개편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연금개혁은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방법론을 제시한 바 있다.

대선 때인 지난해 1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연금개혁을 두고 “어느 정당이든간에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오면 무조건 선거에서 지게 돼 있다”며 “솔직히 말해서 구체적인 연금개혁을 안 내놓는 것이지만 이건 반드시 시행돼야 하는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경기 성남 수정구 판교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엔 직면한 경제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가라앉는 경제 지표를 우려한 윤 대통령은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면서 “복합의 위기에 우리 경제와 시장이 불안해 하고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께서 체감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는 우리가 각오하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정부의 역량 결집을 당부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비공개 토론을 포함해 총 80분간 열린 회의에는 이례적으로 민간에서 대기업 총수,벤처기업, 학계, 민간 연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등 21명이 참석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말고도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장,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등이 왔다. 정부 측에선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를 비롯해 관계 부처 장·차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국민의힘에선 성일종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다음은 대통령실이 공개한 참석자들의 주요발언
^최태원 회장="기업들도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등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관건은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것으로, 정부 주도로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적극 참여해서 전략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요즘 데이터는 금값보다 비싸다. 민간과 공공이 교류하면서 좀 더 가치가 있는 데이터를 더 만들어내야 한다.”
^김성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 “반도체 분야는 우리가 세계 1위인데, 장비 하나 사는데 2000억원이 든다. 반도체 관련 대학 정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교육을 더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장비가 있어야 교육이 가능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