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45년 사상 첫 韓촬영감독 정정훈, '올드보이' 장도리씬 오마주할뻔

중앙일보

입력 2022.06.16 11:27

업데이트 2022.06.16 12:56

지난 8일 디즈니+를 통해 출시된 '스타워즈' 스핀오프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한장면.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찍었다. 한국인이 '스타워즈' 세계관 작품의 주요 스태프로 참여한 건 처음이다. [AP=연합]

지난 8일 디즈니+를 통해 출시된 '스타워즈' 스핀오프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 한장면. '올드보이'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찍었다. 한국인이 '스타워즈' 세계관 작품의 주요 스태프로 참여한 건 처음이다. [AP=연합]

하마터면 ‘스타워즈’ 광선검으로 ‘올드보이’(2003) 장도리 액션을 오마주한 장면이 나올 뻔했다. 지난 8일 디즈니+가 독점 출시한 드라마 ‘오비완 케노비’(감독 데보라 초우) 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할리우드 SF 대명사 ‘스타워즈’ 시리즈 촬영감독을 맡은 정정훈(52) 촬영감독의 얘기다.
 매주 한편씩 공개되는 총 6부작 중 3부 공개(15일) 전날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여기선 ‘올드보이’가 워낙 전설적이어서 제가 참여하는 모든 영화현장마다 ‘올드보이’를 오마주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서 “‘오비완 케노비’를 촬영할 때도 (최민식이 장도리를 휘두르는) 복도 액션신을 오마주할 수 있느냐기에 복도(촬영 세트) 하나를 다 뜯어주면 하겠다고 했더니 하루가 더 걸린대서 농담처럼 넘어간 적도 있다. ‘올드보이’ 분위기를 많이 참고해서 다른 ‘스타워즈’ 작품보다 다크(dark)하다”고 말했다.

'스타워즈' 세계관 45년 사상 첫 한국 스태프
'올드보이' 박찬욱 사단…할리우드 진출 9년만에
美매체 "세계 최고 현역 촬영감독 중 한명"

'올드보이'부터 박찬욱과 7편, '스토커'로 美 진출

정정훈 촬영감독을 1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이제 한국 촬영감독이 아닌 '정정훈'이란 이름을 걸고 할리우드 촬영감독들과 경쟁중이라는 그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올드보이'가 미국에선 워낙 전설로 통한다며 '오비완 케노비' 연출을 맡은 데보라 초우 감독도 "올드보이 광팬"이라 소개했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정정훈 촬영감독을 1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이제 한국 촬영감독이 아닌 '정정훈'이란 이름을 걸고 할리우드 촬영감독들과 경쟁중이라는 그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한 '올드보이'가 미국에선 워낙 전설로 통한다며 '오비완 케노비' 연출을 맡은 데보라 초우 감독도 "올드보이 광팬"이라 소개했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올드보이’부터 ‘아가씨’(2016)까지 박찬욱 감독과 7편을 함께하며 한국 대표 촬영감독으로 꼽혀온 그다. 박 감독과 할리우드 동반 진출한 영화 ‘스토커’(2013) 이후 미국 현지에서 활동해왔다. 스티븐 킹 원작 공포영화 ‘그것’(2017), 조디 포스터 주연의 범죄 스릴러 ‘호텔 아르테미스’(2018),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 주연의 액션 모험극 ‘언차티드’ 등 참여 작품 규모도 커졌다. B급 공포 대가 에드거 라이트 감독과 함께한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 개봉 당시 인디와이어‧루퍼 등 외신들이 “전 세계 최고 현역 촬영감독 중 한명”이라 호평하기도 했다.
한국인이 ‘스타워즈’ 작품 주요 스태프(key staff)로 참여한 것은 이 시리즈 45년 역사상 처음이다. “최초”란 수식어에 “부담스럽다”고 밝힌 정 촬영감독은 “처음 ‘스토커’를 찍고 할리우드에 넘어왔을 때는 한국인 스태프여서 특이하게 찍을 거라 생각해서 저를 썼다면 지금은 그런 베네핏(benefit·특혜)은 싹 사라졌다. 여기 있는 다른 촬영감독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시킨다.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싶기도 하지만(웃음) 정정훈이란 이름으로 경쟁하게 돼 잘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기존 '스타워즈' 룰 신경 쓰지 않고 독립된 영화처럼 찍었죠" 

‘오비완 케노비’는 기존 ‘스타워즈’ 스타일을 새롭게 변주한 작품. ‘스타워즈’ 세계관 드라마 중 가장 호평받는 ‘만달로리안’(2019)의 에피소드 2개를 연출한 데보라 초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23년 전 시리즈 4번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1999)에서 처음 맡은 동명의 은하 평화유지군 제다이 전사 역할로 복귀한 작품이다. 악당 다스 베이더의 탄생에 뜻밖에 얽히게 된 오비완 케노비의 방황과 재기를 그렸다. 정 촬영감독은 “제가 오비완 캐릭터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오비완 케노비’ 촬영을 맡긴 것”이라며 “시리즈에서 이어져 온 캐릭터와 배경의 느낌을 고증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스타워즈’는 이래야 해, 하는 룰(rule)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찍었다”고 설명했다.

'오비완 케노비'에선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23년 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처음 맡은 동명 주인공 역할로 돌아왔다. [AP=연합]

'오비완 케노비'에선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23년 전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1-보이지 않는 위험'에서 처음 맡은 동명 주인공 역할로 돌아왔다. [AP=연합]

가령 기존 ‘스타워즈’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그린 우주 배경, 외계인, 전투 등 볼거리를 밝고 선명한 화면에 담았다면 ‘오비완 케노비’는 짙은 암흑, 황무지의 모래바람 속에 오비완의 존재감이 서서히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정 촬영감독은 “기존 ‘스타워즈’ 시리즈는 CG가 많지만 이번엔 되도록 카메라 안에 모든 것이 담기게 하는 게 목표였다. 미리 디지털로 만든 배경과 현장의 촬영 세트, 조명 색감의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도전이었고 그에 따라 사실적으로 보이냐, 안 보이냐가 결정됐다”면서 “배경보다 인물에 더 집중해 그냥 한편의 독립된 영화라고 생각하고 찍었다. 기존 시리즈에 없던 와이드로우 앵글, 와이드하이 앵글도 그동안 제가 한국영화에서 썼던 방식을 눈치 안 보고 썼다”고 했다.

'신세계''부당거래'도 촬영, 감독들이 저를 찾는 이유는…

'오비완 케노비'는 어둠과 절망이 팽배한 세상,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잔혹한 제다이 사냥꾼에 맞선 ‘오비완 케노비’의 목숨 건 여정을 담았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오비완 케노비'는 어둠과 절망이 팽배한 세상,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잔혹한 제다이 사냥꾼에 맞선 ‘오비완 케노비’의 목숨 건 여정을 담았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스티븐 킹 원작 공포영화 '그것'.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안드레스 무스키에티가 연출을 맡고 정정훈 감독이 촬영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스티븐 킹 원작 공포영화 '그것'. 아르헨티나 출신 감독 안드레스 무스키에티가 연출을 맡고 정정훈 감독이 촬영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공포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으로 정정훈 촬영감독(오른쪽부터)과 함께한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현지 개봉 당시 "정정훈은 전세계에서 가장 재능있는 촬영감독 중 한명"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어둠 속에 네온 불빛이 도드라진 조명 속에 악몽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뒤섞은 독특한 공포를 펼쳐냈다. [AP=연합]

공포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2021)으로 정정훈 촬영감독(오른쪽부터)과 함께한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현지 개봉 당시 "정정훈은 전세계에서 가장 재능있는 촬영감독 중 한명"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어둠 속에 네온 불빛이 도드라진 조명 속에 악몽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뒤섞은 독특한 공포를 펼쳐냈다. [AP=연합]

또 “오비완은 전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찍었다”면서 “말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최대한 어둡게 최대한 많이 보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촬영‧조명에 신경 썼다”고 했다. 이완 맥그리거와 호흡에 대해 “굉장히 똑똑하고 경험 많은 배우여서 본능적으로 카메라 상황에 잘 맞게 움직여줬다”고 즐겁게 돌이켰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3),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버서난 달처럼’(2010),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2010) 등 굵직한 감독들의 스타일 강한 작품을 촬영해온 그다. 정작 스스로는 “스타일리시한 촬영감독이 아니”라며 “작품 속 인물에 대해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점”을 감독들에게 선택받는 이유로 꼽았다. 항상 그를 “든든한 조력자”라 말하며 ‘그것’ 현장에 응원차 방문하기도 한 박찬욱 감독과도 ‘헤어질 결심’의 칸영화제 수상 전후로 연락을 나눴단다. “저랑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은 아니고 가족처럼 잘 지내고 있다. 얼마 후면 작품 때문에 미국 오시니까”라며 차기작 가능성에도 여지를 남겼다.

"북한이냐, 남한이냐 묻던 미국 한국문화 하나의 장르 인정" 

정정훈 촬영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작업한 가장 최근작 '아가씨'(2016)는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됐다. [사진 CJ ENM]

정정훈 촬영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작업한 가장 최근작 '아가씨'(2016)는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도 초청됐다. [사진 CJ ENM]

할리우드에서 K문화의 위상 변화도 체감한다는 그다. “처음 미국 왔을 땐 ‘노스 코리아(North Korea)야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야’ 묻는 어이없는 경우도 많았는데 지금은 ‘‘오징어 게임' 봤어?’ ‘우리 딸이 BTS 콘서트 가고 싶어서 미치려고 해’라고 먼저 말을 건다. 한국문화가 특이한 게 아니라 하나의 보편화한 장르, 콘텐트로 인정받는다는 면에서 뿌듯하다”고 했다.
‘기생충’ 홍경표 촬영감독이 일본영화 ‘유랑의 달’에 참여하고, ‘오징어 게임’ ‘기생충’의 정재일 음악감독이 세계적 음악 레이블과 글로벌 계약맺는 등 최근 한국 스태프들이 잇따라 해외에 진출하고 있다. 그에 대해 그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여기서 일해보니까 한국에 뛰어난 스태프가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다시 한국영화를 하게 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려울 정도로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한국 스태프들이 너무 자랑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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