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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공장 대만 2년 걸릴때…한국은 짓는데 1년, 허가에 5년 [규제 STOP]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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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로고. [연합뉴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 로고. [연합뉴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지난해 10월 실적 공개 뒤 깜짝 발표를 했다. 소문으로 떠돌던 ‘일본 공장 설립설’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고객과 일본 정부로부터 일본 신규 공장 건설을 지원하겠다는 강한 확약을 얻었다”고 말했다.

불과 6개월 뒤인 지난 4월 TSMC는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공장을 착공했다. 첫 삽을 뜨는 절차도 순조로웠다. 발표 한 달여 만에 TSMC와 소니는 합작회사 JASM을 세웠다. 이 공장은 2024년 말 양산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외경.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외경. [사진 삼성전자]

TSMC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은 어떨까.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임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의 평택캠퍼스는 2010년 말 경기도 평택을 공장 부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실제 착공에 들어간 건 2015년 5월이다. 평택1공장을 가동한 건 2년2개월 뒤인 2017년 7월이었다. 공장 건설에 들어간 기간은 2년여로 서로 비슷하지만, 삼성의 경우 공장을 둘러싼 갈등은 착공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평택 반도체공장 착공 소식이 알려진 2015년 전력 공급을 둘러싸고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평택 서쪽으로는 충남 당진시 주민들이 북당진변전소 건립을 반대하고 나섰고, 동쪽으로는 경기 안성 주민들이 안성과 고덕을 잇는 송전선 설치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당진시는 행정소송까지 벌였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안성 송전선은 삼성전자가 지중화 작업을 하는 조건으로 중재안이 만들어졌다. 공사비용도 삼성전자가 부담했다. 이미 평택`공장이 가동된 지 2년여가 흐른 2019년 3월 벌어진 일이다. 부지 선정부터 가동까지 7년, 그 뒤로도 2년이 더 걸려서야 문제가 잦아들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라인인 평택3공장을짓는 데는 역대 최단기간인 12개월이 걸렸는데 인허가와 인프라 조성에 5년이 셈”이라고 답답해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지난해 5월 13일 오후 경기 평택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에서 용인 클러스터 중심 메모리 파운드리 투자 확대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지난해 5월 13일 오후 경기 평택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보고에서 용인 클러스터 중심 메모리 파운드리 투자 확대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2019년 2월 경기도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입주하기로 하고 용인시로부터 산업단지계획 승인을 받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수도권 공장총량제에서 ‘예외’로 인정받는 데만 2년 넘게 걸린 셈이다. 복병은 환경영향평가였다. 당초 공장이 들어설 용인만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인근 지역인) 안성시로 방류수가 통과한다”는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범위가 늘어났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3월 인허가가 났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현재 주변 토지와 지장물 조사 및 주민 보상, 문화재 조사 등이 진행 중이다. 시장에선 아무리 빨라야 내년 초는 돼야 용인클러스터의 본격적인 착공이 가능하다고 내다본다. 이곳에 입주할 SK하이닉스의 첫 번째 공장은 2025년 착공해 2027년쯤 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공장은 ‘어디에 짓느냐’ 못지않게 ‘얼마나 빨리 짓느냐’가 주요한 경쟁력 잣대가 됐다. 글로벌 수요 기업에 적기에 공급해야 좋은 조건으로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그래픽=전유진 yuki@joongang.co.kr

같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라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은 지난해 11월 부지 낙점을 공식 발표하고 올해 착공을 앞두고 있다. 1996년 지은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도 부지 계약 후 2개월 뒤 착공을 했다. 실제 공장 가동까지는 1년11개월 걸렸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공장은 2004년 8월 부지 계약 후 1년8개월 뒤에 공장이 가동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쯤 되면 거의 ‘속도전’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공장을 짓는 데 필요한 용수나 전력 등 인프라 조성을 위해 관련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부처로부터 일일이 인허가 협조를 받아야 하는 불필요한 규제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4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반도체 초격차 확보 방안’을 발표하며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로 반도체 기업의 속도 경쟁에 맞춘 적기의 공장 신·증설을 위한 규제 해소를 꼽기도 했다.

박재근 한국 반도체 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미국이나 대만은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2년6개월이면 되는데 한국은 6~7년이 소요된다”며 “이러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주변 지자체 협조가 필수적인 인프라 조성 등을 중앙정부로 일원화하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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