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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퍼스펙티브

상향식 공천이 IT시대 정당민주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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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여당(국민의힘)은 대승을 거두었고, 야당(민주당)은 참패했다. 그런데 당의 선거후 풍경이 같다. 양당 모두 계파갈등으로 시끄럽다.
겉모습은 달라 보인다.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뽑는 경선룰을 두고 다툼이 치열하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가 ‘혁신위원회’를 발족시키자 윤석열 정부의 실세 ‘윤핵관’이 번갈아가며 공격하고 있다.
속내는 같다. 핵심은 2024년 4월 총선에서의 공천권 다툼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의원실로 첫 등원하는 자리에 취재진이 몰렸다. 표정이 밝지 않다. 김경록 기자

국회의원이 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6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의원실로 첫 등원하는 자리에 취재진이 몰렸다. 표정이 밝지 않다. 김경록 기자

선거보다 치열한 민주당 집안싸움

민주당의 계파갈등은 이재명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해 대표가 되길 바라는 ‘친명(이재명 지지)’과 이를 반대하는 ‘친문(문재인 지지)’ 사이의 다툼이다. 경남지사에 낙선한 친명 양문석이 13일 SNS에 올린 글이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더 격렬하게 더 단호히 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옳고 그름의 싸움이요, 아군과 세작의 싸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전당대회까지 당내정화투쟁의 깃발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양문석은 계파갈등을 ‘당내정화투쟁’이라 정의한다. 그러니까 친명은 옳음이고 친문은 그름이다. 친명은 아군이고 친문은 세작(간첩)이다. 간첩이란..민주당원이면서 사실은 국민의힘에 좋은 짓을 한다는 의미. 세칭 ‘수박’(겉은 민주당 푸른색이지만 속은 국민의힘 빨강색이란 의미)이다.
이처럼 친명은 ‘친문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다. 8월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어야하며, 이를 위해 경선룰을 바꿔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쟁점은 두 가지. 첫째, 이재명 지지자인 ‘개딸’들에게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다. 개딸들은 대선 직후 민주당에 무더기로 입당했다. 3개월 지났다. 그런데 투표권은 당원가입후 6개월 지나야 주어진다. 투표자격요건을 3개월로 단축하자는 것이다.
둘째, 개딸들의 투표 비중을 높여달라는 요구다. 현재 당대표 선출방식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국민여론조사 10% 일반당원 5%다. 여기서 개딸들이 속하는 권리당원 비중을 높이고, 대신 지역위원장이 임명하는 대의원 비중을 낮추자는 주장이다.
물론 친명이 요구하는 경선룰 개정의 대의명분은 ‘혁신’이다. 룰을 이렇게 개정할 경우 이재명의 당대표 당선은 확실시된다. 2027년 대권후보 자리도 굳히게 된다.
반면 친문은 ‘이재명(1963년생) 책임론’을 주장하면서 차기 당권을 ‘1970년대생이 맡아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3월 대선만 아니라 6월 지방선거 패배 역시 이재명 책임이다. 따라서 이재명은 당대표에 나서면 안되며, 과격 친명은 물갈이 대상이다.
8월 당권을 잡게되는 당대표는 2024년 총선 공천권을 장악하게 된다. 조응천 의원은 13일 인터뷰에서 ‘이들(이재명과 친문핵심 전해철 의원)중 누군가 (차기 당대표) 되면 다음 총선에서 공천에 굉장히 편중될 거 아닌가.. 불안감도 있기 때문에 전당대회 룰 가지고 시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준석은 이 자리에서 공천제도 개혁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경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준석은 이 자리에서 공천제도 개혁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경록 기자

이준석 공천혁신에 놀란 윤핵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1일 지방선거 다음날인 2일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처음엔 ‘그런가보다’하던 윤핵관이 ‘혁신위에서 공천시스템 개혁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일제히 이준석을 공격했다.
13일엔 젊은 윤핵관 배현진 최고위원이 정면공격했다. 배현진은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혁신위는 이준석 사조직에 가깝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혁신위원을 추천하기 어렵다’며 ‘(이준석 대표가) 처음엔 혁신위 구성 외 아무 말도 없지 않았냐. (공천개혁 얘기 않은 것은) 대표가 거짓말한 꼴’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은 12일 대표취임 1년 기자회견에서 작심발언했다. ‘본인들(윤핵관) 사고의 틀로 보면..저 자식(이준석)이 공천 독점하려고 또 수를 쓰네..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말 그대로..머리 속에 공천권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공천권 생각밖에 안드는 거다..누구를 찍어내릴까밖에. 친이와 친박이 서로 공천학살하던 경험에 젖어 있어..그 트라우마 이해하지만 제도정비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에 또 죽는다.’
이준석의 발언은 직설적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옥쇄파동’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친박이 공천과정에서 친이(친 이명박)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계파갈등이 심각해져 결국 총선에서 패배했다. 박근혜 탄핵을 초래하고 정권을 빼앗겼다.
이준석 자신은 ‘다음 총선에서 패배하지 않기위해 공천개혁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윤핵관들은 ‘이준석이 공천권 뺏어갈까’하는 두려움에 ‘계파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준석의 주장이다.
공천개혁이 제대로 진행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준석 대표임기는 1년뒤 끝나며, 윤핵관은 끝까지 공천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준석이 1년뒤 당대표에 다시 당선된다면, 공천개혁은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중심의 소장파가 주류가 되고, 2027년 대선후보는 이준석이 될 수도 있다. 1985년생 이준석은 2027년이면 대통령출마 나이제한(40세)을 넘는다.

김종필 공화당의장(왼쪽)이 1967년 박정희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종필이 60년전 만든 공화당의 중앙당 중심 하향공천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의 맞담배가 인상적이다.

김종필 공화당의장(왼쪽)이 1967년 박정희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김종필이 60년전 만든 공화당의 중앙당 중심 하향공천 관행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과의 맞담배가 인상적이다.

독재정치의 유산, 하향식 공천

공천이란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4년이다.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3선개헌을 준비했다. 그래서 개헌에 찬성하는 충성파만 골라 당선시키기위해 공천이란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가 헌정사에 오점으로 기록된‘사사오입’개헌이다. 개헌찬성(135명)이 재적(203명) 3분의2(135.33)에 미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의원들이 ‘반올림(사사오입)하면 3분의 2는 135’라며 개헌통과를 결의했다. 하향식 공천은 이처럼 위헌적인 개헌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향식 공천을 더욱 철두철미하게 제도화한 것은 김종필의 공화당이다. 공화당 창당을 주도한 사람은 김종필이다.
김종필이 5ㆍ16직전 쿠데타세력을 규합할 당시 두 장의 문서를 품고 다녔다. 하나는 중앙정보부 조직도, 다른 하나는 공화당 조직도. 쿠데타로 집권할 경우 중앙정보부와 공화당을 중심으로 정권을 끌고가겠다는 ‘김종필 플랜’이다.
김종필은 5ㆍ16 성공하자마자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중앙정보부를 이용해 공화당을 만들었다. 중앙정보부가 전국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충원하고 자금을 댔다. 공화당은 정당이라기보다 군부독재의 통치기구였다.
공화당을 통제하는 장치가 중앙당(사무국)과 공천제도다. 중앙당이 사무국을 통해 전국을 조직화하고, 공천을 통해 충성파만 선발, 정치를 상명하복 군사작전처럼 전개했다.
김영삼ㆍ김대중이 이끌던 야당은 공화당을 욕하면서 따라했다. 공천을 통해 파벌을 유지관리했다. 그래서 이런 비민주적 공천관행은 김영삼ㆍ김대중 정부까지 이어졌다.

정당민주화의 출발, 오픈 프라이머리

최근 20년간 공천의 형식은 많이 변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뽑은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이 성공하면서 개방형 경선, 상향식 공천 바람이 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향식 공천은 여전하다. 보스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중앙당 공직후보관리위원회(공관위)의 역할이 여전히 막중하다. 6ㆍ1 지방선거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경우 인천(계양을)의 송영길 대표가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대선후보 이재명이 경기도(분당)를 버리고 계양을에 출마했다. 민심과 무관한 공천이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 강서구청장 김태우 당선인. 청와대 특별감찰반이던 김태우는 2018년말 민간인 사찰의혹을 폭로했는데, 그 과정에서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일부 유죄(징역1년 집행유예2년) 선고받았는데도 공천을 받았다. 당선 열흘만에 열린 항소심에서 검찰이 ‘징역 2년6월’을 구형했다. 금고형 이상 확정되면 당선무효다. 황당한 낙하산 공천이다.
하향식 공천을 막는 길은 상향식 공천이다. 당원과 유권자가 투표로 후보를 뽑는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ㆍ개방형 예비선거)가 IT정보화시대에 맞다.
2020년 총선의 경우 오픈 프라이머리 형식의 후보경선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중앙당에서 결정한 전략공천이나 단수공천이었다. 상향식 도입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하향식이다. 공관위 기능을 줄이고 유권자들의 직접선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정치인에겐 정당이 출세도구지만, 유권자에게 정당은 소통채널이다. 따라서 상향식 공천은 유권자가 주권을 되찾는 정당민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