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비선 논란 자초한 김건희, '유쾌한 정숙씨' 전철 밟을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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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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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갈등, 장애인 시위 등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안마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인을 대동해 봉하마을을 방문한 데 대해 '비선 논란'이 제기되자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사적으로 지인이 동행하면 안 된다는 법은 누가 만들었나, 민주당이 직권상정으로 입법할 계획이냐'며 야당을 저격했다. 진 전 교수는 한 발 더 나갔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식적 자리에 비공식적으로 사인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왜 나쁜지 모르겠다, 이런 식이면 예수도 집어넣을 수 있다"고 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김 여사 오른쪽이 코바나 전무였던 김량영 충남대 교수.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비에 헌화하고 있다.김 여사 오른쪽이 코바나 전무였던 김량영 충남대 교수.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호·의전 문제를 떠나 대통령 부인이 국민의 주목을 받는 공식 행사에 공적 업무 경험이 전무한 지인을 대동해 주요 사진의 한 프레임 안에 잡히도록 같이 일정을 소화한 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인식도 놀랍지만, 문제 제기 자체가 그저 윤 정부를 흠집 내려는 야당의 억지라는 식의 두 사람 주장을 접하고는 잘못한 일 없이 야단맞는 것 같아 찜찜했다. 윤 정부 실패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나 맹목적 반(反)윤과는 거리가 먼 나 역시 김 여사의 최근 행보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빚어진 직후 대통령실의 대응은 불편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식 일정에 왜 지인이 동행했느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비공개 행사였다"고 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이런 해명을 하나 싶다. 방문 당일인 지난 13일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직접 언급한 데서도 알 수 있듯 김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은 언론에 미리 고지된 공식 행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의 환담 내용만 비공개였다. 봉하 도착부터 노 전 대통령 추모비 참배, 사저 예방 사진 모두 대통령실 제공으로 일반에 공개됐고, 바로 그 사진마다 김 여사의 십년지기이자 그가 운영해온 전시 기획사 코바나컨텐트 전무라는 충남대 무용학과 김량영 겸임교수가 등장한다. 이쯤 되면 "야당의 무분별한 공세" 운운에 앞서 "공사 구분 못 한다"(최재성 전 정무수석)는 논란을 자초했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어제(15일) 유감 표명 대신 "봉하마을은 국민 모두가 갈 수 있는 곳 아닌가, 공식 수행이나 비서팀이 전혀 없어 혼자 다닐 수도 없다"고 했다. 논점을 한참 벗어나기도 했거니와 사실도 아니다. 봉하마을엔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대통령 부인 바로 옆에 서서 대통령실이 언론에 제공한 공식 사진에 등장해 그의 측근이라는 걸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하는 말이다. 게다가 이날 방문은 현직 대통령실 직원은 물론 코바나 직원 두 명(※대통령실 채용 예정)도 동행했기에 이처럼 드러나게 김 교수의 도움을 꼭 받았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페이스북 포스팅. [페이스북 캡처]

김건희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페이스북 포스팅. [페이스북 캡처]

김 여사와 직접 문자를 주고받으며 대통령실을 패싱하고 대통령 부부의 미공개 사진을 공개한다거나 무리한 모금 운동을 벌이고, 심지어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SNS상에서 욕설을 해 구설에 오른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회장 강신업 변호사가 동행하지 않을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런데 지난해 강 변호사와 김 교수가 각각 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와 코바나 전무 타이틀로 대한민국 장애인 국제무용제 조직위원으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걸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김 여사 주변 친분이 결국 어떻게 이어져 어떤 결말을 낼지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 혼자 불안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이준석 대표나 진중권 전 교수 같은 목청 큰 유력 스피커들이 일반 국민 눈엔 맹목적으로 보일 만큼 대통령 부인 편을 들다간 자칫 의도만 나쁘지 않다면 대통령 부인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문고리 권력의 폐해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테고, 지난 문재인 정부 당시 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어서다.

지난 2019년 라오스 국빈 방문 후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환송식 나온 사람들에게 손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대통령보다 김정숙 여사가 앞서 걸은 사진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2019년 라오스 국빈 방문 후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환송식 나온 사람들에게 손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대통령보다 김정숙 여사가 앞서 걸은 사진이 공개되자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은 다들 기억이 가물가물하겠지만 지난 2017년 문 정부 초기엔 김정숙 여사가 김건희 여사만큼 화제의 중심이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2012년 대선 당시부터 별명으로 밀어온 '유쾌한 정숙씨'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무례를 유쾌로 포장한 언론플레이를 했고, 과하다 싶은 장면이 연출돼도 주변에서 견제는커녕 "유쾌하다""잘한다"고 오히려 부추기니 국빈 방문한 나라에서 대통령보다 앞서 걸으며 손을 흔들지 않나, 대기업 CEO를 혼자 부르고, 무리해서 단독 해외 방문까지 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사상 초유의 특활비 옷값 논란으로 귀결됐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 맞은 부끄러운 최후였다. 김건희 여사가 이를 타산지석 삼아 임기 내내 선을 지키는 활동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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