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긱워킹의 시대, 아 유 레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팀 팀장

박수련 팩플팀 팀장

오토바이와 반려견 유모차. 해외에 살다가 3년 만에 한국에 온 지인이 ‘서울 길거리에서 눈에 띄게 늘었다’고 꼽은 두 가지다. 2년만에 배달의민족(배민) 앱 사용자는 2배(올해 1월 2000만명)가 됐고, 600만 반려가족 시대가 되고보니 거리 풍경도 변한다.

그중에서도 골목 곳곳을 누비는 배달 라이더들은 배민이나 쿠팡이츠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받고, 초단기로 노무를 제공한다. 특정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 즉 전속성 없는 긱워커(gig worker)들이다. 이들은 ‘1인 사장님’(사업소득세 납부자)이지만, 플랫폼 알고리즘이 바뀌면 수입에 바로 영향을 받을 만큼 플랫폼에 종속돼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로 확인된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약 220만명. 이중 일자리 알선 업체 아닌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일감을 배당받는 이들은 약 66만명(15~69세 취업자의 2.6%)이다. 이들의 75%가 배달·운송업을 한다.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원천징수된 ‘사업소득 3.3%’를 환급받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관련 앱 서비스 캡처 화면.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원천징수된 ‘사업소득 3.3%’를 환급받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관련 앱 서비스 캡처 화면.

그런데 최근 일자리 트렌드를 보면 배달 라이더 급증은 ‘본편 전 프리퀄’이었구나 싶다. 소프트웨어 개발, 웹디자인, 외국어 통번역, 콘텐트 창작, 미용·가사 등 운전이나 배달 외에도 초단기 일감을 연결해주는 매칭 플랫폼들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관련 HR 플랫폼의 한 창업자는 “풀타임 일자리보다 프로젝트나 시간 단위 일자리가 실제로는 훨씬 많고, 이런 일감 매칭은 기존 알선 업체보다 알고리즘이 더 잘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부터 회자된 ‘대퇴사 시대(Great Resignation)’란 유행어 뒤에도 이런 믿는 구석이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잘하는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기술 환경과 인프라 말이다. 퇴사가 두렵지 않다는 사람들에게 ‘이게 좋은 일자리냐?’는 반문은 어쩌면 무의미하다. 코로나 이후 세계에선 일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데 가치를 둔다.

최근 TV 광고에 세무회계 스타트업 삼쩜삼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런 흐름의 방증이다. 근로소득 말고, 사업소득에 대한 원천징수 비율(3.3%)을 따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실제 장혜영 의원실이 지난 2월 국세청에서 받은 2020년 납세자료를 보니 기존 분류로 정의하기 어려운, 독립된 자격으로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경우를 포괄하는 ‘기타자영업자’가 약 345만명. 5년 전의 2배다. 이들은 사장님(employer)일까, 근로자(employee)일까? 그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이들을, 이젠 제3의 그룹 ‘워커’로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안전망은 물론, 합리적인 과세를 위해서라도 법과 제도가 빠르게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말 국회가 전속성 없는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하기로 법을 바꿨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