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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스부터 나인원한남까지…'환갑’ 맞는 대신증권 343시대 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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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익근 대신증권 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익근 대신증권 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1990년대 ‘빅5’ 증권사 중 살아 남은 유일한 증권사에요. 위기관리 능력 덕분에 수많은 고비를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이사 인터뷰]

오는 20일 60번째 생일을 맞는 대신증권의 오익근(60) 대표의 이야기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에서 만난 그의 말에는 '35년 대신증권맨'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1987년 공채로 입사한 뒤 2020년 사장이 됐다. 1962년 삼락증권으로 출발한 대신증권은 지난 75년 3월 창업자인 고(故)양재봉 창업자가 인수한 후 그해 4월 사명을 대신증권으로 바꿨다.

1979년 대신증권에서 국내에 처음 설치한 시세전광판. 자료 대신증권

1979년 대신증권에서 국내에 처음 설치한 시세전광판. 자료 대신증권

대신증권의 60년은 한국 증권 시장의 역사와도 같다. 인터넷 등 기술의 진화로 이젠 사라졌지만, 1979년 시세전광판을 지점 객장에 처음 들여놓은 곳이 대신증권이다. 시세를 확인하려 몰려든 투자자들의 모습에서 증시의 희노애락을 읽어낼 수 있었다. 국내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의 시작인 ‘사이보스’도 대신증권이 지난 97년 처음 선보였다.

시장의 변화를 이끈 '증권사 최초'란 타이틀만큼이나 60년의 세월에서 눈에 띄는 건 ‘위기관리 능력’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버텨낸 게 대표적인 사례다. 외환위기 당시 5대 대형 증권사였던 대신·대우·동서·쌍용·LG 중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지 않은 곳은 대신증권이 유일하다.

오 대표는 “(창업자는) 지난 95년 돈을 벌었을 때 빚(단기차입금)을 다 갚고 무차입경영에 들어갔다”며 “2년 뒤 외환위기가 터져 상당수 기업이 연 30%에 이르는 고금리에 부도에 몰렸지만 (대신증권은)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증권업계를 흔들었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때도 대신증권의 리스크 경영이 빛을 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ELS 기초자산이던 글로벌 증시 급락으로 원금 손실 사태가 이어졌다. 대신증권은 투자자 피해가 거의 없었다. 2016년 홍콩증시가 폭락할 때 ELS 투자로 손실 우려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행 규모를 줄인 덕분이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시장이다. 2000년 초반 증시 환경은 바뀌고 있었다. 낮은 수수료로 무장한 온라인 증권사가 등장했고, 자본시장법이 바뀌면서 자기자본 규모에 따라 사업 영역이 결정됐다. 경쟁에서 밀릴 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으로 오 대표는 2011년 저축은행 인수를 꼽았다. 보수적이고 깐깐한 대신증권의 변화를 알린 ‘신호탄’이었다.

당시 저축은행 인수 총괄(TFT 본부장)을 맡았던 오 대표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중앙부산과 부산2, 도민저축은행을 우량한 자산과 부채만을 인수하는(P&A) 방식으로 인수했다”고 말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저축은행 인수는 주식 중개(브로커리지)에 치중했던 대신증권이 사업 다각화에 나설 발판이 됐다. 저축은행(대신저축은행)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신을 취급하면서 부동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2014년에는 부동산 부실채권(NPL)을 관리하는 우리에프앤아이(현 대신에프앤아이)를 인수했고, 2019년엔 부동산 신탁업(대신자산신탁)도 시작했다.

특히 지드래곤 등 유명 연예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끈 서울 한남동 고급 주택단지 ‘나인원한남이 부동산 경쟁력을 입증한 사업이었다. 개발업체인 디에스한남(현 대신프라퍼티)은 대신에프앤아이의 자회사다.

서울 중구 대신증권 사옥. 중앙포토.

서울 중구 대신증권 사옥. 중앙포토.

창립 60주년을 맞는 대신증권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그 첫걸음이 명동 사옥명을 ‘대신파이낸스센터’에서 ‘대신(Daishin 343)’으로 변경한 것이다. 1976년 현 명동예술극장(구 국립극장)에 자리를 잡았다가 1985년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했던 대신증권은 2016년 말32년 만에 명동으로 돌아왔다.

오 대표는 "사옥 명은 사옥 주소인 ‘중구 삼일대로 343’에서 따온 것"이라며 "세계에서 하나뿐인 주소로, 행운의 숫자인 7을 세 번 곱하면 343인 것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의 먹거리로 주목하는 것은 리츠와 대체투자다. 이를 위해 올해 하반기에엔 유럽 아마존 물류센터와 일본 오피스 등 선진국 우량 부동산을 편입한 ‘대신 글로벌 코어 리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1985년 총자산 1293억원, 자기자본 299억원, 임직원 590명의 중견 증권사였던 대신증권은 현재 총자산 23조5050억원, 자기자본 2조6029억원, 그룹 임직원 2000여명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8855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오 대표는 "대신증권은 증권을 비롯해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금융 부문과 에프앤아이, 자산신탁 등 부동산 부문의 전문성을 결합해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 냈다"며 "최근 10년간 금융그룹으로서의 성장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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