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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자살골' 뒤 일시정지…한일 협력 지소미아 정상화 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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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1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지소미아(한ㆍ일 군사정보 보호협정)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13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이를 재확인했다. 일본도 곧바로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화답했는데, 이를 통해 북핵 위협 고도화에 대비해 양국 안보 협력이 정상 궤도를 찾을지 주목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특파원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 외교장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특파원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조건 앞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박 장관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종료 효력 유예'라는 애매한 상태의 지소미아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지소미아는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정상화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지소미아 정상화 전 일본이 수출 규제부터 철회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한ㆍ일 간 신뢰가 회복되고 관계가 개선되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2019년 8월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배경은 직전 이뤄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때문이었다. 일본이 안보 상의 이유로 한국을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자 정부는 "신뢰 결여와 안보 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느냐"(김현종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며 지소미아를 대응 카드로 썼다.

하지만 일본은 수출 규제를 사실상 2018년 10월 강제징용 대법 판결과 연계했다. 일본 전범 기업이 징용 피해자에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었는데,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사안을 한국이 뒤집었다며 반발했다.

이처럼 지소미아-수출규제-강제징용으로 각종 갈등 현안이 얽혀있는 가운데 박 장관의 "신뢰 회복에 따른 자연스러운 해결" 발언은 조건을 걸기 시작하면 해결점을 찾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8월 김현종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이 청와대에서 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스1.

2019년 8월 김현종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이 청와대에서 지소미아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스1.

日 넘어 대미 메시지

결국 막판에 종료 결정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기사회생 시켜두긴 했지만, 사실 외교안보 측면에서 보면 '지소미아 카드'는 애초에 문 정부의 '자살골'이나 다름 없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한ㆍ일 안보 협력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냈을 뿐 아니라 되레 미국을 펄펄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은 대놓고 한국에 대해 "실망했다(disappointed)"고 말했고, 미 국방부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2019년 11월 지소미아 종료 당일, 협정의 효력이 상실되기 6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종료 유예'를 발표했다. 수출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사실상 미국의 전방위 압박이 동인으로 작용했다.

지소미아 복원시 한·일 관계를 넘어 한·미 동맹 및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라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을 향해 한ㆍ일 갈등이 '약한 고리'로 작용해 역내 안보 태세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약속하는 게 될 수 있다.

2019년 11월 김유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소미아의 종료 효력을 정지하고 종료를 유예한다고 발표하는 장면을 시민이 지켜보는 모습. 뉴스1.

2019년 11월 김유근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소미아의 종료 효력을 정지하고 종료를 유예한다고 발표하는 장면을 시민이 지켜보는 모습. 뉴스1.

특히 북한이 노골적으로 대남 전술핵 사용을 위협하는 가운데 지소미아를 복원할 명분과 여건도 마련되고 있다.

문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며 지소미아를 체결한 2016년 11월부터 일본 측에 종료를 통보한 2019년 8월까지 "약 3년간 정보 교환 실적이 29건에 그쳤다"고 밝혔다. 당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한ㆍ미가 정보를 주고 받으면 될 일이고, 일본이 주는 정보는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한ㆍ일 간 군사 정보 교환의 효용을 사실상 폄하한 것인데, 북한이 4년여만에 모라토리엄을 깨고 '소나기' 미사일 도발을 재개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최근 장ㆍ단거리 미사일을 섞어 쏘고, 한 번에 미사일 여덟 발을 무더기로 발사하는 등 전술적 다양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ㆍ일은 북한이 쏜 미사일 갯수, 사거리, 고도 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자주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ㆍ미ㆍ일이 탐지한 정보가 제대로 합쳐져야만 '완전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지소미아의 발효, 수정, 종료 관련 21조. 협정문 캡쳐.

지소미아의 발효, 수정, 종료 관련 21조. 협정문 캡쳐.

'지소미아 시간' 다시 돌리려면

현재 지소미아의 정확한 법적 지위는 '종료 통보 효력 정지' 상태다. 지소미아 21조는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이며, 협정 종료를 원하면 90일 전에 외교 경로를 통해 상대국에 서면 통보해야 한다. 이런 조치가 없으면 자동 연장된다"고 돼 있다. 문 정부는 지소미아 만료 90일 전인 2019년 8월 이런 종료 요건을 모두 충족해놓은 뒤 11월 유예했다. 지소미아의 시간은 2019년 8월부터 '일시 정지'돼 있는 셈이다.

사실 지소미아에는 문 정부가 했듯이 종료를 통보했다가 유예하는 것과 관련한 조항 자체가 없다. 이에 당시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종료 유예' 결정을 사실상 '종료 철회'로 해석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의 지소미아 갱신(renew)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 지소미아의 연장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종료 철회에 대한 조항도 없지만, 지소미아는 한·일 양자 간 협정이기 때문에 양측만 합의하면 굳이 명문화돼 있지 않더라도 복원 자체는 곧바로 이뤄질 수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박진 장관이 지소미아 복원을 관계 개선과 맞물려 언급한 것처럼 우선 전반적인 상황 변화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다음달 일본 참의원 선거 전에는 한ㆍ일 관계 회복의 첫 단추를 꿰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초 이달 중으로 추진되던 박 장관의 방일이 선거 뒤로 미뤄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지소미아 정상화는 북핵 문제에 대한 역내 안보 우려를 해소하고 한ㆍ미ㆍ일 안보 협력의 상징적 의미를 띠므로 일본에도 매우 도움이 된다"며 "다만 기시다 내각은 참의원 선거 직전까지 역풍이 불 수 있는 행보는 자제하며 만전을 기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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