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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새 부산서만 아찔한 방화ㆍ방화시도 3건… 1명 구속

중앙일보

입력

“홧김에” 파출소 걸어 잠그고 불 지르려 한 50대 구속 

지난 12일 오후 7시40분쯤 부산 영도구에 있는 대교파출소에 50대 남성 A씨가 들어섰다. 파출소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에는 정체 모를 액체가 담겨 있는 투명 페트병이 A씨 손에 들려 있었다. 이후 경찰은 태연하게 파출소 출입구의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던 A씨를 곧장 제지했다. 당시 A가 들고 있던 페트병 안에는 휘발유가 들어있었으며, 라이터도 소지하고 있었다. 경찰은 인화물질을 이용해 파출소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현주건조방물방화예비)로 지난 14일 A씨를 구속했다.

부산 파출소 방화시도 50대 구속…사흘 새 부산서만 방화ㆍ방화시도 3건

파출소에 방화를 시도하는 50대. 부산경찰청제공영상 캡처

파출소에 방화를 시도하는 50대. 부산경찰청제공영상 캡처

조사 결과 A씨는 홧김에 이런 범행을 저지르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범행을 시도하기 1시간 전 A씨는 대교동에 있는 한 장례식장 앞에서 행인에게 시비를 걸다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A씨가 시민 불안감을 조성했다고 보고 그에게 범칙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이 처분에 분노했고, 술에 취한 채 대교파출소를 찾아와 30분가량 항의하며 소란을 피웠다. “주취 소란 혐의로 입건할 수도 있다”는 경고에 파출소를 나섰던 A씨는 그러나 분을 삭이지 못하고 인화물질을 소지한채 다시 파출소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이 지난 13일 신청한 그의 구속영장은 이튿날 곧장 발부됐다.

대구 화재 참사 이후 꼬리 무는 방화·방화 시도

지난 9일 대구 수성구 변호사사무실에서 발생해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방화 참사도 이 같은 ‘분노 범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연이은 소송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천모(53·사망)씨가 직전 소송 2건에서 잇달아 패소한 뒤 상대방 측을 변론한 변호사 사무실을 표적 삼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천씨가 흉기난동을 벌인 흔적도 확인됐다.

대구 변호사 사무실 폭발화재 사건 비디오 캡쳐

대구 변호사 사무실 폭발화재 사건 비디오 캡쳐

대구 방화사건 이후로도 비슷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교파출소 방화 시도 이튿날인 지난 13일 오후 11시에는 부산 금정구 부산외대 기숙사 화장실에서 불이 나 기숙사에 머물던 학생 등 900여명이 대피했다. 현장에서 종이뭉치와 라이터 등 불을 지른 흔적을 확인한 경찰은 재학생인 20대 남성을 체포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5시간 뒤인 14일 오전 3시40분에는 부산 중구 남포동에 있는 상가 건물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건물 2층 창고에 이어 지하에 있는 콜라텍에서 불이 나 17명이 대피했다.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건 불이 난 콜라텍을 운영하는 70대 남성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시너와 라이터 토치가 발견됐다. 해당 남성이 2층 창고와 지하 콜라텍에 들른 후 불이 난 점으로 미뤄 방화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 “분노 사회 징후” 우려, 해결책 없나

대구지법 인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서 불이나 시민이 옥상 부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지법 인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서 불이나 시민이 옥상 부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범죄심리 전문가인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들 사건에서 ‘분노 사회’의 징후가 읽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방화 사건의 주된 동기 중 하나가 복수심”이라며 “여러 요인에 의해 쌓여있던 개인의 분노가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될 때 방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최근 3년간 한국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코로나19와 경기 침체에 따른 우울감, 좌절감에 시달려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사소한 범칙금부터 중요 재판에서의 패소 등 요인이 쌓여있는 분노를 촉발시키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부분 시민에게 오랜 기간 쌓여온 분노여서 맞춤형 대책을 세우기도 어려운 문제”라고 진단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런 유형의 화재 사건은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이후 모방 범죄가 뒤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문제는 즉각적인 대비책을 세우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가령 스프링클러는 효과적인 조기 진화 수단이지만, 이미 지어진 건물에는 설치가 까다롭고, 기간도 오래 걸리는 수단”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들 사건이 파출소, 대학 등 주로 공공기관에서 발생한 점에 주목했다. 공 교수는 “부산 대교파출소 방화 시도의 경우를 보면 훈련된 경찰관이 즉각 수상함 낌새를 채 대응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공공기관 소방훈련 때 방화 가능성에 대한 대비나 실제 방화가 일어났을 경우를 상정한 행동 지침 등을 보완하면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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