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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진에 "배퀴벌레"…건들면 '준빠' 온다, 與 '이준석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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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당 대표가 부하입니까. 자중하십시오. 이준석 대표는 당신과 격이 다른 정치인입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위한 정책 제언 대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재단 설립을 위한 정책 제언 대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배현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휴대전화로 지난 13일 오후 전송된 문자 메시지의 일부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배 최고위원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추진하는 혁신위원회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실이 본지 보도로 알려지자 이 대표의 지지자가 항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배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가) 이 대표의 사조직에 가깝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직격했다.

같은 시간 이 대표의 지지층이 주로 밀집한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펨코)’ 게시판에는 “배카는 무슨 앞으로 배퀴벌레라고 불러라”와 같은 인신모독성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펨코 이용자를 중심으로 배 최고위원의 성씨 ‘배’와‘가카(대통령 각하)’를 합성한 ‘배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대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바퀴벌레와 합성한 ‘배퀴벌레’로 부르자는 극단적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일부 네티즌은 자신이 배 최고위원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하며 자랑스레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배 최고위원은 “불특정 다수가 접근 가능한 소셜미디어 계정뿐만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로도 항의 문자가 이어졌다”며 “나를 두고 ‘구태 정치인’이라고 표현하거나 ‘이 대표를 끌어내리려고 작정했느냐’는 식의 문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여권에선 이처럼 이준석 대표와 각을 세웠다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낭패를 당하는 정치인이 늘고 있다. 정치인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거나 욕설과 발음이 비슷한 ‘18원’ 단위의 후원금을 보내는 적극적 의사 표시는 주로 더불어민주당 극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대표에 우호적인 국민의힘 젊은 지지층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상대방 정치인을 공격하는 문화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 정도면 이제 ‘이준석 포비아(공포증)’가 퍼지고 있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처럼 이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공격받은 건 배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다. 최근 이 대표와 크게 갈등을 빚었던 5선의 정진석 의원도 이 대표 지지자들의 타깃이 됐다.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인 이 대표가 정 의원과 날선 발언을 공개적으로 주고받던 지난 7일 펨코에는 “정 의원의 조부가 친일 행각을 벌인 의혹이 있다”는 식의 공격적인 글이 다수 올라왔다. 2014년 한 온라인 매체의 기사를 근거로 한 의혹 제기였다. 일부는 정 의원을 “적폐 청산 대상”이라고 저격하는 글도 올렸고, 여기에는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뿐이 아니다. 이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한 국민의힘의 조수진 최고위원과 안철수 의원 등에 대한 비판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다. 조 최고위원은 지난해 12월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응하는 방안을 놓고 이 대표와 충돌했다. 당시 조 최고위원 역시 이 대표의 지지자들로부터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고 한다. 바른미래당 시절부터 구원이 있고, 국민의당과 합당 이후 최근까지도 사이가 좋지 않은 듯한 모양새인 안철수 의원을 향해선 ‘철수깡(안철수와 과자 새우깡을 합한 조어)’, ‘간철수(간 보는 안철수의 줄임말)’와 같은 모욕적 표현을 쓰는 일이 허다하다.

국민의힘의 배현진 최고위원이 이준석 대표의 지지자로부터 받은 문자.

국민의힘의 배현진 최고위원이 이준석 대표의 지지자로부터 받은 문자.

반대로 친이준석 성향의 정치인에게는 응원과 격려 문자가 답지한다고 한다.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종종 ‘이 대표를 지켜달라’는 문자를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적으로 이 대표의 행보를 비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성 상납 의혹 등으로 이 대표의 입지가 흔들리는) 지금 같은 시기에 이 대표의 발언을 비판해서 되겠느냐는 식의 장문을 문자를 받았다”면서도 “내가 친이준석 성향으로 알려져있어 그런지, 불필요한 욕설이나 거친 항의는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 지지층의 피아구별이 확실한 셈이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 지지층의 이같은 행보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미 민주당에서 이러한 ‘팬덤 정치’의 폐해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고, 대선과 지방선거에 연이어 패한 민주당 내부에선 “팬덤 정치가 민주당을 망쳤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큰 까닭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적극 지지층인 ‘문파’와 ‘문꿀오소리’, 이재명 의원의 적극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과 ‘양아들(양심의아들)’에 대해선 민주당 내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 대표 적극 지지층을 문파의 부정적 표현인 ‘문빠’에 빗대 ‘준빠’로 부르곤 한다.

국민의힘 중진급 인사는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지지세가 강한 청년들의 팬덤을 자기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며 “굉장히 건강하지 못하고, 장기적으론 독이 될 문화를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이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타인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당의 다원주의를 침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강성 지지층에 기대는 전략을 택했다가 꼬리(소수의 강성 지지자)가 몸통(당 전체)을 흔들게 된 민주당의 선례를 밟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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