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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극찬한 '기저귀 혁신기술' 한국에선 1곳도 못쓴다, 왜 [규제 STO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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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은 헬스 케어 기업 '모닛'의 박도형 대표(사진)가 전시 부스에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모닛]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은 헬스 케어 기업 '모닛'의 박도형 대표(사진)가 전시 부스에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모닛]

헬스케어 기업 ‘모닛’은 기저귀 감지 기술을 개발해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22)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시중에 판매하는 기저귀에 기기를 부착하기만 하면 기저귀의 오염도를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노약자나 환자가 기저귀를 제때 갈지 않아 생기는 발진·요로감염·욕창 등의 위험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혁신 제품에 사례 요구는 난센스”

세계 최대의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가 혁신 기술로 꼽았지만 이 회사는 현재 요양 기관·병원 등과의 거래 실적이 전무하다. 장기요양보험(복지 용구) 등록이나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대당 29만9000원이나 하는 가격이 부담돼서다.

이 회사 박도형 대표는 "장기요양보험·건보 적용을 위해선 복지 용구로 신청 등록이 돼야 하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선 사례가 없어서 안된다는 입장이라 등록이 불가능하다"며 "혁신 제품에서 사례를 찾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기기 등록과 보험 적용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사를 받으려고 해도 과정이 길고 복잡해 스타트업으로선 대응이 쉽지 않다"며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실증 지원과 등록 절차 간소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레퍼런스 확보를 위해 일단 비급여로나마 의료기기테크노밸리 내 국제인증지원센터의 지원 사업 개시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동안 일본은 지난 4월 개호보험(요양보험)에 ‘배뇨감지센서’를 포함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조정실 직원으로부터 권투 장갑을 선물 받은 뒤 '규제 혁파'를 외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경제조정실 직원으로부터 권투 장갑을 선물 받은 뒤 '규제 혁파'를 외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경기도 여주에 있는 판유리 제조업체 A사는 최근 증설을 추진하다가 급제동이 걸렸다. 자연보전권역에서 ‘폐수배출사업장’으로 분류되면 공장을 1000㎡ 이상으로 증축할 수 없다는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시행령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이 공장에선 폐수를 100% 재사용하고 있어 폐수 배출량이 ‘제로(0)’다.

담당 공무원조차 답답해 하는 ‘낡은 규제’

이 회사 관계자는 “기계 설비를 늘리고 직원 15명을 더 채용할 예정이었는데 무산될 처지”라며 “불법 방류를 전혀 안 하는 곳은 되레 규제를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입장은 다르다. “불법 방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증설을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조차 답답해하는 ‘낡은 원칙론’이다. 황준동 여주시 일자리경제과 팀장은 “폐수를 전량 재이용하는 공장은 증설이 가능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면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새 정부 규제혁신 추진방향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새 정부 규제혁신 추진방향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규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모래주머니’를 걷어낼 컨트롤타워다. 윤 대통령은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빗대 강력한 개혁 의지를 밝혀왔다.

매년 규제 심사 건수 1100건…하루 3개꼴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답답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근 20년 이상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규제 개혁”을 최우선으로 외쳤지만 결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다. 되레 규제 조항이 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신설 또는 강화된 규제 심사 건수는 많을 땐 한해 1200여 건에 이른다. 하루 세 개꼴로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도표 참조〉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업들은 특히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부처 고시, 정부 위원회의 결정만으로도 ‘규제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산집법 시행령을 고쳐 “폐수를 재이용하는 제조시설은 증설을 허용한다”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도입하자는 얘기다.

“성공 사례 미미…이번엔 속도감 내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은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규제 혁신을 강조했지만 성공 사례는 미미했다”며 “이번엔 낡은 규제는 과감히 도려내고 이해 관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속도감 있는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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