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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때 논두렁의 비밀 드러난다…MZ 몰려간 '노잼의 땅'

중앙일보

입력

충남 당진 삽교호 놀이동산. MZ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여행 성지로 급부상한 장소다. 대관람차와 시골 풍경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유원지 옆 논이 인생사진을 위한 포토존으로 통한다.

충남 당진 삽교호 놀이동산. MZ세대 사이에서 레트로 여행 성지로 급부상한 장소다. 대관람차와 시골 풍경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유원지 옆 논이 인생사진을 위한 포토존으로 통한다.

충남 당진과 예산은 소위 ‘노잼’으로 불리던 땅이다. 서해와 아산만 사이에 남북으로 붙은 고장으로, 딱히 이름난 경치도 역사 유규한 유적지도 없는 게 사실이다. 하여 여행자 대부분이 목적지로 두지 않고, 스쳐가는 지역으로 여겼다.

근래 당진과 예산은 입지가 사뭇 달라졌다. MZ세대 사이에서 ‘힙한 여행지’로 뜨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당진과 예산은 ‘커플 사진 찍기 좋은 곳’ ‘이국적인 사진 명소’ ‘당일치기 레트로 여행지’로 통한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관광지와 개성 있는 카페가 늘어난 덕분이다. 예쁘면, 사진이 잘 나오면 어떻게든 사람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고 왔다.

당진, 놀이동산의 추억

인스타그램에 '삽교호' '당진여행' 등을 검색하면 삽교호 놀이동산 대관람차를 인증한 수많은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삽교호' '당진여행' 등을 검색하면 삽교호 놀이동산 대관람차를 인증한 수많은 사진을 찾을 수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MZ세대에서 레트로(복고풍) 붐이 불며 당진은 ‘레트로 여행 성지’로 급부상했다. 영국 런던 템즈강변에 대관람차 ‘런던아이’, 강원도 속초해수욕장에 동해안을 굽어보는 ‘속초아이’가 있다면, 당진에는 전 세계 유일의 논두렁 뷰 대관람차가 있다. 당진과 아산을 연결하는 삽교천방조제 근처에 자리한 ‘삽교호 놀이동산’의 기구다. 소셜미디어에 ‘당진여행’ ‘삽교호’ 등을 검색했을 때 쏟아지는 화려한 색감의 대관람차가 여기에 있다.

입소문이 난 뒤로 유원지 옆 논은 농사꾼보다 젊은 여행자가 더 많이 드나들고 있다. 형형색색의 대관람차 조명과 저녁놀이 어우러지는 해 질 녘이면 인생 사진을 담기 위한 자리 경쟁까지 꽤 치열하다. 모내기를 막 끝낸 요즘은 논에 댄 물을 이용해 대관람차의 반영 사진까지 담아간다.

놀이동산 규모는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 대형 테마파크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나 레트로 감성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느껴지는 놀이기구와 간판은 레트로 사진 놀이를 위한 최고의 피사체다. 한지민, 남주혁 주연의 영화 ‘조제’,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을 비롯해 수많은 TV 예능과 TV 광고의 무대가 된 이유다.

일반 테마파크와 다른 점이 몇 있다. 일단 롤러코스터가 없다. 대신 추억의 놀이기구인 회전목마와 디스코팡팡, 대관람차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자유이용권도 없다. 놀이기구당 6000원을 받는데, 입장료가 없으므로 기념사진만 찍다가 나와도 무방하다.

당진의 해변 카페 '로드1950' 이국적이면서도 낡은 소품으로 가게 안팎을 꾸몄다.

당진의 해변 카페 '로드1950' 이국적이면서도 낡은 소품으로 가게 안팎을 꾸몄다.

당진이 여행지로 뜨면서 삽교호와 아산만에 접한 목 좋은 자리에 카페와 펜션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산만 음섬포구와 맷돌포선착장 사이에 있는 해변 카페 ‘로드1950’이 대표 명물이다. 주인장이 전국의 빈티지 샵을 누비며 공수한 소품이 가게 안팎을 꾸미고 있다. 미국식 간판과 교통 표지판, 낡은 스포츠카 등이 많다 보니, MZ세대에게는 ‘당진 할리우드’ ‘당진 미국 카페’ 따위로 불린다. 500석이 넘는데 이마저도 주말이면 자리가 없어 긴 줄이 늘어서기 일쑤다.

폐교가 된 옛 초등학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아미미술관. 고즈넉한 분위기 덕에 출사지로도 명성이 높다.

폐교가 된 옛 초등학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아미미술관. 고즈넉한 분위기 덕에 출사지로도 명성이 높다.

당진 순성면 안쪽에는 ‘아미미술관’이 있다. 1993년 초등학교가 폐교하며 빈집으로 방치되던 것을 지금의 박기호·구현숙 부부가 미술관으로 단장해 2010년부터 손님을 받고 있다. 푸른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외관, 옛 학교의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전시보다 출사를 목적으로 한 방문객이 더 많다.

예산, 저 푸른 초원 위에  

충남 예산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6월이면 야트막한 동산 전체가 수레국화의 보랏빛으로 물든다. 인생 커플 사진을 담으려는 수많은 연인이 발도장을 찍고 간다.

충남 예산 아그로랜드 태신목장. 6월이면 야트막한 동산 전체가 수레국화의 보랏빛으로 물든다. 인생 커플 사진을 담으려는 수많은 연인이 발도장을 찍고 간다.

대관령 목장, 고창 청보리밭, 보성 녹차밭…. 본래 용도와 상관없이 탁 트인 풍경 하나로 전국구 명소에 오른 곳이다. 예산에도 비슷한 발자취를 따라오는 목장이 있다. 당진과 예산 경계인 고덕면 상몽리 너른 땅에 100만㎡(약 30만 평) 규모로 들어앉은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이하 ‘아그로랜드’)’이다.

아그로랜드는 1978년 태신목장으로 시작해, 2004년 낙농 체험시설로 변모했다. 말‧젖소‧양‧돼지‧타조‧토끼 등이 뛰노는 동물농장이자, 체험시설이요, 캠핌장이다. 무엇보다 너른 들판을 품은 거대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본래 지역 초등학교의 단골 현장 체험 학습장이었는데, 4년 전 목장 들판에 꽃을 심으면서 소위 ‘인생샷 명당’으로 거듭났다.

이제 목장의 주인공은 매년 6월 피는 수레국화다. 3만6000㎡(1만1000평)의 너른 동산을 가득 채워 바람이 일 때마다 보랏빛 장관을 이룬다. 꽃밭 정도가 아니라 파도처럼 광활한 풍경이다. 굽이굽이 뻗은 오솔길 안으로 들면 자동으로 인생샷 포즈가 완성된다. 수레국화는 키가 1m가 채 안되지만, 각도에 따라 보랏빛 물결에 완전히 파묻힌 듯한 사진을 담을 수 있다.

아그로랜드에서 타조를 비롯해 젖소·말·양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아그로랜드에서 타조를 비롯해 젖소·말·양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수레국화의 ‘사진빨’은 젊은 층 사이에선 진즉 입소문이 났다. 인스타그램에 ‘아그로랜드’를 검색하면 6만개 이상의 인증사진이 쏟아진다. 붉은 양귀비가 멋을 부리는 야생화 정원을 비롯해 나무놀이터, 메타세콰이아숲 등 곳곳이 사진 포인트다. 낙농 체험도 가능하다. 소 우유 짜기, 송아지 우유 먹이기, 건초 주기를 묶은 목장 체험(7000원)이 인기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주말이면 하루 3000명 가까운 관광객이 목장을 찾는단다. 아그로랜드 관계자는 “수레국화를 심은 뒤로 입장객이 세배 가까이 뛰었다”고 전했다. 수레국화는 한철 꽃이지만 가을 무렵 코스모스가 그 바통을 잇는다.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402m 길이로 하루 다섯 차례 분수 쇼가 펼쳐진다.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402m 길이로 하루 다섯 차례 분수 쇼가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호(둘레 40㎞, 너비 2㎞)에도 명물이 있다. 2019년 개통한 ‘예당호 출렁다리(길이 402m)’다.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길이 600m) 완공 전까지 ‘국내 최장’ 타이틀을 보유했던 다리로 누적 방문객이 565만명에 이른다. ‘출렁’까지는 아니지만 발을 뗄 때마다 은근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어른 315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했다. 맞은편 언덕에서 출렁다리와 예당호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오후 2시부터 9시까지, 하루 다섯 차례 약 20분간 분수 쇼(음악분수 4회, 레이져 쇼 1회)가 펼쳐진다.

예산읍의 카페 '간양길'. 43년에 지은 낡은 한옥을 브런치 카페로 탈바꿈했다.

예산읍의 카페 '간양길'. 43년에 지은 낡은 한옥을 브런치 카페로 탈바꿈했다.

예산의 분위기를 닮은 농촌 카페가 여럿 뿌리내려 있는데, 요즘은 예산읍 간양리에 있는 카페 ‘간양길’이 핫하다. 1943년 지은 낡은 한옥을 고쳐 카페로 꾸몄다. 예쁘다기보다는 소박한 분위기에 더 끌린다. 국화로 둘러싸인 ‘ㅁ’자형 구조의 한옥집으로, 어느 곳에 자리를 잡든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온 듯한 포근함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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