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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담배 피며 월급만"…日 2030이 경멸하는 '노는 아재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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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번화가의 행인들. 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의 20·30대 49.2%는 "회사에 '일하지 안는 아저씨'가 있다"고 답했다. [교도=연합뉴스]

도쿄 번화가의 행인들. 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의 20·30대 49.2%는 "회사에 '일하지 안는 아저씨'가 있다"고 답했다. [교도=연합뉴스]

"우리 회사에 '일하지 않는 아저씨'가 있다." 이렇게 답한 일본의 20·30대 직장인이 49.2%에 달했다. 최근 일본 도쿄의 컨설팅기업 시키가쿠가 직장인 3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후 일본 사회는 물론 서방 언론도 주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레오 루이스 아시아 비즈니스 에디터는 지난 12일 기명 칼럼에서 일본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아저씨(하타라카나이 오지상)'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세대 간 마찰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20·30대가 본 하타라카나이 오지상의 일과는 사내에서 세대 간 갈등이나 분노를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하타라카나이 오지상이 '허공을 응시하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수다 떨기', '반복해서 간식이나 담배를 하거나 화장실 들락거리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설문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20·30대 직장인을 만나 인터뷰하기도 했다. 30대 제조업에 근무하는 남성은 "일할 의욕도 없고, 엑셀 등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모르는 상사를 보면서 '내가 왜 이 사람보다 월급이 적을까'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은 "남들은 바쁘게 일하는데 멍하니 앉아 있다. '저래도 월급을 받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항변하는 50대도 있다. 인쇄업에 종사하는 50대 직장인은 "젊은 사람들의 눈엔 내가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보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노인이 하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우리가 젊었을 때는 더 일했다'라는 기분도 든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상사가 하타라카나이 오지상이 된 원인에 대해선 "일할 의욕이 없어서(45%)", "연공서열제에 따라 성과를 내지 않아도 급여가 오르니까(41%)"라고 답했다. 또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정년 보장과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구조가 유지되는 일본에서 '일하지 않는 나이 든 동료'는 20·30대로 하여금 열심히 일해도 보상받을 기회가 적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30%는 '나중에 자신도 하타라카나이 오지상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루이스 에디터는 설문조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응답자들은 성과에 기반을 둔 임금 인상과 승진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또 이런 요구는 화이트칼라 노동력의 측정치를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간"에서 "실제 생산량"으로 전환하는 등 일본의 직장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의 50대는 경제 호황과 침체를 모두 겪은 세대라는 관점에서 이들의 현실 안주를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경기 침체 후 열심히 일해도 월급은 '적당히' 오른다는 점과 또 정년이 보장된 일본에서 적당히 일해도 해고되지 않는다는 점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일본의 50대는 '낀 세대'로서 경제호황을 경험한 세대다. 그런 면에서 버블 붕괴 이후 치열한 취업 경쟁을 치른 20·30대의 눈엔 50대가 '놀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라며 "팍팍한 경제 상황에서 자식 교육과 노령화로 인한 부모 부양 압박 등을 안고 살아왔다는 점에서 이젠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급 오르지 않은 '싼 일본'이 악순환 고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의 버블 붕괴 후 정체된 임금은 노동생산성과 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경제학자로 비즈니스 브레이크스루 대학을 설립한 오마에 겐이치 학장은 지난 6일 일본 경제매체 '골드온라인'에 기고한 칼럼에서 30년간 월급이 거의 오르지 않는 상황이 '싼 일본'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열심히 일해도 월급이 오르지 않은 상황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게 했으며,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우수한 인재는 일본을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겐이치 학장은 제조업 부문만 따지면 일본의 생산성은 낮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총무·경리·인사·법무 등 화이트칼라의 '간접' 업무는 21세기에 와서도 디지털화를 이루지 못해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았다. 또 일부 기업은 디지털화를 했지만, 간접 부문 인원은 줄어들지 않았다. 기존에 열 명이 하던 일을 혼자 감당할 수 있게 됐더라도 열 중 아홉은 그대로 남아 '상의하달(上意下達)'을 전해가는 '사내전달계'가 됐다. 이런 곳은 대개 소모적인 회의로 시간만 허비한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일본 기업이 노동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열심히 일한 사원을 내쳐선 안 된다'는 오래된 관행 때문에 인원 감축에 손을 못 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을 한 직장에 두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이로 인해 생산성은 낮아지고, 급료는 오르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겐이치 학장은 2000년대 들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추진한 '어젠다 2010'처럼 일본 정부가 통 큰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뢰더 정부는 고용시장을 비롯해 실업보험·연금 제도 등을 개혁하는 동시에 디지털화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대학·대학원을 통해 재교육시켰다. 이는 실직 후 재취업할 수 있다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며, '고용 유연성이 나아지면 새로운 산업이 태동한다'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겐이치 학장은 독일이 한 것처럼 고통을 동반한 개혁 없인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는 멈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인이 월급을 올리기 위해 할 일은 간접 업무의 디지털화로 생산성을 높이고, 일이 없어진 사람은 재교육을 통해 21세기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 정부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금을 내긴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고 공적 책임으로 21세기 기술을 익힌다'는 정책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이달 초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일본경제의 성장에 방점 둔 '새로운 자본주의'를 발표했다. 향후 3년간 성장분야 인재양성에  3년간 4000억엔(약 3조8000억원) 투자, 남·여 임금 격차 해소 등이 골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정부 주도의 성장전략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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