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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위기관리 시험대 오른 편중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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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대통령 탈 청와대, 기자문답 긍정적

경제 위기 태풍 몰아쳐 민생은 불안

다양한 인재 써 위기 대응력 높여야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신선한 행보가 꼬리를 물고 있다. 대통령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를 떠난 것부터 좋았다. 바위 같은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출근길 기자 문답도 의미 있는 변화다. 전임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이 궁금해하는 현안이 줄을 이어도 직접 들을 수 없었다.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처럼 한국 대통령도 국민에게 사전 각본 없이 의견을 밝히는 시대를 열었다.

나라 안팎의 국정 운영도 안정감을 찾아간다. 서먹해지던 미국과의 관계가 경제·안보·기술동맹으로 발전해 더욱 견고해지고, 냉랭하던 일본과의 관계도 미래지향적 상생을 모색하고 있어 다행이다.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 문제 접근도 좋아 보인다. 대선 유세 때부터 강조한 자유시장경제와 민간 주도 경제에 대한 의지가 취임 후에도 변함없이 강조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뒤에도 들뜨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경제위기 태풍에 들어와 있다”며 “지금 집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걸 못 느끼나”며 엄중한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금리 급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위기가 진행되면서다. '유능한 인사'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사진은 인플레이션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연합뉴스]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강력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주가 폭락, 환율 폭등, 금리 급등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위기가 진행되면서다. '유능한 인사'로 구성된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사진은 인플레이션을 형상화한 일러스트 [연합뉴스]

이쯤 되면 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가시밭길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그치지 않는 데다, 경제 위기 태풍이 한국을 덮치고 있다. 미·중 갈등에 코로나·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부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에너지·곡물값이 치솟아 민생이 백척간두에 내몰리고 있다. 인플레이션 불길이 타오르면서 주가는 폭락하고 시중 금리는 미친 듯 급등하고 있다. ‘영끌’로 집을 사들인 가계는 이자 폭탄을 맞고 있다. 미 달러화만 유일한 안전자산이 되면서 투기판 암호화폐 시장은 쑥대밭이 됐다. 이렇게 빚더미에 오른 가계는 결국 국가 경제의 무거운 짐이 된다.

이보다 절대 덜하지 않은 우려가 윤 정부의 인사 편중 문제다. 서·검·남(서울대·검찰·남성)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인사다.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 운동권 성향 정부 시절에도 특정 분야 출신이 이렇게 주요 요직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적은 없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미국에서 하버드대·검찰, 또는 일본에서 도쿄대·검찰이 요직을 휩쓸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인적 구성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1961년 미국은 쿠바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피그만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미국에 망명한 쿠바인을 침투시켰는데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11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핵심 참모 상당수가 하버드대를 비롯한 엘리트 출신이었고 성장 배경도 비슷했다. 놀랍게도 침공 계획을 짤 때 아무도 계획의 무모함을 말하지 않았다. 예일대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집단사고의 희생자들』을 집필했다.

윤 대통령은 “유능한 사람을 쓰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이 주관적일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검찰에서 만난 검사들은 유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검사들은 공부량이 많은 고시에 합격했으니 인지능력이 평균적으로 높고, 인내심과 성실성도 갖췄다고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의 경험 범위에서는 서·검·남만큼 유능한 집단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태학적 오류를 간과해선 안 된다. 1950년 로빈슨이 찾아낸 생태학적 오류는, 예컨대 특정 웅덩이만 보고 생물 특성을 일반화하면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법칙이다. A 웅덩이에 있는 큰 개구리가 B 웅덩이에선 작은 개구리일 수 있다. 인재 찾기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다양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부적격으로 드러나는 것도 인재풀이 빈약하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집단사고 속에선 배가 산으로 가도 동조화 압력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의 온갖 실책이 집단사고 탓이란 걸 망각해선 안 된다. 유능해서 쓴다고 했는데, 이 엇비슷한 사람들이 지금 몰아치는 안보·경제 위기 태풍을 관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악마의 대변자를 둔다는 각오로 인사 편중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