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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여야가 함께 집시법 개정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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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주변에선 귀청이 터질듯한 민중가요가 수시로 울려 퍼진다.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등에 항의하는 이익·시민단체들이 고성능 스피커 차량을 동원해 시위를 벌여서다. 해당 정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청사 내 공무원은 물론, 인근 아파트 주민은 소음과 혐오감을 주는 행위에 고통받는다. 청사 주변에는 어린이집·유치원도 몇 곳 있다. 한 공무원은 “아이들은 동요보다 민중가요를 먼저 배운다”고 했다.

자조 섞인 이 우스개가 떠오른 건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가 핫 이슈가 되면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집단 린치만이 문제가 아니다. 듣기 민망한 욕설이 난무하고, 확성기 소음으로 인근 주민에게 심각한 불편을 주는 이런 집회는 용납하기 어렵다.

그래도 순기능이 하나 있긴 하다. 일부 좌파 정치인에게 악성 시위의 폐해를 각인시켜줬다는 점에서다.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전과를 훈장처럼 여기는 이들은 주로 시위를 하는 쪽에 있다 보니, 당하는 기분을 제대로 몰랐을 것이다. 이참에 대기업과 총수들은 사옥·자택 주변에서 벌어지는 저주의 시위판에 한참 전부터 고통받았다는 점도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자기 진영의 과격 시위엔 꿈쩍하지 않던 민주당은 최근 양산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정청래 의원 등은 ‘100m 이내 시위 금지’ 대상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의원을 포함한 일부 민주당 의원은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쥐XX 나와라” 등 막말 시위를 할 때 이에 동참하고 독려한 인물들 아닌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문 전 대통령 한 사람만의 인권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면 당내 극렬 지지자 팬덤의 폐해, 노조의 주택가 시위 등에 대해서도 똑같은 목소리를 내 달라”(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의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친야 성향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 소리’는 14일 윤석열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대형 앰프를 동원한 ‘맞불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집회·시위가 정치적인 공격과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여야가 뜻을 모아 시위 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바꾸기 위한 법규 개정에 나서는 게 필요해보인다. 무엇보다 시위 소음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현행법은 주거지 근처의 소음 한도를 낮 평균 65dB(데시벨)로 정했는데, 일정 시간은 크게 틀었다가 나머지 시간은 소리를 줄이는 식의 꼼수로 단속을 피하고 있다. 위반해도 벌금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특히 1인 시위는 이런 규제도 받지 않는다.

오랜만에 국민으로부터 ‘일하는 국회’라는 칭찬을 들을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