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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윤영선과 유럽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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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에 정착한 지 16년째인 윤영선 8단. 독일인 남편 라스무스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윤영선]

유럽에 정착한 지 16년째인 윤영선 8단. 독일인 남편 라스무스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윤영선]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자동차로 달리면 사방이 탁 트인 들판이다. 6월의 태양 아래 밀과 옥수수가 자란다. 라인강을 건너면 프랑스 알자스 지방. 잘 가꾸어진 고풍의 집들과 꽃장식, 끝없는 포도밭은 이곳의 특징이다. 함부르크의 윤영선 8단에게 전화를 건다. 유럽여행을 왔으니 터줏대감에게 신고부터 한다. 그녀는 유럽에 있는 단 한명의 한국인 프로기사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고 독일 남자와 결혼하여 16년째 살고 있다. ‘바둑’ 속에서 조용히 살더니 최근 대변신을 도모하여 유튜브에 바둑카페를 내고 아마존 셀러에다 바둑 동영상 플랫폼 사업도 시작했다. 난리도 아니다.

코로나 시절 유럽바둑 얘기부터 듣는다. 60여년 전통의 유럽콩그레스와 함부르크의 기도컵(KIDO CUP)은 중단됐다. 기도컵은 한국의 바둑애호가 박장희씨가 윤영선을 후원하기 위해 만든 대회. 매년 5월 축제처럼 열리던 대회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삼삼하다. 그래도 유럽인들은 코로나컵이란 코믹한 제목의 대회를 열기도 했다. 최근 파리에서는 오프라인 대회가 처음 재개됐다.

2022유럽콩그레스는 루마니아에서 열릴 예정. 하나 인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중단될 것 같다. 씁쓸하다. 유럽 바둑인구는 줄잡아 15만. 독일, 프랑스, 러시아가 강국에 속한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아무런 앙금 없이 서로 만나 대국할 수 있을까.

윤영선 얘기로 돌아간다. 코로나로 모두 숨죽일 때 오히려 변신을 시작한 윤영선을 두고 그의 절친 하호정 4단은 “본래 불세출의 승부사”라고 했다. 윤영선은 20대 시절 여자국수전을 3번이나 제패하는 등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나이 서른이 가까워질 무렵 박지은, 조혜연, 루이나이웨이가 등장했고 결승에서 이들에게 잇달아 졌다. 윤영선은 독일 남자친구와 함께 홀연히 서울을 떠났다. “토나먼트에서 물러나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개인지도, 단체지도, 대회참관 등으로 무난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나이 40을 넘은 어느 날 벼락처럼 느낌이 왔다.

“어릴 때 정해진 내 인생, 너무 갇혀 살았다.”

유튜브에 영어 채널 윤바둑카페(yoonsbadukcafe)를 내고 촬영과 편집을 직접 했다. 너무 부족한 게 많았다. 한국에서 책을 100권 구입해 새벽 5시부터 읽었다. 그리고 한국의 유명 유튜버 조연우 2단을 설득해 지난해 어섬바둑(awesomebaduk)이란 동영상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남편 라스무스가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아마존은 또 뭔가요.
“혹 FBA라고 아세요. 한국 상품을 수입해 독일 아마존에서 파는 건데요. 간신히 입점에 성공했어요.”
(걱정이 돼서 물어본다) 아이들은 다 컸나요.
“딸은 초등 3학년, 아들은 4학년인데요. 한창이죠. 하지만 독일은 애 키우기가 쉬운 편이죠. 사교육 없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돈이 안 들어요. 아이를 낳으면 26세까지 매달 200유로씩 줍니다. 부모수당도 있고 남편도 도와주고.”

문득 세계 최저라는 한국 출산율이 떠오른다. 아닌 게 아니라 독일거리엔 아이들이 많다. 부럽다. 45세 아줌마 윤영선의 젊음도 부럽고 위력적이다. 바둑책 출간, 커뮤니티 사업 등 윤영선 스토리는 끝이 없지만 여기서 접자.

이상한 얘기지만 해외 바둑 보급은 태권도보다 어렵다. 언어 때문이다. 바둑을 설명하려면 미묘한 뉘앙스까지 잘 전달해야 한다. 수많은 프로들이 해외에 도전했지만 남은 사람은 호주의 안영길 6단과 독일의 윤영선 8단 두 사람.

성공을 기원한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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