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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거부하다 반토막 난 J팝…K팝에 오리콘 차트 37% 내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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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J팝 산업이 역성장하는 동안 K팝의 영향력은 급증했다. 10년 전만해도 보아 등 일부 K팝 가수가 오리콘 차트에 입성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BTS·세븐틴·트와이스·니쥬·JO1·INI 등 많은 K팝 아이돌이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사진은 세븐틴. [사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J팝 산업이 역성장하는 동안 K팝의 영향력은 급증했다. 10년 전만해도 보아 등 일부 K팝 가수가 오리콘 차트에 입성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BTS·세븐틴·트와이스·니쥬·JO1·INI 등 많은 K팝 아이돌이 오리콘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사진은 세븐틴. [사진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K팝이 세계를 누비는 사이 일본 J팝의 시장 규모는 15년 전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음원 스트리밍으로 전환에 보수적으로 대응한 사이, 음반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 기간 K팝은 오리콘 차트 앨범 판매량의 37%를 차지할 만큼 영향력을 키웠다. 이 때문에 한국 기획사의 문을 두드리는 일본 아이돌, 아이돌 지망생이 늘고 있다.

14일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음악 시장 규모는 2832억엔(2조7055억원)으로 2006년(4600억엔) 대비 40%가량 줄었다. 15년 동안 꾸준히 연평균 성장률 -3%를 기록한 셈이다. 음악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실물 음반 매출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J팝 쇠퇴의 가장 큰 이유는 산업의 폐쇄성이다. 2000년대 초반 스트리밍 등 디지털 음원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변화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음반 기획사들은 앨범을 디지털 음원으로 공개할 경우 실물 음반 판매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스트리밍 참여에 소극적이었다.

지식재산권(IP) 보호를 중요시한 당시 일본 음악업계는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 대응에도 늦었다. 실제로 일본 톱가수 대부분이 소셜미디어(SNS) 활동을 꺼려왔다. 일본의 ‘국민 아이돌’ 아라시의 경우 데뷔 20년 만인 2019년 8월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일본 기획사와 아티스트가 내수에만 집중하고 해외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던 점도 J팝 산업의 하락세를 부추겼다.

그사이 K팝은 일본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오리콘 차트 상위 10위 내 K팝 비중은 2010년 9%에서 2021년 37%로 증가했다. 2005년 보아가 9위, 2010년 동방신기가 7위를 기록할 때만 해도, 일부 K팝 가수의 이례적인 성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K팝이 오리콘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은 방탄소년단(BTS)의 ‘BTS, 더 베스트’다. 1년 동안 99만장이 팔렸다. 해외 아티스트 앨범이 오리콘 연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건 1984년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이후로 37년 만이다. 세븐틴도 지난해 연간 차트 상위 10위권에 앨범 두개를 넣었을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

K팝의 약진 속에 한국 기획사를 선택하는 일본 아이돌이 늘고 있다.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 멤버였던 미야와키 사쿠라는 일본 활동을 접었다. 대신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아이즈원으로 활동했고, 지난달 걸그룹 르세라핌으로 세 번째 데뷔했다.

한국 기획사의 작곡·작사 역량, 무대 연출 노하우, 아이돌 육성 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글로벌 무대로 단숨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K팝 가수가 일본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것을 중요한 홍보 수단으로 여겼는데,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반대됐다.

기획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일본의 독특한 음악산업 관행도 J팝 쇠퇴의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아이돌은 일부 대형 기획사가 독과점하는 구조다. 예컨대 남자 아이돌은 쟈니스 사무소, 여자 아이돌은 아키모토 야스시 사단이 꽉 잡고 있다. 따라서 다른 루트를 통해 데뷔하기가 쉽지 않다. 수익 배분 측면에서도 가수가 기획사로부터 월급과 수당을 받는 구조다. 한국과 같은 거액의 정산 지급은 거의 없다.

반면 K팝 시스템을 거쳐 일본에서 데뷔한 아이돌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JYP가 2020년 데뷔시킨 현지 9인조 걸그룹 니쥬는 오리콘 차트에서 여성 그룹 최초로 두 차례 스트리밍 1억회를 돌파했다. CJ ENM이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재팬’을 통해 선보인 제이오원(JO1)과 아이앤아이(INI)도 각각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들의 성공에 힘입어 한국 기획사는 일본 현지화 아이돌 팀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이브와 JYP는 올해 하반기 각각 보이그룹 1개 팀씩, SM은 엔시티(NCT)의 일본 중심 유닛인 NCT도쿄를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 내 K팝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기훈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K팝의 글로벌화로 음반 수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70%에서 지난해 35%로 떨어졌다. 그래도 일본은 여전히 1000억원 규모를 유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라며 “과거 일본에서 돔 투어(5만석 이상)가 가능한 그룹은 동방신기·빅뱅·BTS·트와이스 정도였는데, 이제는 NCT·스트레이키즈·니쥬·트레저 등도 가능성이 커졌고, 신인 그룹의 성장세도 빠르다. 앞으로 기대가 더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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