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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경애가 고발한다

"결국 검찰공화국 될 것"…이런 걱정 키웠다, 尹의 이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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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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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들. 배경은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검사 출신 고위 공직자들. 배경은 서울 용산의 대통령실 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인사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역·성별 불균형과 검찰과 경제 부처 출신들의 요직 차지 탓에 검찰 공화국이라는 비판과 함께 검피아·모피아 연합 정부라는 비아냥까지 나옵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뿐 아니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편중 인사를 우려합니다. 노정태 작가는 어제(14일) 칼럼에서 단순히 주요 직책을 맡은 검사의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비판하기보다 개개인의 능력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은 잇따른 검사 중용의 문제를 지적하는 권경애 변호사의 글을 전합니다. 내일은 기획재정부 출신의 요직 독점 현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우석훈 교수의 글이 게재됩니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 형 선고를 받은 직후 취재진 앞에서 맹자(孟子)의 말을 인용했다. 정작 수오지심이 필요한 당사자의 소회로서 극히 부적절한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 전 이사장은 ‘사실 증명 영역’을 ‘선악 투쟁 영역’으로 전환하는 프레임 짜기에 능하다.

유 전 이사장은 조국 가족을 그리스 고전의 완벽하리만치 훌륭하여 질시 받고 몰락해 가는 영웅의 비극적 서사에 빗댔다. “악당들이 주인공을 제압 못 할 때 가족을 인질로 잡”고 “이쯤에서 네가 안 물러나면 가족을 건드릴 수 있다는 암시”로 “영웅의 몰락을 꾀하는 저질 스릴러”라는 선동으로 진영의 정의감과 열정을 자극했다. 유 전 이사장과 그가 속한 진영의 사람들에게 검찰은 공권력을 사유해서 선출된 정치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악의 집단이다. 따라서 “친검” 낙인은 정의로운 공격이 된다.

2020년 1월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뉴스1]

2020년 1월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뉴스1]

대선·지선에 검찰 견제 심리 작동

대법원 판결로 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기소의 정당성이 확인되고 조국 지지자들 주장의 부당함이 입증되었으나, 대선은 0.73%포인트 간발 차 승리였다. 8~10%포인트 압승의 예상치에 한참 못 미쳤다. 부당히 탄압받은 검찰(총장)이 만난고초 끝에 악당의 누명을 벗고, 가짜뉴스를 퍼뜨린 자들은 심판받는 사필귀정의 결말에 흡족히 감격하기에는 모자란 수치였다.

6·1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낮은 투표율, ‘윤심’을 표방했던 김은혜 후보의 낙선과 김동연 후보의 아슬아슬한 승리, 이재명 의원 당선. 국민들은 부동산 정책의 파탄, 조국 사태 이후 내내 드러났던 몰상식과 몰염치, 이재명 대선 후보의 온갖 비리와 인격적 결함에 진저리를 치며 민주당을 외면하면서도 윤석열 정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읽히는 ‘국민의 뜻’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대권을 거머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 대한 불안감과 ‘검찰 공화국’ 경계심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제1기 내각과 대통령실, 총리실 등 정부 요직에 ‘윤석열 사단’의 구성원들이 대거 포진했다. ‘아가패’(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패밀리), ‘서오남(서울, 50대, 남성)’이라는 비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청문회의 촌극에 희석돼버렸다. ‘처럼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유능한 검사’ 출신 장관 후보를 극명하게 돋보이게 했다. 고루한 태도와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일관하던 진부한 관료 예비군들과 달리 한동훈 후보자는 절제된 언행과 세련된 외양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았다. 윤 대통령의 아가패 인사 기용도 거침없었다. 민주당의 참패이지만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보기도 애매한 지방선거 직후인 6월 7일에 그는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이복현 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임명했다.

검사의 판단 기준은 적법성 

정치적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판사와 검사, 권력 감시 기능을 담당하는 언론인이 사표를 던지자마자 정부 요직이나 선거 캠프로 직행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논쟁은 이제 무용하고 무력하다. 국민들은 법치와 민주를 수호하겠다는 명분을 걸고 출마한 검찰총장 출신 후보를 권좌에 올렸다. 국민 스스로 법치와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관행과 상식의 기준 하나를 허물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검찰 편중 인사’ 비판에 대한 대응은 우려스럽다. "(필요하면 계속)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겠다" "그게 법치국가" 등의 말은 국민의 ‘검찰 공화국’에 대한 경계심을 건드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 중용에 대해 "필요하면 유능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쓰겠다"고 말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출신 중용에 대해 "필요하면 유능한 인물을 적재적소에 쓰겠다"고 말했다. [뉴스1]

법치국가란 무엇인가. 법을 잘 아는 검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이 법치주의인가. 검사의 유능함은 규범 위반을 다루는 데에 특화된 역량이다. 검사는 범죄자와 그 경계에 선 사람을 마주하며 산다. 검사의 직무 세계는 범죄자와 비범죄자로 양분되고, 그 구분의 기준은 주어진 실정법이다. 검사의 직무 범위에는 실정법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포함돼 있지 않다. 검사의 직무는 법이 허용한 공권력, 즉 그 본질은 폭력이나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헌법이 허용한 적법한 폭력를 행사하여 인신을 구속하고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검찰을 인권수호 기관이라고 하는 이유는 공권력의 남용은 국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법이 정한대로만 행사하여 인권을 보호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대다수 검사는 국민에 봉사는 공복의식보다 위압적인 엘리트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질서와 법치의 수호자라는 우월감도 강하다. 직업적 권능으로 범죄자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듯 세상 전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검사도 있다.

법치는 공동체 통합을 포괄하는 것 

법치국가란 무엇인가. 한스 켈젠의 법실증주의에서 국가는 법질서를 의미하므로 법치와 국가는 동의어이다. 국가가 곧 ‘법질서’이다. 법질서 실현이 국가의 기능이자 목적인 국가관에서는 법이 국민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지를 따져 묻지 않는다. 실정법 안에서의 통치이기만 하다면 ‘자생적 정당성’을 갖는다. 반면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는 실정법이 아니라 자연법을 강조한다. 민주적 제도를 통해 선출된 통치권력은 천부적이고 초법적인 자유의 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카를 프리드리히 루돌프 스멘트의 통합과정론적 국가관에서의 법치는 사회공동체를 정치적 일원체로 동화시키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그는 한 나라의 법체계를 몰가치적인 질서(법실증주의)나 현실을 초월하는 선험적 가치(결단주의)로 보지 않는다.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와 카를 프리드리히 루돌프 스멘트. [온라인 자료 캡처]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와 카를 프리드리히 루돌프 스멘트. [온라인 자료 캡처]

이러한 통합과정론적 국가관에서는 통치작용과 법체계가 공동체의 동화 및 통합 기능을 수행할 때 정당성을 갖는다. 이를테면 동성애를 처벌하던 유럽이 동성혼을 법적으로 보장해 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사회공동체를 통합하는 국가작용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통행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 저상버스를 법제화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정당한 기능 실현이다. 비장애인의 통행권을 방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장애인의 시위를 일일이 법대로 처벌하는 곳은 법치국가가 아니다.

"법에 따라"를 넘는 정치 고민해야  

검찰의 기능은 위 세 가지의 법치국가론에서 법실증주의적 국가관에 최적화돼 있다. 검사는 법질서 수호에 우수함을 보일 때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사가 공동체 통합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은 직무 범위 밖의 일로 볼 수 있다. ‘자유’를 30회 이상 외친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통합’이라는 단어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사용자 부당노동행위든 노동자의 불법행위든 간에 선거운동할 때부터 그렇게(법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천명해 왔다"고 말했다. 가장 핵심적인 이슈인 안전운임제 폐지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예상되는 물류대란의 대처 방안에 대한 말도 없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검사들의 전형적인 법실증주의적 사고가 드러난다. 그런 가치관 안에는 사회 이해관계 집단의 갈등과 대립의 원인을 찾아내고 대립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해 통합하는 국가 본연의 통치작용에 대한 고민이 자리 잡기가 어렵다. 대통령의 검찰 편중 인사와 간간이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검찰 공화국’이 되는 것 아니냐는 시민의 우려를 키운다. 그가 말하는 ‘법치국가 추구’가 훗날 공동체의 조화로운 통합에 실패한 지도자의 변명으로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