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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7개월만에 코스피 2500선 붕괴…'S공포'에 시장 백기 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54포인트(0.46%) 하락한 2492.97로, 코스닥 지수는 5.19포인트(0.63%) 떨어진 823.58로 장을 마쳤다. 뉴스1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54포인트(0.46%) 하락한 2492.97로, 코스닥 지수는 5.19포인트(0.63%) 떨어진 823.58로 장을 마쳤다. 뉴스1

"(증시의) 급격한 하락은 시장이 '항복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투자회사 생츄어리웰스의 제프 킬버그 최고 투자전략가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진단이다. 이날 시장은 요동쳤다. 나스닥이 4% 넘게 급락하는 등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하락했다. 미 국채 금리는 급등(채권값 하락)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도 고꾸라졌다. 'S(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의 공포'에 시장이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시장의 무기력은 바다 건너로 이어졌다. 14일 코스피는 1년 7개월 만에 2500선을 내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보다 0.46% 내린 2492.97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가 2500선 아래로 주저앉은 건 지난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코스닥은 전날보다 0.63% 하락한 823.58에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시작과 동시에 개인과 외국인이 팔자에 나서며 1% 넘게 급락하며 출발했다. 이후 개인이 다시 ‘사자’로 돌아서며 낙폭을 줄였다. 이날 개인과 기관은 각각 391억원, 1937억원을 사들였지만, 외국인만 홀로 2773억원 어치를 팔아 치웠다.

한국과 미국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건 갈수록 커지는 '거인의 그림자'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14~15일(현지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하며 시장은 요동쳤다. 자이언트 스텝이 기정사실화로 받아들여지면서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WSJ의 보도는 '블랙아웃'(FOMC 회의 전 Fed 인사가 통화정책 관련 언급을 삼가는 기간) 중 FOMC의 의도를 대신 전달해주는 암묵적 신호”라고 분석했다.

높아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에 Fed가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JP모건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포인트 인상도 가능성이 작지 않은 위험"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라 커지는 Fed의 보폭이 경기 침체를 부르는 주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S의 공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경제학자 70%가 경기 침체를 예상한다고 보도했다. 지난 6∼9일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과 경제학자 49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38%는 내년 상반기, 30%는 내년 하반기, 2%는 올해 안에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최고경영자(CEO)는 13일 CNBC에 “경기침체 위험이 30%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0%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최고경영자(CEO)는 13일 CNBC에 “경기침체 위험이 30%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0%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최고경영자(CEO)는 13일(현지시간) CNBC에 “경기침체 위험이 30%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50%에 가까워진 것 같다”며 “깊거나 긴 경기 침체에 빠질 것 같지는 않고, “Fed가 결국 인플레이션을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경제에 드리운 'S의 공포'는 한국 경제도 뒤흔들고 있다. 안전자산인 달러의 몸값이 2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며 원화 가치는 자유낙하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105.13을 기록했다. 2002년 12월 11일(105.35) 이후 가장 높다.

수퍼 달러의 기세에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값은 전날(1284원)보다 2.4원 하락한(환율 상승) 달러당 1286.4원에 거래를 마쳤다. 연초(1191.8원)와 비교하면 6개월여 만에 94.6원 하락했다. 장 초반 원화값은 달러당 1292원 선을 넘으며 장중 기준으로는 2020년 3월 19일(달러당 1296원) 이후 2년 3개월 만에 가장 약세를 기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 경제가 침체하면 한국도 타격을 받는다”며 “원자재 수입부터, 수출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모두 '셀코리아'가 감지된다. 14일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 2~13일 7거래일간 국내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10조원을 회수했다. 외국인은 이 기간에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3조1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웠다.

이 기간에 외국인은 만기 도래 채권 9조4058억원 어치를 대거 상환하며 국내 채권시장에서 6조4296억원 규모를 순회수했다. 외국인 국내 채권시장에서 매수 규모가 매도와 만기상환보다 크면 순투자, 반대 경우는 순회수 상태로 본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원화가치는 단기간 달러당 1300원대를 맴돌며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금융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정부는 우선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과 정책 공조를 강화하고 이번 주로 예정된 국고채 바이백 규모를 기존에 예정된 2조원에서 3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는 ‘긴급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FOMC 전후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때 시장 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기준금리추이 인상시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 Fed ·한국은행]

한미 기준금리추이 인상시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 Fed ·한국은행]

미국이 긴축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으면서 한국은행의 발걸음도 바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 자본의 이탈이 본격화할 수 있어서다. 현재 한국(연 1.75%)과 미국(연 0.75~1.0%)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0.75%포인트다. 미국이 6월과 7월 연달아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밟거나 자이언트 스텝과 빅스텝을 번갈아 밟으면 금리는 역전된다.

때문에 한은이 사상 초유의 '빅스텝'에 나설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남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결정을 하는 회의는 7월과 8월, 10월과 11월까지 총 4번이다. 시장은 7월과 8월 금통위에서 연달아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지만 상황에 따라 보폭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14일 한은이 공개한 5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상당수 금통위원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파(통화 긴축)'적 시각을 드러냈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 빚 부담이다. 이미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각국의 고강도 긴축에 세계 경기 침체는 동반된다”며 “(글로벌 경기에 민감한) 한국은 주식과 채권값은 물론 집값 거품까지 빠지는 등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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