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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학교가 조교 없앴다" 학과장 사퇴…일촉즉발 경성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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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행정 마비 우려한 교수의 편지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 등에 반대하며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학생회 제공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 등에 반대하며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학생회 제공

“학과 사무실이 폐쇄되고 실습실 사용이 제한될 것입니다. 학과의 행정 사무가 중단될 것입니다.”

이달 초 신병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과장이 학부생 약 200명에게 띄운 온라인 공개 편지 내용 가운데 일부다. 편지에서 신 교수는 경성대 대학본부가 올해 초부터 학과 조교 채용을 중단한 사실을 전하며, 학생들이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설명했다.

그는 “구성원 의견 수렴 없이 이뤄진 대학본부의 일방적 의사결정으로 인해, 여러분들이 심각한 불편과 불이익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대학생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고 지성인입니다. 슬기롭게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가리라고 믿는다”라고 썼다.

교수·학생 “불합리한 결정, 권리 찾기 모색”
아울러 그는 “저도 학과장 직무를 내려놓을 것”이라며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되거나 상황에 변동이 오면 알리겠다. 모두들, 굿럭!”이라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신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조교 미채용은 교수, 학생 등 교내 주체와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사안이다. 제자들도 알아야 한다고 봐 편지를 썼다”며 “학교 측 결정은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발의 의미로 학과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 등에 반대하며 학내 게시판에 붙인 게시물. 경성대 연극영화과 학생회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 등에 반대하며 학내 게시판에 붙인 게시물. 경성대 연극영화과 학생회

100억 원대 임금소송 패소 갈등

14일 경성대와 대학 교수협의회, 교수노조, 학생회의 말을 종합하면 재정난을 이유로 한 대학본부의 거듭된 긴축 행정을 놓고 대학과 구성원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경성대는 2012년부터 교수와 교직원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취업규칙 등을 고쳐 임금을 동결했다.

이에 교수협의회는 총장 퇴진과 함께 학내 정상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 시위에 참여한 일부 교수의 재임용이 부결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올해 1학기에는 학과 실험실습비가 최대 65%까지 감축되면서 지난달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재학생이 이에 반발하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중 임금 문제는 소송전으로 번졌다. 2019년 1월 경성대 교수 120명은 “대학 측의 일방적인 임금 동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8월 2심 재판부가 “(임금을 동결하는 내용의) 보수 규정 및 안내문, 인사관리 규정 개정 및 변경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 변경임에도 근로자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도 없다”며 교수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경성대 측 상고를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경성대 측은 올해 1~2월 각 학과에 ‘학과 조교 미채용’ 결정을 통보했다. 70여개 학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학과 조교의 계약이 만료되면 더 이상 조교를 추가 채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오는 8월이면 전체 학과의 절반, 11월 모든 학과에서 조교가 사라질 전망이다.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에 반대하는 연극에 나서기 전 SNS에 올린 게시물. 경성대 연극영화화 학생회

경성대 연극영화과 연극전공 학생들이 학교 측 조교 미채용에 반대하는 연극에 나서기 전 SNS에 올린 게시물. 경성대 연극영화화 학생회

경성대 교수협의회는 이 조치를 “대학 측의 만행”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수 협의회는 14일 성명을 통해 “학부·과 조교를 없애고 실험실습비를 65% 삭감하는 것은 반교육적 만행”이라며 “(조교 미채용으로) 이미 일선 학부·과에서 교육이 불가능한 실태를 확인했다. 송수건 총장은 학생에게 사과하고, 조교와 실험실습비를 즉각 원상복구하라”고 촉구했다.

전날 대책 회의에 참석한 예술종합대학의 한 교수는 “이미 일부 학과에서 조교가 사라져 학과별로 기자재 관리 및 운용, 실습실 사용 등 행정 업무 마비에 따른 피해를 학생들이 보고 있다”며 “2학기부터 수업 자체가 불가능한 과목도 속출할 것으로 보여 문제를 제기하는 데 교수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각 학과 학생회도 조교 채용을 위한 재학생 서명과 요구안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성대 관계자는 “조교 미채용 문제를 교수나 재학생 등 구성원과 논의한 적은 없지만, 재정난 해소와 학과 운용 합리화를 위해 검토해왔던 내용”이라며 “대신 단과대학별 행정 직원 수를 기존 1명에서 8명으로 늘리는 등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임금 소송 패소에 따라 교수들에게 100억 원대 임금 지급을 마쳤다”며 “이런 부분들이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경성대 사태가 학생 수 감소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다른 지역 사립대에서도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2학년도 추가모집에 나선 전국 대학 194곳 가운데 서울·경기를 제외한 지방권 대학의 비율은 93.4%에 달한다. 한 대학 관계자는 “통상 사립대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등록금 수익에서 마련한다”며 “미달 사태가 이어져 재정 상황이 나빠지면 학과 통폐합, 교육의 질 하락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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