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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의료법인은 ‘상인’일까?…대법원 “의료는 영업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의사나 의료법인은 법적으로 ‘상인’이 아니라고 본 최초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의사가 자신이 근무한 의료기관에 임금 지급을 요구할 권리는 상법이 아닌 민법상 채권이라는 것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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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의사 A씨 등이 자신들이 일했던 병원의 의료재단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임금 등을 상사채권으로 판단한 원심을 고쳐 최종 판결(자판)을 내렸다고 14일 밝혔다.

의사인 A씨와 B씨는 같은 의료재단에서 각각 18년, 9년동안 근무하다 2018년 퇴사했다. 이들은 계약서에 적힌 근무시간보다 각각 96시간, 280시간이나 더 많이 일했지만, 시간외 근무수당을 받지 못했고, 퇴직금 역시 시간외 근무수당이 빠진 임금을 토대로 산정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이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임금 미지급분은 각각 1억6430만원, 1억1346만원에 달했다.

1심에선 의료재단 측이 변론에 나서지 않아 A씨 등의 청구가 모두 인용됐다. 그러나 2심에선 시간외 수당에 대한 청구는 기각되고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및 퇴직금 차액 청구만 일부 받아들여졌다. 지연손해금 이율은 퇴직 후 15일부터 원심판결 선고일까지는 상법이 정한 연 6%로, 원심판결 선고 다음날부터 변제완료일까지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 20%로 정했다. 의사의 의료행위와 그 대가인 임금을 상법이 적용되는 ‘영업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의료법의 여러 규정과 제반 사정을 참작하면 의사나 의료기관을 상법 제4조 또는 제5조 제1항이 규정하는 상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취지로 달리 봤다. 의사들의 손을 들어준 2심 선고에 수긍하면서도 상법상 기준을 따른 지연 이율 '연 6%' 부분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상인’과 거래할 경우 그 사이에서 생긴 상사채권과 달리 의사나 의료법인은 상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가 의료기관에 대해 갖는 임금 등 채권은 일반 민사채권이라는 취지다. 이 때문에 민법상 지연 이율(5%)을 적용하라고 판단한 뒤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의사의 직무에 대해 고도의 공공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며 의료행위를 보호하는 의료법의 여러 규정에 비추어 보면, 의사의 활동은 최대한의 효율적인 영리 추구 허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상인의 영업활동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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