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토버스]도시 황조롱이가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튼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호릭~ 호릭~호리릭~"
형용할 수 없는 새 울음 소리로 아파트 창문 밖 베란다가 소란 스럽다.

최근 도심에서 황조롱이가 자주 목격되고 있다. 서식지를 도시에 빼앗긴 탓이다. 지난 11일 경기 안양시 호계동의 한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에 자리한 황조롱이 새끼들. 사진 조용철

최근 도심에서 황조롱이가 자주 목격되고 있다. 서식지를 도시에 빼앗긴 탓이다. 지난 11일 경기 안양시 호계동의 한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에 자리한 황조롱이 새끼들. 사진 조용철

경기 안양시 호계동의 아파트 17층.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뒤로 황조롱이 부부가 둥지를 틀었다. 맹금류 가운데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는 원래 절벽이나 절개지에 집을 찾아 알을 낳는다. 그러나 대도시 밀집지역이 들어서는 등 서식 환경이 바뀌면서 육아에 적당한 절벽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비행 연습을 하는 황조롱이. 사진 조용철

비행 연습을 하는 황조롱이. 사진 조용철

황조롱이는 다른 개체의 둥지를 뺏는 습성을 가졌는데 에어컨 실외기가 새로운 둥지로 적격이다. 강풍을 막아주고 다른 개체들의 눈을 피해 새끼들을 숨기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깎아 내린듯한 고층 아파트, 트여 있는 공간은 개활지와도 닮았다. 도시는 고산지대보다 먹잇감도 풍부하다. 황조롱이 입장에서 나름의 절벽을 찾은 셈이다. 황조롱이는 봄을 시작으로 이른 여름에 걸쳐 4~6개의 알을 낳는다. 포란기간은 27~29일이고, 부화한 새끼는 27~30일이 지나면 독립시킨다.

먹이활동을 하는 황조롱이 어미. 사진 조용철

먹이활동을 하는 황조롱이 어미. 사진 조용철

하나, 둘, 셋. 황조롱이 세 마리가 번갈아가며 실외기 위로 올라온다. 솜털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부화한 지 한 달쯤 된듯하다.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엄마, 아빠와 크기가 비슷하다. 하지만 날갯짓은 아직 어색하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비행을 유인하고 있다. 사진 조용철

어미가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비행을 유인하고 있다. 사진 조용철

마침내 때가 됐다. 새끼들은 쉬지 않고 울어댄다. 어미가 먹이를 입에 문 채 날개를 쫙 펼치는 모양새가 마치 "자 따라 해봐"라고 하는 듯하다. 황조롱이 첫째와 둘째가 먼저 첫 비행을 시도했다. 두 발로 난간을 꼭 쥐고는 마치 숨 고르기를 하듯 준비자세를 취했다. 이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막내만 남았다. 어미가 물어온 먹이를 줬다가 다시 뺐자 막내가 실외기 둥지를 떠나 비상했다. 이제 야생의 품에 안길 차례다.

숨을 고르며 조심 조심 도약을 준비하는 황조롱이. 사진 조용철

숨을 고르며 조심 조심 도약을 준비하는 황조롱이. 사진 조용철

새끼 황조롱이의 첫 비행. 사진 조용철

새끼 황조롱이의 첫 비행. 사진 조용철

최근 도심에서 황조롱이가 자주 목격되고 있다. 이들이 서식하던 너른 들판에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도권에서만 황조롱이를 60여 차례 구조했다고 한다. 이들을 발견했을 때 최선의 대처법은 무관심이다. 보살필 필요 없다. 부모 새가 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를 내어준다면 스스로 알아서 한다. 길어야 45일이다. 황대인 한강생물보전연구센터 센터장은 "부화는 대게 5월에서 6월 사이에 진행된다. 에어컨을 켜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계절이니 황조롱이와 잠시만 공간을 공유하자"라면서 안정된 부화를 위해 인공둥지도 제작해 지원한다고 전했다.

막내 황조롱이가 이소하고 있다. 사진 조용철

막내 황조롱이가 이소하고 있다. 사진 조용철

황조롱이 새끼들은 성공적으로 자연에 품에 안겼을까?
도시에서 삶을 시작하는 황조롱이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작은 관심이면 충분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