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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이어 육사도 이사가나" 태릉 개발 움직임에 軍 부글

중앙일보

입력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이어 태릉 육군사관학교의 지방 이전안이 공론화되면서 군 내에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6ㆍ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육사의 충남 논산 이전안을 띄운 상황에서다.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육사 제78기 졸업 및 임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육군]

지난 3월 4일 오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육사 제78기 졸업 및 임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 육군]

정부가 육사 이전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아파트를 짓기 위한 주변 군 부지의 택지 개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1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컨벤션센터에서 현재 개발제한구역인 육사 인근 태릉 군 골프장 일대(87만4598㎡)를 서울시의 공공주택지구로 바꾸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청회를 연다고 밝혔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큰 틀에서 환경적인 영향 등 사업 적정성을 검토하는 단계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전 정부에서 정부 부처 내에서만 검토하던 사안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사업 궤도 위에 올려놓겠다는 의미”라는 풀이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공공택지사업의 경우 전례를 볼 때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부동의가 거의 없다”며 “초안 공청회를 연다는 건 한마디로 개발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로드맵이 잡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태릉(중종의 셋째 왕비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과 강릉(명종과 임순왕후 심씨의 능) 등 문화재가 걸림돌로 지적된다. 실제 경기 김포 장릉(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 앞에 지어진 검단신도시 아파트 일부가 왕릉 경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 사이 갈등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당초 개발을 추진했던 지난 정부에선 이같은 논란을 의식해 아파트 규모를 1만 가구에서 6800가구로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파트 택지로 확정될 경우 수용되는 군 골프장의 대체 부지 확보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군 소식통은 “서울에서 유일한 군 골프장인 만큼 군에선 정부가 수도권 민간 골프장을 매입해 인계하는 방안 등을 요구했으나 진전된 내용이 없다”고 귀띔했다.

“논산 이전, 대통령께 건의"

군의 관심은 태릉 군 골프장보다 육사 이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현직 도지사에 밀려 고전하다가 역전승을 거둔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육사의 논산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언급했다.

김 지사는 당선 직후 지역언론과 인터뷰에서 “조만간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만나 충남 현안을 설명하고 관련 부처를 상대로 움직여 달라고 요청하겠다”며 “여당 도지사가 된 만큼 중앙정부와 소통하면서 사업 추진을 이끌어 내겠다”고 밝혔다.

충남도 입장에선 2년 뒤 국회의원 선거(2024년 4월 10일)가 호재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사실상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충청 민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관측에서다. 한 여당 관계자는 “당내에서도 시간문제일 뿐 이전이 확정적이란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태릉 군 골프장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바로 인접한 육군사관학교를 지방으로 이전해 함께 개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사진은 육사와 태릉 군 골프장 일대.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태릉 군 골프장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바로 인접한 육군사관학교를 지방으로 이전해 함께 개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사진은 육사와 태릉 군 골프장 일대. [연합뉴스]

반면 군 내에선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군 고위 관계자는 “국방부 청사에 이어 상징성이 있는 육사까지 이전한다면 군의 상실감이 클 것”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육사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일종의 ‘육사 지키기’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육사 출신 중견 간부는 “택지 개발 과정에서 각종 공청회가 있을 때마다 육사 존치 의견을 적극 개진하자는 의견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육사 부지의 역사성을 존치 이유로 내세운다. 이 간부는 “육사 부지는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제1연대가 1946년 창설된 국군의 발원지인 데다, 6ㆍ25 때 생도들이 불암산을 지키기 위해 전투해 다수가 희생했던 우리 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라면서 “게다가 육사 이전이 아파트를 짓기 위한 것이라니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웨스트포인트처럼 개방해야”  

군 엘리트 양성기관의 지방 이전이란 관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그간 '육방부'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육사 출신이 군권을 장악한 부분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육사 출신 엘리트가 군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적지 않다”며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면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데 애로가 있을 것이란 걱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육사 존치의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며 “현재의 폐쇄적인 육사를 개방해 주민 밀착형 시설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온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양욱 박사는 “대도시(뉴욕시) 외곽에 위치한 미국 육사(웨스트포인트)처럼 인근 주민에게 체육시설이나 도서관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며 “육군박물관(김중업), 육군기념관(김수근), 학교본부(이광노) 등 건축 거장들이 설계한 작품이 모인 곳인 만큼 상당한 명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내 육사기념관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사진 육군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내 육사기념관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것이다. [사진 육군사관학교]

이와 관련, 군 소식통은 “실제 육사 내에서도 코로나19로 추진하지 못했지만, 이같은 개방 의견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국방부는 육사 이전 움직임에 대한 중앙일보의 질의에 “국방부는 육사 이전을 계획하고 있지 않으며, 검토한 바도 없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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