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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지수 100" 노량진도 덮친 고물가, 공부 줄여 알바 뛴다

중앙일보

입력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인근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 석경민 기자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인근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 석경민 기자

“시험 걱정만해도 벅찬데….”

13일 노량진에서 만난 임용고시생 전민근(23)씨가 최근 급격히 오른 물가에 “고민이 많아졌다”면서 한 말이다. 전씨는 “싼값에 자주 갔던 노량진 근처 식당들도 최근 다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꼭 필요한 식사 외에는 다른 소비를 하지 않는 데도 벅차다”고 ‘벅차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수험 기간 1년을 목표로 1000만원을 들고 상경했다는 그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집에 손을 안 벌리기 위해 돈을 모아 왔는데,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저가거리’도 옛말…“식비 부담스럽다”

최근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물가가 오르면서 취업준비생과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학생과 직장인의 사이에서 진로를 준비하는 이들의 시름은 누구보다 깊다. 13일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 만난 수명의 공시생들 모두 “밥을 먹을 때 물가가 올랐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최근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 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등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과 컵라면 매출이 증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편의점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이상 늘었다. 연합뉴스

최근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 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등 외식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과 컵라면 매출이 증가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편의점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0% 이상 늘었다. 연합뉴스

경찰공무원을 준비하는 장성원(24)씨는 “노량진은 물가가 싼 편이라 작년에는 5000원에서 6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그 정도 가격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바이트할 시간이 없어 집에서 용돈을 받아 쓰는데 최근 식비 감당이 안 돼 용돈을 20만원 올렸다”며 “부모님 돈으로 공부하는 것도 죄송한 처지에 용돈을 올려달라고 할 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하루에 2시간씩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수험생 손권호(28)씨는 “엥겔지수(가계지출 중 식료품비 비율)가 100이다”며 “그렇다고 공부시간을 포기하면서 아르바이트 시간을 더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힘들다”고 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식비를 줄이기 위해 음식을 직접 해 먹고 있는데, 이젠 식재료비도 많이 올라 장보기가 무섭다”고 했다.

공부시간·취미활동도 ‘포기’하는 공시생

높아진 물가 때문에 ‘N포(N가지를 포기하는)’ 공시생들도 늘고 있다. 힘겨운 수험 생활을 달래주던 유일한 취미나 군것질을 줄이거나, 공부시간 일부를 포기하고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식으로 고육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컵밥거리.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가게가 휴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1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컵밥거리. 인근 상인들은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가게가 휴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경민 기자

두 달 전 공무원시험 필기에 합격해 면접을 앞둔 20대 허모씨는 “필기가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면접만 준비하는 게 사실 제일 안전하긴 하지만, 오랜 수험 기간에 이렇게 생활비가 부담된 건 처음이라 도저히 집에서 주는 용돈에만 의지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전민근씨는 “한 달에 식비만 해도 50만원 가까이 되다 보니 다른 군것질을 아예 줄였다”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마시던 딸기라떼는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고, 유일한 취미였던 ‘혼맥(혼자 맥주 마시기)’은 거의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버스 대신 따릉이 6개월 치를 끊었다”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날씨도 더워지지만, 한 달에 교통비 7만~8만원을 줄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수본(26)씨도 “하루에 평균 식비 1만5000원을 넘지 않기 위해 두 끼만 챙겨 먹는다”며 “그래도 예산을 넘을 때가 많아 옛날에는 쳐다보지 않던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고 했다.

“올릴 수도, 안 올릴 수도 없는 상황”

노량진에서 장사하는 점주들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공시생과 폭등하는 식재료비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노량진에서 20년이 넘게 컵밥 장사를 하는 60대 이모씨는 최근 약 5년 만에 모든 메뉴의 가격을 500원씩 올렸다. 그는 “장사를 시작하고 이렇게 가격이 폭등한 건 처음”이라며 “작년까지만 해도 한근에 만원이 되지 않던 고기는 2만3000원이고, 1.8ℓ 식용유는 2만8000원에서 6만원으로 올랐다”고 했다. 이씨는 “하지만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어 가격 인상을 정말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노량진 학원 거리에서 고시식당을 운영하는 A씨도 “식재료의 가격이 ‘올랐다’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다 2배가 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000원 올린다고 해결되는 수준이 아니라 가격 인상이 쉽지 않다”며 “인근 고시 식당의 가격이 대부분 같은데, 한군데만 올릴 수 있나. 그렇다고 다 같이 올리자고 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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