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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치다 백악관 특보, 이젠 선거까지…줄리아니의 아빠 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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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롱아일랜드의 한 유세장. 한 노년의 남성이 연단에 서자 관중 200여명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연설이 끝나고선 그와 셀카를 찍고 사인을 청하려는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이 인기남의 정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루디 줄리아니(78). 그가 이번엔 공화당 뉴욕주지사 예비선거에 출마한 아들 앤드루 줄리아니(36)의 지원군을 자처하고 나섰다.

 뉴욕주지사 공화당 예비선거에 출마한 앤드루 줄리아니가 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주지사 공화당 예비선거에 출마한 앤드루 줄리아니가 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뉴욕주는 민주당 텃밭이다. 당원 수도 민주당이 공화당의 두 배다. 뉴욕주지사도 지난 20년간 공화당이 차지해본 적 없다. 앤드루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다 하더라도 당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 “앤드루 줄리아니의 정치 경험은 트럼프 백악관 4년뿐으로, 뉴욕주에서의 활동은 거의 없었다”면서 “그가 아버지의 지원을 요청한 건 놀랍지 않다”라고 했다.

골프선수에서 백악관 특보로 

앤드루는 선출직을 해본 적 없는 정치 신인이다. 7살이던 1993년 아버지의 뉴욕시장 취임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연단에 올라 아버지의 연설과 제스처를 짓궂게 따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2000년 부모님의 이혼 소송 이후 엄마와 함께 살면서 주니어 골프선수 생활을 했다. 골프 특기생으로 입학한 듀크대를 졸업한 뒤 2009년 프로로 전향했다.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이듬해 백악관 대외협력실에 채용돼 특보를 지냈다. 이른바 백악관의 ‘스포츠 연락관’으로 연 9만5000달러(약 1억1000만원)를 받으며 대통령과 일주일에 최대 4번 만나고, 골프 여행도 함께 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와 골프만 치고 1억원을 받는다”는 비판도 나왔었다.

“경험 부족? 관찰로 배웠다” 아들 지원 

루디 줄리아니가 7일(현지시간) 기자회견 중인 아들 앤드루 줄리아니의 뒤에 서있다. AP=연합뉴스

루디 줄리아니가 7일(현지시간) 기자회견 중인 아들 앤드루 줄리아니의 뒤에 서있다. AP=연합뉴스

루디 줄리아니는 아들의 경험 부족 문제에 대해 “여느 아이들처럼 관찰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고 말한다. 아버지 줄리아니는 검사 시절 마피아 조직을 대거 검거하는 등 ‘범죄와의 전쟁’의 상징이 됐고, 뉴욕시장 시절 9·11테러가 터지자 탁월한 리더십으로 사태를 수습해 국민 영웅이 됐다. 이를 자산으로 삼아 보안 컨설팅과 강연 등으로 연간 100억원 넘게 벌기도 했다. 2008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실패 후 2016년 트럼프와 손잡으면서 정치인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집권 후엔 트럼프를 위한 궂은 일에 앞장서며 비판도 받았다. 2019년 트럼프가 당시 우크라이나에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 부자(父子)의 비리 조사를 요구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주도한 게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그는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트럼프 행정부에 기대했던 국무장관이나 법무장관직은 끝내 받지 못했다. 최근엔 대선 불복 소송 청문회장에서 방귀를 뀌거나 기자회견 도중 염색약이 섞인 ‘검은 땀’을 흘리는 모습으로 국민 영웅의 몰락이라는 평도 들었다.

앤드루는 이런 아버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아버지 이력을 앞세워 범죄 타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최근 뉴욕에서 중범죄 사건이 급증하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인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를 ‘범죄 급증 캐시’라고 부르거나 뉴욕주도 올버니를 “청소해야 할 늪”이라고 말하는 등 범죄 문제를 이슈화했다. 아버지도 연설에서 “(아들도) 범죄율을 낮추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거들었다.

“줄리아니 스미스였다면 출마 못해”

앤드루 줄리아니의 딸을 보고 환하게 웃는 루디 줄리아니. 가운데는 앤드루 줄리아니의 아내이자 루디 줄리아니의 며느리. AP=연합뉴스

앤드루 줄리아니의 딸을 보고 환하게 웃는 루디 줄리아니. 가운데는 앤드루 줄리아니의 아내이자 루디 줄리아니의 며느리. AP=연합뉴스

공화당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이들을 만나려고 80마일을 운전해서 왔다는 소프트 엔지니어 키스 힐플은 NYT에 “나는 그의 아버지의 팬이었다”며 “그가 아버지를 빼닮았는지 보고 싶었다”고 했다. 다른 공화당원 페니 시홀론도 “루디 줄리아니는 뉴욕을 구했다. 앤드루도 아버지가 한 일을 정확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2006년 뉴욕주지사 공화당 후보였던 존 파소 전 하원의원은 경험 부족을 이유로 “그의 이름이 앤드루 스미스였다면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NYT는 앤드루를 두고 “정치적 스킬은 타고났다”고 평가했다. “TV나 대중 앞에서 밝게 웃으며 때때로 아버지보다도 더 여유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서다. 동시에 “‘경찰과의 전쟁’(경찰 과잉진압 반대론자)을 비판하거나 ‘성별 불일치’ 같은 문구를 경멸한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그의 수사학은 (분열을 조장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이라는 평가도 함께 내놨다.

이날 유세에서 아버지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은 아들 줄리아니는 이렇게 농담했다. “아버지가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지 않아서 감사해요. 아버지가 출마했다면 저는 큰 어려움을 겪었을 테니까요.” NYT는 “앤드루는 아버지의 스타 파워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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