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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봉길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핵, 남북한 공존 전제로 새 해법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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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30년 허비한 북핵 문제

신봉길 전 주인도 대사,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

신봉길 전 주인도 대사,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

2002년 나는 몇 차례 평양~향산 고속도로를 탔다. 평안북도 묘향산에 위치한 향산호텔에서 북한과 경수로 원전 관련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고속도로는 북한 핵 시설이 위치한 영변까지 연결되지 않고 그 직전인 향산에서 멈췄다. 나는 늘 궁금했다. 조금 더 가면 영변의 북한 핵 단지가 나올 텐데 왜 고속도로는 여기서 멈추는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영변이 핵 개발 단지로 바뀐 것은 1965년 소련이 지원한 소형 연구용 원자로가 영변에 건설되면서부터다. 그 후 북한은 자체 기술력으로 영변에 5㎿급 원자로를 건설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도미노로 붕괴하자 북한은 핵 개발을 통한 체제 유지에 나섰다. 89년 1월 한·소 수교를 통보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에게 북한은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했다. 북한은 미국·일본과의 수교 시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소련은 거부했다. 북한은 핵 개발에 나서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한국과 서방은 북한의 조기 붕괴 가능성에 들떠 있었다. 대북 고립, 압박 정책을 택했다.

내가 2002년 여섯 차례나 북한에 드나든 것은 우리 측이 함경도 신포에 건설 중이던 원자력발전소와 관련해서였다. 94년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경수로 원전 건설과 원전 완성 시까지 연간 50만t의 연료용 중유 공급을 약속했다. 그리고 미·북 국교 정상화도 이 패키지 딜 안에 들어 있었다. ‘제네바 핵 합의’다. 이 합의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은 경수로원전지원기획단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나는 이 기구의 특보였다.

당장은 경제제재 유지하며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내야
장기적으로 북한 변화 이끌며 핵 이슈 푸는 자세 필요
미·북에만 맡기지 말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통독 이끈 동방정책처럼 공존의 틀 만드는 게 출발점

부시, 비핵화 마지막 기회 허물어

신봉길의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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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의는 그런대로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 이슈가 터졌다. 북한은 경수로 원전 건설이 지연되고 부시 행정부의 강경 보수 세력이 전임 클린턴 정부의 제네바 핵 합의를 부정하고 나오자(ABC: Anything but Clinton)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을 모색했던 것 같다. 파키스탄의 핵 과학자 압둘 카디르 칸 박사 루트를 통한 것이다.

2002년 10월 미 국무부의 켈리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이 첩보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그리고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의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핵 합의에 따른 북한 중유 공급을 전격적으로 중단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관련 당사국회의(KEDO 집행이사회)에 참석하는 우리 대표단에 중유 공급 중단은 절대 안 된다는 지침을 내렸다. 북한이 벼랑 끝 전술로 나와 영변 핵 시설에 손을 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평양을 방문 중이었는데 북한은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평양 근교 고방산초대소 만찬에서 옆자리에 앉은 북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고 계속 물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켈리 대표단에 다시 만나자고 간청했던 사실도 털어놓았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미·북 간에 다시 한번 큰 타협을 만들어 낼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부시 정권은 9·11 테러를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라크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했다.

북한은 사생 결단으로 나왔다. 중유 공급 중단에 대한 대응으로 2003년 초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핵 사찰단을 추방했다. 그리고 핵 활동을 재개했다. 8년간 폐쇄됐던 영변 핵 시설을 재가동해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핵심 부품 설치를 남겨두고 있었던 경수로 원전 공사도 중단됐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어렵게 건설한 댐(제네바 핵 합의)에 물이 새자 수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댐 전체를 무너뜨린 격이었다. 2002년을 기점으로 북한 핵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북한에 경수로 원전 완공됐다면

인도 뉴델리 근무 당시인 2018년 2월 나는 주인도 독일 대사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들었다. 그는 농축우라늄 이슈 대응을 북핵 저지 과정에서의 미국의 가장 큰 전략적 실책으로 보았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에 근거해 전임 클린턴 정부가 어렵게 만든 제네바 합의를 무너뜨렸다고 비판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그러나 제네바 핵 합의가 유지되고 경수로 원전을 완성했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전 운영을 위해 한국과 미국 인력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을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자금이 투입되어 송전망도 건설되고 북한의 에너지난도 많이 해소됐을 것이다. 서울과 평양, 워싱턴 간에 대표부도 교환 설치됐을 것이다. 북핵 문제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일 수 있다.

그 후에 알게 되지만 부시 정권은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6자회담에 넘긴 것이 대책의 전부였다. 나는 1, 2차 회담에 한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두 나라가 협상을 해도 어려운 판에 6개국 100여 명이나 모여서 협상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회의는 춤을 췄다. 각국의 북핵 전문가들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개최된 6자회담은 북한에 핵 개발 시간만 줬다. 그사이 북한은 첫 핵 실험(2006년)을 시작으로 여섯 차례의 핵 실험을 했고 핵 무장국이 됐다.

‘안락의자의 전사들’ 너무 많아

부시 정부를 이은 오바마 정부(2009~2017)는 전략적 인내라는 명분으로 북핵을 8년간 방치했다.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본 셈이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트럼프·김정은 간 미·북 정상회담은 상당한 기대를 모았지만, 깜짝 쇼로 끝나버렸다. 일부(영변 핵시설 폐기)를 양보하고 경제적 곤란(제재)을 해소하려던 북한과, 농축우라늄 문제까지 일거에 챙겨보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이 잘 안 맞았던 모양새다.

북핵에 관한 한 지난 30년을 허비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외부 압력이나 경제 지원만으로 핵을 포기할 것으로 믿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당장은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이나 외교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태가 여기에 오기까지 누구의 잘못이냐고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다만 한국이나 미국에 대책 없이 너무 쉽게 강경책을 주장하는 ‘안락의자의 전사들’(armchair warriors)이 많았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현 상황에서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북한도 경제 고립 속에서 무한정 갈 수만은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물론 그 후의 협상의 유효성은 또 다른 문제다.

한국판 ‘동방정책’ 새로 짜야

북핵에 대한 방위는 한국군의 자위적 방어수단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방한한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공동성명에 이 문제가 강조됐다.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했다” “이른 시일 내 고위급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를 재가동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분간 남·북한이 공존한다는 입장에서 대북 핵 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판 동방정책(Ostpolitik)이다. 서독의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같이 끈기를 가지고 공존의 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면서 핵 문제도 해결하는 접근법이다. 공존은 관계 정상화부터 시작된다. 미국이  북한에 상호 연락사무소 교환을 선제 제의하고, 남북 간에도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여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중간 단계로 윤석열 정부가 공약한 판문점 남·북·미 3자 상설 연락사무소가 조기에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공존은 인내를 가지고 교류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교류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가 아닌 진정한 인도적 입장에서의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 제공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MZ세대가 BTS 평양 공연을 제안하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김일성대와의 교류를 제안한 것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신봉길 전 주인도 대사,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