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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교육부의 존재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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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정책디렉터

조민근 정책디렉터

지난 9일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가 전국에서 치러졌다. 6월 모의고사는 흔히 ‘수능 리허설’로 불린다. 그런데 올해 시험에선 한 가지 눈에 띄는 현상이 있었다. 재수생 응시자의 급증이다. 총 47만7148명의 지원자 중 재수생을 포함한 졸업생이 7만6675명으로 전체의 16.1%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최고치다. 여기에 ‘반수생’까지 가세하면 올해 수능 응시생 중 졸업생 비중은 30%를 훌쩍 넘길 것이란 예상이다.

재수생이 이처럼 늘어난 이유가 뭘까. 학원가에선 지난해 시작된 문·이과 통합 수능을 지목한다. 수학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은 이과생들이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에 대거 지원해 합격했다. 이른바 ‘문과 침공’이다. 그 바람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문과생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재수에 나섰다.

심각한 인력 ‘미스매치’ 방치하다
대통령 질책에 뒤늦게 “대책 마련”
폐지론 불거지는 이유 짚어봐야

kim.jee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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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만이 아니다. 교차지원으로 인문계열 학과에 진학한 이과생 중 상당수도 다시 시험을 치른다고 한다. 막상 인문계열에 들어가 보니 취업이라는 높은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실감하면서다. 그도 그럴 것이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 ‘문송합니다’(문과라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이란 자조가 떠돌기 시작한 게 오래전 일이다.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지던 금융권마저 이제는 이공계 출신을 더 선호한다니 졸업 뒤가 걱정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침공을 당했다는 문과생도, 침공했다는 이과생도 같은 대열에 서게 된 셈이다. 지독한 소모전이다.

소모전이 단지 입시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의 올 상반기 신규 채용 예정 인력의 61.0%는 이공계 출신이었다. 인문계 졸업생에 대한 수요는 36.7%에 그쳤다. 그런데 공급은 반대다. 지난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인문계열(43.5%)이 이공계열(37.7%)보다 많았다. 구조적 미스매치다. 디지털 전환에 인력 수요는 급변했는데 대학의 학과와 정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러니 취업 준비생들은 졸업한 뒤에도 사설 코딩학원을 전전하고, 기업들은 뽑을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전경련이 유럽경영대학원(INSEAD)의 ‘2021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를 토대로 분석해 봤더니, 자신이 받은 교육이 직업으로 연결된 경우가 한국은 58%에 그쳤다. 주요 30개국 중 꼴찌다.

이를 바라만 보던 교육부가 요즘 뒤늦게 바빠졌다.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강도 높은 주문이 나온 뒤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는 역점 사업을 치고 나가지 못한다면 그런 교육부는 필요 없다”고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교육부는 바로 다음 날 반도체 학과 증원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급하게 반도체 학과 정원 좀 늘리는 ‘땜질’로 구조적 미스매치가 풀릴 수 있을까. 규제, 다른 말로는 강고한 기득권 구조가 대통령의 불호령 한 번으로 풀리진 않는다는 건 역대 정권을 걸쳐 여러 차례 증명됐다. 교육부 한편에선  곤혹스러움과 함께 불만도 흘러나온다. 윤 대통령의 요구가 ‘산업역군’을 틀에 맞춰 찍어내던 1970년대식 발상 아니냐는 것이다.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에는 “대학이 단순한 직업인 양성소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대통령의 발언이 다소 거칠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되짚어볼 건 ‘교육부 폐지론’ 혹은 ‘무용론’이 불거진 게 비단 이번만이 아니란 것이다. 이미 사회 일반에 교육부의 존재감이 흐릿해졌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저출산 여파에 학령인구는 매년 급감하고 있다. 자연히 전통적인 교육 이슈도 우리 사회의 핵심 현안에서 밀려나고 있다. ‘효능감’도 마찬가지다. 교과과정과 입시제도는 빈번히 바뀌지만 사교육 부담은 여전하고, 학생들의 기초학력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다 정년이 늘면서 평생교육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지만 교육부와 대학은 제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교육 관료들의 말처럼 교육부가 꼭 경제부처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선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의 기본원리는 곱씹어볼 필요는 있다. 정책기관으로서 정책 수요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무의미한 소모전을 방지할 대안을 만들어 이해관계자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규제를 핑계 삼거나 혹은 무기 삼아 안주하는 대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