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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우승자의 습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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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코로나의 안개가 점차 걷히는 가운데 K클래식 연주자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클래식 음악팬들이 기분 좋아질 소식이 속속 전해졌다. 지난달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우승했다. 이달엔 첼리스트 최하영이 브뤼셀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승전보를 전했다. 이밖에 비올리스트 박하영이 도쿄 비올라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위재영과 비올리스트 윤소희가 워싱턴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는 등 한국 연주자들의 기세가 괄목할 만하다.

콩쿠르는 연주자에게 무대를 주고 길을 열어준다. 실수해서는 안 되고 다른 참가자와 경쟁하며 긴장과 스트레스가 넘치는 전장일 수도 있지만 열심히 준비해서 참가하는 이유다. 수많은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인 우승자들은 어떤 정신력의 소유자일까. 그들이 강해지기 위해 습관처럼 꾸준히 하는 일들이 뭔지 궁금해졌다.

지난달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금호문화재단]

지난달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사진 금호문화재단]

양인모는 운동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도 뉴잉글랜드 음악원 축구클럽 선수로 운동장을 누볐다. 모든 걸 잊고 축구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면, 연주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보스턴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발길 닿는 대로 떠날 때도 있다. 하루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보면 반복적인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이다.

보스턴을 떠나 독일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양인모는 하루에 두 번 산책을 한다. 두 시간마다 녹차를 마시고 오후에 한 번, 취침 전 한 번 명상을 한다. 연습할 때는 50분 단위로 하고 틈만 나면 수시로 스트레칭을 한다. 평소에도 자신의 연주를 자주 녹음해서 들어보는 편이라니 강한 멘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하영은 영국 퍼셀 음악원과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를 거쳐 현재 베를린 국립예술대에 재학 중이다. 단지 첼리스트가 아닌 음악가가 되라는 말을 늘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최하영은 다재다능하다. 첼로뿐 아니라 피아노 연주에 능하고 피겨스케이팅, 회화(그림)도 수준급이다. 첼로에만 기울지 않도록 삶에 균형을 주는 최하영의 습관은 책 읽기다. 사회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은 역사학자인 아버지의 영향도 크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는 96세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매일 아침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중 몇 곡을 피아노로 쳤다고 한다. 기도에 가까운 이 습관을 매일 행하며 첼로를 연주하느라 울퉁불퉁해진 손가락이 자유로워짐을 느꼈다고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몰아치기가 확실한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꾸준히 뭔가를 해서 이루는 사람들은 나무뿐 아니라 숲 전체를 보고 균형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오래 이어갈 만한 몸과 마음에 좋은 나만의 습관을 장착하고 싶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