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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 안고 사진 찍었던 제주 해녀, 광복절에 독도 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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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 통 넓은 바지에 머리에 헝겊을 두른 한 여성이 동물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1950년~60년대 독도 앞바다를 누빈 제주 해녀 김공자씨가 강치(바다사자)를 안은 모습이다. 김씨의 젊은 시절이 담긴 흑백사진에는 지금은 사라진 독도 강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한쪽에는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가 있다. 제주 협재리 대한부인회가 1956년에 비석을 세웠다는 내용과 함께 뒷면엔 해녀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1950년대 독도와 울릉도에 출어했던 제주 해녀들의 실제 이름이다. 이 비석에서 660㎞ 이상 떨어진 독도 동도 앞바다에는 제주 해녀들이 올라앉아 쉬던 ‘해녀 바위’가 있다.

1950년~60년대 독도에서 제주 해녀 김공자씨가 강치를 안은 모습이다. [사진 독도의병대]

1950년~60년대 독도에서 제주 해녀 김공자씨가 강치를 안은 모습이다. [사진 독도의병대]

옛 독도 앞바다를 누빈 ‘제주 해녀’들의 삶이 77주년 8·15 광복절을 앞두고 재조명받고 있다. 독도 앞에서 물질했던 제주 해녀들이 광복절을 전후해 독도를 찾을 예정이어서다.

경북도는 13일 “1950년대와 60년대 독도에서 물질한 해녀들을 비롯해 제주 해녀 40여 명이 오는 8월 17일 울릉도를 거쳐 독도를 찾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도행에는 과거 독도에서 실제 물질을 한 해녀 김공자·홍순옥·고정순씨가 동행한다. 독도와 제주 해녀 간 역사성 등을 보전·기념키 위한 행사다.

경북도 등에 따르면 제주 해녀들의 첫 독도행은 1930년대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수산자원에 대한 수탈이 이뤄진 시기다.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 앞바다의 전복 등을 채취하기 위해 제주도를 찾아가 해녀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장시간 독도에서 머물며 물질을 한 제주 해녀의 기록은 1950년대부터 나온다. 김남일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장은 “1950년대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 미역 등의 채취를 위해 제주 해녀 수십 명을 모집해 울릉도를 거쳐 독도로 물질을 갔다는 기록이 있다”며 “제주 해녀의 원정 물질인 셈이고, 그 현장이 독도 앞바다였던 셈이다”고 말했다.

1950~60년대 제주 해녀들은 일정한 대가를 받고 울릉도 주민 등의 요청에 따라 여러 차례 독도로 원정 물질을 나섰다. 한 번에 30~40명의 해녀가 팀을 꾸려 독도를 찾아 바닷속을 누볐다고 한다.

이들은 독도 서도의 ‘물골’에서 몇달씩 머무르며 물질을 했다고 한다. 물골은 독도에서 유일하게 ‘빗물 고인 물’이 있는 천연 동굴이다. 당시 독도를 찾은 해녀들이 숙박시설이 없던 독도에서 씻고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 동굴에 머물며 물질을 했다. 물골로 보이는 한 동굴 앞에 서 있는 제주 해녀의 모습이 찍힌 사진도 남아있다.

김윤배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박사는 “제주 해녀들은 1960년대 후반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지은 독도 서도의 ‘어업인 숙소’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들은 지금은 사라진 독도 강치(바다사자)를 만나기도 했다. 강치를 품에 안고 찍은 제주 해녀의 사진이 남아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는 감소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3437명으로 1년 전인 2020년(3613명)에 비해 4.9%(176명) 줄었다. 절반 이상이 7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화도 진행 중이다.

경북도는 해녀 문화유산 보존 사업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경상북도 해녀 문화 전승·보전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올 하반기는 포항에 ‘수산창업지원센터’가 문을 열 예정이다. ‘경상북도 귀어 해녀학교’도 설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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