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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시행령 수정요구 위헌” 野 “법무부 인사관리단이 위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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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던진 작은 돌이 정국에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모법(母法)의 취지에 어긋나는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시행령 견제법’)을 14일 대표발의하겠다는 조 의원의 계획이 본지 보도(지난 10일)로 알려지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13일 일제히 발끈하면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행령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헌법에 정해진 방식과 절차에 따르면 된다”며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좀 많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면 국회가 법률을 더 구체화하거나 개정해서 시행령이 법률의 효력에 위배되는 걸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행정입법권을 통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은 반(反)헌법적이다. 삼권분립 정신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여·야는 내로남불 맞대결 

조 의원의 법안은 2015년 유승민 전 의원이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 시절 추진해 본회의에서 의결됐다(2015년 5월 29일 244인 재석, 찬성 211명, 반대 12명, 기권 21명)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좌절됐던 것과 정확히 같은 내용이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선 법률에 근거가 없거나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에 근거한 행정권 행사가 비일비재 했다. 조 의원은 지난 7일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부조직법상 인사혁신처에 주어진 공무원 인사정보 수집·관리 권한을 법무부로 이관하자 맞불 성격으로 이 법안을 다시 꺼낸 것이다.

여·야는 이날 서로의 ‘시행령 통치’를 맹비난하는 내로남불 맞대결을 벌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문재인 정권 5년간 행정부 견제와 감시는 커녕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시켰다”며 “야당이 되자마자 행정부를 통제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초기 인수위 기능을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아예 ‘시행령으로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법무부 훈령으로 기자의 검찰청 출입을 막기까지 하지 않았나. 민주당 행태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질세라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시행령 ‘꼼수’를 통해 정부조직법이 규정하는 법무부 사무를 넘어 인사검증 권한까지 준 게 누군가. 바로 윤 대통령”이라며 “윤 대통령의 논리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이야말로 ‘위헌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권성동 원내대표도 2015년 ‘유승민 법안’에 찬성했었다”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어긋나면 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취지의 윤 대통령의 발언도 문제삼았다.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법리적으로 볼 때 논리의 역전”이라며 “시행령 수정문제는 모법 취지에 대한 입법부와 행정부의 해석이 다를 때 생기는데 ‘모법을 바꿔 해결하라’는 건 싸움을 붙이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김경록 기자

‘시행령 통치’를 둘러싼 “네 탓” 공방의 파열음이 커진 것은 전대미문의 여소야대 정국의 주도권이 걸린 문제라서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170석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어떤 입법도 불가능한 여권 입장에선 시행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 때문에 물러설 수 없는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원 구성 협상 장기 교착 전망까지 맞물려 한동안 기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학자 “‘시행령 견제법’은 부당”

정부 성향을 불문하고 일반화되어가는 ‘시행령 통치’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시행령을 바꿔 공무원 인사 정보 수집·관리를 법무부에 맡긴 것은 이 업무를 인사혁신처에 맡긴 정부조직법의 취지를 벗어난 것”이라며 “위헌·위법한 시행령을 통한 통치는 행정권력 남용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률로서 규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법률과의 상충 여부만 볼 것이 아니라 행정입법의 재량을 어느정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행령 견제법’에 대해선 회의적 견해가 많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약 대통령령에 문제가 있다면 헌법 107조에 따라 대법원 혹은 헌법재판소가 판단한다. (민주당 법안처럼) 국회가 그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 오히려 헌법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처장도 “(시행령 통치는)시행령에 위임할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는 날림 입법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며 “국회가 입법은 허름하게 해놓고 시행령에 대한 사후 통제권을 행사하겠다는 건 위헌적 발상” 이라고 지적했다.

이르면 14일 국회에 시행령 수정요구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할 조응천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이르면 14일 국회에 시행령 수정요구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할 조응천 민주당 의원. 중앙포토

한편 민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겸임이 불가능한 상설 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국회법 개정안도 추진키로 했다. 상시 가동되는 예결위를 통해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 지침 단계부터 보고를 받아 개입하고 재정 총량 및 상임위원회별 지출 한도를 심사하는 역할을 맡게 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는 5년 단위로 모든 사업의 효과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영기준예산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담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이르면 15일 맹성규 의원을 통해 발의할 예정이다. 민주당 원내핵심인사는 “예결위 기능을 정상화하자는 국회 개혁 차원”이라고 말했지만 국민의힘에선 “법사위를 장악해 입법과제를 틀어막겠다는 민주당이 예산 발목까지 잡겠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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