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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때리면 北 아프다…北 핵실험때, 한·미가 노리는 '헛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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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북한의 7차 핵실험에 대비한 ‘연합 독자 제재’ 구상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중·러가 계속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를 막아서며 각국의 독자 제재 외엔 북한을 새롭게 압박할 수단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독자 대북 제재의 구체적인 분야와 내용, 방향성 등이 의제에 오를 전망이다.

北 핵·미사일 ‘돈줄’ 암호화폐 겨냥

북한은 라자루스 그룹 등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해킹, 이를 현금화해 통치 자금과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라자루스 그룹 등을 활용해 암호화폐를 해킹, 이를 현금화해 통치 자금과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재 강화에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기존에는 허용됐던 분야에서 돈줄 유입을 새롭게 막는 등 제재 범위를 넓히거나, 기존의 제재를 더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제재의 확장 측면에서 최근 미국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는 암호화폐다. 한·미 양국이 연합 독자 제재에 나설 경우에도 새롭게 주력할 분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미 암호화폐 제재의 구체적 방법론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기존 안보리 대북 제재 등으로 이미 대외 교역이 상당 부분 불가능한 상태다. 주수입원이던 석탄, 광물, 섬유 등의 수출이 모두 막혔다.

하지만 암호화폐 분야는 안보리와 각국에서 대북 제재를 연이어 마련하던 2016~2017년에는 아예 생경한 개념이었다. 이후 비트코인을 필두로 암호화폐는 거래량과 평가액이 급등했고, 북한이 암호화폐 해킹으로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하며 제재 필요성도 새롭게 생겨났다.

북한은 지난해에만 약 4790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북한은 지난해에만 약 4790억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포토]

실제 북한은 기존 제재 체제가 미처 다루지 못한 암호화폐의 구멍을 적극 활용해 수익 창출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암호화폐 분석업체인 미 체인어낼리시스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해 탈취한 암호화폐는 약 4억 달러(4790억원)에 달한다.

암호화폐를 해킹해 빼돌리는 북한의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고 대담해짐에 따라 미국은 이미 관련한 독자 제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 4월 북한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 연관된 이더리움 지갑 3개를 제재 명단에 포함했다. 북한이 탈취한 암호화폐를 현금화해주는 이른바 ‘믹서’ 담당 업체도 제재했다.

이와 관련 앤 뉴버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사이버·신기술 담당 부보좌관은 지난달 “(북한의)암호화폐 획득을 위한 모든 시도를 차단할 수 있는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컨더리 보이콧’ 동참 가능성

북한이 7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안보리 추가 제재에 반대하는 중·러를 압박하기 위한 세컨더리 보이콧도 한·미가 검토할 독자제재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달 북한 ICBM 발사와 관련된 러시아 은행 2곳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원래 세컨더리 보이콧의 정확한 의미는 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의 단체와 개인까지 제재하는 것이지만,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 단체와 개인을 거침 없이 제재 명단에 올리는 것은 사실상의 세컨더리 제재 요소를 가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막기 위한 책임 있는 역할을 중·러에 강제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는 동일하다.

단둥훙샹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며 한미가 각각 세컨더리 보이콧에 나섰다. 사진은 중국 단둥시 압록강변에 위치한 훙샹그룹 본사 전경. [중앙포토]

단둥훙샹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며 한미가 각각 세컨더리 보이콧에 나섰다. 사진은 중국 단둥시 압록강변에 위치한 훙샹그룹 본사 전경. [중앙포토]

한국도 앞서 2016년 12월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물자 거래를 지원한 중국 단둥훙샹 실업발전공사와 중국인 4명을 제재 명단에 올리며 사실상의 세컨더리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과의 공조 하에 이뤄진 제재이자, 중국 기업을 상대로 한 첫 제재였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기축통화국 미국의 힘에서 나온다.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 달러 거래가 금지되고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 등의 단체와 개인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 건 실효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에 동참하고 중·러의 ‘제재 딴지’에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가 크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한다면 국적과 소속에 관계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며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세컨더리 보이콧 뿐 아니라 가용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대북 압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제재 완전한 이행" 감시망 강화

제재의 요소를 추가하는 게 사후에 이뤄질 수 있는 조치라면, 북·중 국경 및 북한 해역 근처의 감시 체계 강화 등 대북 제재의 구멍을 메우는 건 북한이 굳이 핵실험까지 하지 않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능한 제재 강화 방안이다.

특히 중·러 양국은 유엔 안보리의 추가 대북 제재에 반대할 뿐 아니라 선박 등을 활용한 불법 대북 교역으로 북한이 제재를 회피할 '뒷문'을 열어준다는 의혹을 받는다. 안보리 결의가 금지한 북한 해외 노동자도 여전히 고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는 지난달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모든 유엔 회원국이 모든 유엔 안보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런 뒷문을 닫아야 한다는 취지다.

2018년 미 국무부가 공개한 북한의 불법 환적 위성사진. 중국 상위안바오호(위)가 북한 명류 1호에 유류를 불법 환적하고 있다. 두 선박 사이에 호스가 연결돼 있다. [미 국무부 제공]

2018년 미 국무부가 공개한 북한의 불법 환적 위성사진. 중국 상위안바오호(위)가 북한 명류 1호에 유류를 불법 환적하고 있다. 두 선박 사이에 호스가 연결돼 있다. [미 국무부 제공]

특히 공공연히 이뤄지는 북·중 선박 환적을 단속하기 위해 미국은 주기적으로 고고도 무인정찰기 띄우고 정찰위성 등을 활용한 감시 체계를 강화해 왔다. 일본과 호주 역시 사실상의 상시 감시 체계를 운용하고 있고, 지난해 11월엔 독일 호위함이 처음으로 불법 환적 감시를 위한 경계 작전에 참여했다.

제재 이행을 위한 감시 활동의 경우 안보리 결의에 따른 유엔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명분도 충분하다. 이와 관련 한·미·일 국방장관은 지난 11일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통해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을 근절하기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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