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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도 동생도 한일전 완패…한국축구는 왜 버티지 못할까[송지훈의 축구.공.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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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두 살 어린 일본을 상대로 0-3 완패를 당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두 살 어린 일본을 상대로 0-3 완패를 당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붉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푸른 유니폼을 입은 일본 선수들은 밝은 표정으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전광판에 표시된 최종 스코어는 0-3, 한국의 완패. 하지만 점수 차가 더 크게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리한 흐름이 전·후반 내내 이어졌다.

지난 12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파흐타코르 스타디움에서 한일전으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안컵 8강전. 무득점 패배로 경기를 마친 한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감독 황선홍)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스코어와 경기 내용 모두에서 ‘일방적’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밀렸다.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일본을 상대로 세 골 차 이상으로 진 건 1999년 9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친선경기(1-4패) 이후 23년 만이다.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에 패한 뒤 고개 숙인 이강인. [사진 대한축구협회]

U-23 아시안컵 8강에서 일본에 패한 뒤 고개 숙인 이강인. [사진 대한축구협회]

이강인을 비롯해 지난 2019년 20세 이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준우승 멤버 여러 명이 뛰었지만, 일본과의 경기력 차이가 도드라졌다. 상대의 강한 압박과 정교한 패스워크에 시종일관 고전했다. 심지어 일본은 2024년 파리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21세 이하 선수들을 주축으로 구성한 팀이다.

그런데 서두에 소개한 상황이 비단 23세 이하 대표팀 경기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A대표팀도 똑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일본과 맞붙어 무기력한 경기 끝에 0-3으로 완패했다. “주포 손흥민(토트넘)이 결장한 게 오히려 위안”이라는 팬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이후 꽤 오랫동안 경질설에 시달렸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에서 일본에 0-3으로 완패한 뒤 고개 숙인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지난해 3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A매치 평가전에서 일본에 0-3으로 완패한 뒤 고개 숙인 축구대표팀. [연합뉴스]

청소년 연령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일본에서 열린 4개국 대회에 참가한 16세 이하(U-16) 대표팀(감독 변성환)이 형님들과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일본대표팀과 맞붙어 0-3으로 완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3월 이후 1년 3개월 사이에 A팀부터 U-23팀, U-16팀 등 서로 다른 연령대의 세 대표팀이 일본에 똑같이 0-3으로 무너지는 황당한 상황을 겪은 셈이다. 스코어는 세 골 차로 마무리 됐지만, 경기 흐름은 그보다 더 좋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공통적이다.

오랜 기간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발전시켰다. 한국은 투혼과 체력·스피드 위주로, 일본은 패스와 조직력 위주로 성장했다. 시간이 흐르고 맞대결 횟수가 늘면서 두 축구는 서로의 장점과 특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진화했다. 일본 축구에 투쟁심이 추가 장착됐고, 한국 축구는 패스 위주의 빌드업을 새 뼈대로 삼아 변신을 꾀하는 중이다.

한국 U-23대표팀 조영욱이 볼을 잡자 일본 수비수 두 명이 에워싸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 U-23대표팀 조영욱이 볼을 잡자 일본 수비수 두 명이 에워싸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이 과정에서 각급 연령별 대표팀 맞대결이 줄줄이 한국의 완패로 끝나는 건 볼 키핑력과 템포의 차이에 원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을 비롯해 강하고 짜임새 있게 압박하는 상대와 만나면 우리 선수들은 효과적으로 버텨내지 못했다. 개개인의 볼 처리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실수가 많았고, 상대 압박에 대응할 조직적 움직임도 미흡했다. 위험지역 언저리에서 기본 투터치 이상으로 볼을 끌다 위기를 자초하는 장면이 많았다.

결국 ‘기본기 격차’다. 근래 들어 한국의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선 팀 훈련 후 별도로 코치를 초빙해 스킬 트레이닝을 받는 게 유행이다. 네이마르와 메시(이상 파리생제르맹)를 동경하며 화려한 발재간을 따라하지만, 정작 가장 기본적인 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매일 4시간 동안 리프팅하고 1000개의 슈팅을 시도하며 기본기를 키운 손흥민. [연합뉴스]

매일 4시간 동안 리프팅하고 1000개의 슈팅을 시도하며 기본기를 키운 손흥민. [연합뉴스]

한국 축구 최고의 성공사례로 꼽는 손흥민(토트넘)이 기회 있을 때마다 ‘기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건 그래서 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손흥민처럼 성공하고 싶어하는데, 정작 손흥민의 훈련 방식은 외면하는 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다.

손흥민은 “인생에서 공짜로 얻는 건 없다.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그 다음을 생각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세 골 차로 벌어진 한·일 축구의 실력 격차를 다시 좁힐 해답도 그의 말 속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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