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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구독피로 시대…500원 내고 하루만 보는 OTT, 왜 안 되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1일 등장한 무단 OTT 1일권 판매 사이트 ‘페이센스’가 서비스 개시 11일 만에 국내 OTT 업계로부터 공식적인 서비스 중단 요청을 받았다. 사진 페이센스 캡처

지난달 31일 등장한 무단 OTT 1일권 판매 사이트 ‘페이센스’가 서비스 개시 11일 만에 국내 OTT 업계로부터 공식적인 서비스 중단 요청을 받았다. 사진 페이센스 캡처

무슨 일이야

하루 단위로 온라인 동영상(OTT) 이용권을 판매하는 사이트가 등장해 콘텐트 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페이센스’ 얘기다. 이 사이트는 주요 OTT 서비스의 한달 이용권을 하루 단위로 판다. OTT 회사들과 제휴를 맺지 않고 임의로 이용권을 쪼갰다. 넷플릭스 1일권을 600원에, 웨이브·티빙·왓챠·라프텔 1일권을 각 500원에, 디즈니플러스 1일권을 400원에 한정 판매하는 식이다.

웨이브·티빙·왓챠 등 국내 OTT 3사는 이를 ‘불법 쪼개기 판매’로 보고 지난 10일 페이센스에 영업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송부했다. 서비스 개시 11일 만이다. 페이센스를 방치하면 구독경제 생태계가 파괴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법적 대응에 빠르게 나선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가능했지?

페이센스는 각 OTT에서 4인용 프리미엄 이용권을 구매한뒤, 이 계정을 재판매·공유하는 방식이다. 월 1만7000원인 넷플릭스 이용권으로 단순 계산하면 30일 기준 120명에게 팔아 최대 7만2000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월 이용권 하나당 5만5000원의 차익이 남는 셈이다.

이와 관련 송홍석(36) 페이센스 대표는 팩플팀에 “OTT 시장을 교란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페이센스가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요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다만 누적 이용자 수나 약관 위반에 대한 입장 등은 밝히지 않았다.

실제 페이센스의 주장대로 소비자들도 ‘기발하다’는 반응이다. 원하는 콘텐트만 몰아보고 싶을 때 페이센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적지 않은 돈을 아낄 수 있어서다. OTT 서비스 운영업체가 손해를 떠안는 구조다. 페이센스 방식이 용인될 경우, 제돈 주고 OTT를 쓰는 다른 소비자 불만도 커질 수 있다.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가 CS 담당자를 통해 팩플팀에 밝힌 입장. “(페이센스는) OTT 시장을 교란하려는 것이 아닌,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정민 기자

송홍석 페이센스 대표가 CS 담당자를 통해 팩플팀에 밝힌 입장. “(페이센스는) OTT 시장을 교란하려는 것이 아닌,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대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정민 기자

OTT들은 뭐래?

명확한 약관 위반”이란 입장이다. OTT 회사들은 약관에 ‘이용권의 타인 양도 및 영리 활동 금지’,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관리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용권 재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물론 비밀번호를 바꿔가며 같은 계정을 여럿에게 공유하는 것 자체가 민·형사상 책임 소지가 있다는 것. 대표적으로 넷플릭스는 “약관상 (한 가구 내에 사는) 가족이 아닌 개인과 계정을 공유해선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 중이다. 그러나 페이센스 측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으니 불법이 아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어 파장이 우려된다.

페이센스 고객센터가 일반 소비자에게 “불법이 아니니 안심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사진 제보자 제공

페이센스 고객센터가 일반 소비자에게 “불법이 아니니 안심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사진 제보자 제공

OTT 업계가 유례없이 빠른 법적 조치를 예고한 배경엔 페이센스에서 일단위 계정을 구매한 소비자를 현실적으로 제재하기 어렵다는 고충이 깔려있다.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어떤 계정이 제3자로부터 제공받은 것인지 기술적으로 적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비밀번호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패턴 등으로 추정할 순 있겠지만, 그런 계정에 일괄 이용 차단을 결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부터 ‘가족 외 공유 금지’를 내건 넷플릭스도 계정을 중지시킨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OTT 업계는 “법률 검토상 구매자도 저작권법 위반 등 소지가 있는 만큼 이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이게 왜 중요해

구독할 OTT가 너무 많다는 걸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빗댄 인터넷 밈. 사진 웹 커뮤니티

구독할 OTT가 너무 많다는 걸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에 빗댄 인터넷 밈. 사진 웹 커뮤니티

전문가들은 페이센스 사태가 구독경제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커뮤니티 등에서 알음알음 행해지던 ‘쪼개기 판매’가 서비스화까지 이뤄진 건 그만큼 ‘구독 피로도’가 커졌다는 반증이란 것이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페이센스가 위법인 것과는 별개로, 다양한 구독 서비스의 범람으로 비용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위한 요금제를 고민할 때가 됐다”며 “실제 해외 B2B 회사들의 경우 쓴 만큼만 돈을 내는 단가제(per unit pricing)를 통해 매출 성장을 이루는 등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하루 이용권 출시하면 안돼?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단기 이용권’은 OTT 업계의 오래된 고민이다. 한 국내 OTT 관계자는 “일일 또는 주간 이용권을 고려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라며 “구독모델은 영화·드라마당 1000원 이상인 단건 결제의 부담을 낮추는 대신 소비자가 일정 기간 구독을 지속할 것이란 전제로 창작에 투입할 비용을 계산하는데, 그 최소 단위가 월간~연간 단위 구독료”라고 말했다. 또다른 OTT 관계자는 “광고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기 결제를 도입하면 예상 수익을 파악하기 어려워 막대한 (콘텐트) 투자액을 감당할 수 없다”며 “결국 피해는 창작자 시장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콘텐트 투자 선순환을 이룰 만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넷플릭스조차 2019년 한국·인도·필리핀 등에서 주간 요금제를 실험했다가 접은 바 있다. ‘만성 적자’ 상태인 국내 OTT들이 수익 예측이 안 되는 단기 이용권을 도입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전호겸 교수는 “OTT 시장은 소비자 반응을 고려해 단건·단기 결제가 결합된 멤버십, 재판매 사이트와의 제휴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며 “국회와 정부는 불법 쪼개기 판매가 창작자 시장에 끼치는 악영향이 큰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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