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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헌재 "사형제는 필요악"…2010년도 합헌이었다, 이번엔? [그법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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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43] 또다시 심판대 선 사형제...헌재의 세 번째 판단은?

지난 2018년 6월,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윤모 씨. "부모를 죽여야 나의 영혼이 산다는 환청이 들렸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기징역을 선고합니다.

1심 재판을 받던 윤씨 측은 "존속살해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습니다.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자신의 사건에 적용될 법이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지,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요구하는 건데요. 재판부가 이 신청을 기각하자 2019년 2월에 윤씨 측이 직접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헌재는 다음 달 14일 이 사건의 공개변론을 엽니다. 사형제가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른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에 사형제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죠. 이번엔 어떨까요? 먼저 과거 두 차례 결정문을 '그법알'에서 살펴봤습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김정연 기자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김정연 기자

관련 법령은!

형법 조문부터 살펴볼까요. 형의 종류를 정하는 형법 제41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징역과 벌금, 자격정지, 몰수 등과 함께 '사형'이 적혀있습니다. 실제로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형법 곳곳에 보입니다.

헌법도 살펴보겠습니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권' 역시 헌법에 명시적으로 세 글자가 적힌 건 아니지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사형제 이슈에서 헌법 10조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건 헌법 제37조 2항입니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1996년 헌재 “사형제, 필요악으로 불가피”→97년 말 23명 사형 집행

1996년 사형제 첫 위헌소송에서 헌재는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합헌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자유와 권리는 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헌법 제37조를 들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어떤 생명'이 보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다수의견이 사형을 정의한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라는 겁니다.

2명의 반대의견은 어땠을까요. 당시 조승형 재판관은 헌법 제37조 2항의 단서 조항에 집중했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공익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생명권의 본질은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생명권을 박탈하는 건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란 취지입니다.

이 결정이 나온 뒤인 1997년 12월 30일에는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이 집행을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2010년 헌재 “절대적 기본권 없다…연쇄살인범 '무기'론 책임 못 물어”

지난 2010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을 결정한 대심판정 모습. 중앙일보

지난 2010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을 결정한 대심판정 모습. 중앙일보

이제는 2010년으로 가보겠습니다. 헌재가 두 번째로 사형제를 합헌으로 본 시기입니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은 9명 중 4명으로 늘었습니다.

▶"생명권도 제한 가능"
이때도 헌재는생명권 역시 헌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우리 헌법은 절대적 기본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내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듭니다. 정당방위로 상대방의 생명을 해하는 경우, 엄마의 생명이 위험해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하는 경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국가가 전쟁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에서 국가는 생명을 법적으로 평가하고, 누군가의 생명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다수의견은 사형은 인간의 공포 본능을 이용한 궁극의 형벌이라서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또 "잔혹하게 많은 이들을 죽인 범죄자의 경우 무기징역만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도 했죠.

하지만 반대의견은 좀 다르게 봤습니다. 생명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을 보호하거나 구원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범죄자를 사형시킨다고 해서 피해자 생명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거죠. 사형이 선고될 때에는 이미 범죄는 저질러진 상태여서, 피해자의 생명권이 범죄자의 생명권과 충돌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사형은 국가가 범죄자를 보복하기 위해 생명을 뺏는 것인데, 기본권의 본질인 생명을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반대의견은 또 "무기징역형이나 종신형으로 범죄자를 격리시켜 재범을 예방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범죄자를 사형시켜서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이는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사형은 범죄자가 자초한 일"
위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범죄자를 사람이 아닌 '공익 수호를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것이 사형제"라고 주장합니다. 우리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는 겁니다. 당시 반대의견 역시 "범죄자가 한 인간으로서 반성과 개선을 할 최소한의 도덕적인 자유만을 남겨두지 않는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견은 좀 다르게 판단했습니다. "형벌의 경고를 무시하고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것이고, 범죄자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겁니다.

▶"법관·교도관 자책감 감수해야"
사형을 선고하는 법관이나,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자책감은 어떡할 것인지도 쟁점이 됩니다. 위헌을 주장하는 쪽은 법관과 교도관이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고 하죠. 국가가 한 생명을 빼앗는 과정에 참여하는 수단으로만 전락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헌재는 "사형은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형벌인 만큼, 공적 지위에 있는 법관과 교도관이 자책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답합니다.

▶"잘못된 재판할 가능성? 숙명적 한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의견을 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도 신이 아닌 이상 '오판'할 수 있는데, 사형이 집행된 뒤에 판결이 잘못된 걸 알게 되면 어떡하냐는 거죠.

다수의견은 좀 달랐습니다. 사법제도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라 결점이 없을 수 없고, 오판 가능성은 숙명적인 한계일 뿐이라는 겁니다. 사형제를 없앨 게 아니라 항소와 상고, 재심 등 각종 제도로 보완할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사형 폐지하려면 개헌해야?

"우리 헌법이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이 역시 꾸준히 제기된 쟁점이었습니다. 군사법원 관련 규정을 정하고 있는 헌법 제110조 때문인데요.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한 경우, 비상계엄 상황이라도 단심으로 하지 말고 항소와 상고를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조항을 두고 합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우리 헌법이 적극적으로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개헌해야만 사형제를 폐지할 수 있다는 거죠.

반면 반대쪽에서는 "특수한 상황 이외에는 사형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맞다는 입장입니다. 사형을 선고할 경우 한 번의 재판으로 끝내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이지, 이 조항으로 사형의 정당성이 인정됐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앞서 두 차례 "우리 헌법이 사형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렸습니다.

세 번째 헌재 판단은

12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양측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설득되시나요? 양측 논의는 어떻게 진전되었을까요? 다음 달 공개 변론이 열리는 헌재 대심판정에는 윤씨 측 대리인과 법무부의 입장 뿐 아니라 학계의 목소리 역시 들을 수 있을 전망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재판관들의 마음을 움직일까요? 그법알에서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법알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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