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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연금개혁' 외쳐도, 손 놓은 당·정·대…"盧정부 땐 바로 착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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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가량 지났지만, 연금개혁이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장기 공석도 이런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은 "국민연금 개혁이 늦어질수록 부채(미적립 부채) 1500조원이 계속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국민 1인당 2900만원의 빚을 안고 있는 셈이다.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새 정부의 3대 개혁 과제의 하나로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연금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지만 새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상생의 연금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올려놨다.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첫 단추는 공적연금 개혁위원회이다. 그러나 이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정부도, 국회도, 대통령실도 모두 그렇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진도를 낸 게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당장 액션을 취한 게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의 연설 후 한 마디 거들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권 대표는 지난달 17일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특위) 같은 걸 만들어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정부·국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 선거 공약집에서는 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것과 결이 다르다. 국회가 주도한 것은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

하지만 국회 공전이 이어지면서 연금개혁은 실종했다. 어느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국회에 개혁 특위를 두려면 여야가 위원 구성, 인원, 배분 방법, 전문위원회 등 따질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여야가 논의해 합의안을 만들어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한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때 그리했다.

당정대(여당, 정부, 대통령실)나 당정 논의도 없다. 대선 공약대로 개혁위원회를 대통령실 직속기구로 둘지, 권 대표말대로 국회에 둘지, 총리실 산하에 둘지 등이 논의된 적이 없다. 정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안의 장단점을 검토하고 있지만, 공식 협의가 아직 진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주당·정의당도 연금 개혁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관계자는 "공무원연금은 대상자가 많지 않은 데다 연금액이 높아서 이걸 깎는 데 큰 부담이 없었지만, 국민연금은 차원이 다르다"며 "국회에 특위를 만들어봐야 책임 있게 보험료를 올리자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년동안 국민연금 개혁에 손을 대지 않았다. 국민연금 4차 재정재계산을 한 뒤 소위 '4지선다 개선안'을 국회에 보낸 게 전부다. 지난 대선 당시 가장 파격적인 개혁안을 냈던 정의당도 별 다른 움직임이 없다.

국회 공전이 이어지면서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장관이라도 있어야 개혁위 구성을 추진할 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다. 국민연금공단 김용진 이사장이 지난 4월 사퇴하고 민주당 김동연 경기지사 캠프로 옮긴 후 공석 상황이 두 달째 이어진다. 후임자 공모 절차를 진행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김승희 후보자는 자유한국당 원내부대표이던 2018년 8월 “문재인 정부는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보험료를 올려 국민 지갑을 먼저 털겠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어 논란에 휩싸여 있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인상만을 주요 대안으로 검토하던 당시의 연금 개혁 방안을 비판한 것이며, 노후소득보장 및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의 구축을 위하여 종합적인 개혁 방안이 사회적 합의 속에 마련돼야 한다는 현재의 국정과제 추진방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인구·경제성장률 등의 경제변수 변화를 고려해 5년마다 국민연금 향후 재정을 다시 따져보고 개선하는 절차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윤석명 연구위원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연금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무책임하기 그지없다"며 "취임하자마자 연금 개혁에 착수했고 임기 내 완수한 노무현 정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우선 국민연금·공무원연금의 재정 안정화가 급하니 이것부터 먼저 착수하는 게 바람직하다. 퇴직연금·주택연금 등을 섞어놓으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원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도 "윤 대통령이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현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다"며 "한두 달 지나면 새로운 사안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연금 개혁의 초심과 판단력이 자꾸만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런 상황에서 개혁을 한다 해도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일이 효과적으로 진행될 텐데, 어디서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서로 나서는 걸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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