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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찔린 조폭, 그때 들려온 한 노래…OST 작곡가의 첫 시작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한류 첫 공식 에이전트 배경렬 ㈜레디차이나 대표는 사드(THAAD) 사태로 잃어버린 한류의 꿈을 ‘틱톡’에서 찾았습니다. 그에게 ‘틱톡’을 소개한 이가 ‘슈퍼스타K 4’에 출연했던 가수 겸 작곡가 양경석입니다. “사람은 못 가도 판권과 음원은 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배 대표는 바로 다음 날 첫 콘텐트를 촬영했죠. 배 대표는 “나에게는 제2의 한류를 꿈꾸게 해준 귀인”이라며 그를 소개했습니다.

일상이 싸움의 연속이었던 양경석은 고3 때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듣고 음악을 결심했다. 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를 방문한 양경석. 우상조 기자

일상이 싸움의 연속이었던 양경석은 고3 때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듣고 음악을 결심했다. 9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를 방문한 양경석. 우상조 기자

어릴 땐 매일 싸움의 연속이었다. 조직에 몸담은 적도 있었다. 고3 때였던 1999년 흉기로 옆구리를 찔린 후 고민이 많아지던 차에 우연히 들은 노래 한 곡은 그를 뒤흔들어놨다. 짝꿍에게서 빌린 워크맨에서 흘러나온 휘트니 휴스턴의 곡 ‘I will always love you’였다. 그는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반응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음악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네가 무슨 가수를 하냐”는 놀림도 있었지만, 지역 노래대회에 나가고 피아노를 독학했다. 가수 겸 작곡가 양경석(40)의 음악은 이렇게 시작됐다.

싸움꾼에서 뮤지션으로 

양경석은 2012년 생애 첫 오디션 '슈퍼스타K 4' 출연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하지만 OST 작곡가로 수많은 곡을 내놓기까지 그는 "너무나 절박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양경석은 2012년 생애 첫 오디션 '슈퍼스타K 4' 출연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하지만 OST 작곡가로 수많은 곡을 내놓기까지 그는 "너무나 절박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양경석은 지난 2012년 ‘슈퍼스타K 4’에 출연해 대중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앞서 2010년 SBS 드라마 ‘제중원’ OST 작사, 한·일 합작드라마 ‘피그말리온의 사랑’ 메인 OST 작곡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MBC 드라마 ‘부잣집 아들’, ‘비밀과 거짓말’, ‘용왕님 보우하사’, MBN ‘우아한가’ 등의 OST와 가수 허니G, 멜로우키친 등의 앨범 등 50여곡을 내놓기까지 그는 “너무나 절박했다”고 했다. 양경석을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2007년 고향 광주에서 상경한 그 날이 “지금도 너무 생생하다”고 했다. “군 제대하고 다음 날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바로 짐 싸서 올라왔어요.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홍대 재즈클럽을 서성였지만 “촌놈이라고 안 받아줄까 봐” 매일 건너편 편의점에서 귀동냥만 하다 2주 만에야 용기를 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을 그의 팔에 문신으로 새길 만큼 여전히 든든한 음악 동지다.

고향에 돌아와 실용음악학원을 차려 성공했지만, 3년 만에 접었다. 동업했던 지인의 배신에 이어 바로 앞 건물에 유명 연예인이 학원을 차리면서 사업이 흔들렸다. 다행히도 그즈음 우연한 기회에 ‘제중원’ OST 곡을 듣고 즉석에서 쓴 가사가 채택돼 작가로 데뷔하면서 다시 기회를 찾았다. 그는 “내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직후 드라마 메인 OST 작곡까지 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그룹 결성을 제안한 매니저에게 전 재산을 사기당한 뒤 양경석은 극단 선택을 하려고 한강까지 갔었다. 폐인 생활만 하다가 '슈퍼스타K 3'에 출연한 '울랄라 세션'의 임윤택을 보고 재기를 결심했다. 우상조 기자

양경석은 피아노를 독학하면서 "모든 음악이 계이름으로 들리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곡을 피아노로 만든다. 우상조 기자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룹 결성을 제안했던 한 매니저가 돈을 받고 잠적했다. 전 재산을 날렸다. 저작권료는 기대했던 수천만 원이 아닌 10여만원뿐이었다. 이미 성공했다고 여기저기 일은 벌여놨는데 “그렇게 사람 때리고 다니더니 이제는 세상을 때리려고 한다”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에겐 차마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진짜 죽으려고 한강까지 갔었다”고 했다. 그때 통장 잔고는 5만5365원.

한 달여 고향 집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그때 만난 인생 프로그램이 ‘슈퍼스타K 3’다. 마음으로 응원하던 ‘울랄라 세션’의 리더 고(故) 임윤택의 시한부 사실이 공개되자 견딜 수 없었다.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진 양경석은 “내가 너무 한심했다”고 했다. “저는 고작 돈 때문에 폐인이 됐는데 이 사람은 죽을 걸 알고도 음악을 하잖아요. 저한테 화가 나 들고 있던 술병을 깨버렸어요. 임윤택 선배가 제 진짜 스승이죠.” 그의 손엔 그때 박힌 유리 조각으로 생긴 상처가 선명하다.

생애 첫 오디션에 나섰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오디션은 싫었다”던 그는 두 달 만에 체중을 37㎏ 감량했다. 2013년 1월 늦깎이 데뷔를 했다. 데뷔는 성공적이었지만 돈을 벌진 못했다. “새벽부터 샵에서 메이크업하고 인터뷰하고 음반 작업하고 집에 왔는데 750원밖에 없더라고요. 먹고 싶었던 라면이 950원이었어요. 꿈은 이룬 것 같은데 돈은 없으니 괴리감이 컸죠.”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든든한 버팀목이던 부모님마저 옥탑방 신세가 됐다.

부모님 모시며 두문불출 작업  

중소기업 대표이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전 재산을 잃은 후 양경석은 서울 투룸에 부모님을 모셨다. 1년 내내 집에서만 지내며 OST 곡을 만들었다. 우상조 기자

중소기업 대표이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전 재산을 잃은 후 양경석은 서울 투룸에 부모님을 모셨다. 1년 내내 집에서만 지내며 OST 곡을 만들었다. 우상조 기자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다 한 대형 연예기획사 이사를 만나 한 달여를 매일 쫓아다니면서 OST 작업 기회를 잡았다. 부모님을 서울 투룸 빌라로 모셔 함께 살며 1년 내내 집 밖에도 안 나가고 곡 작업에만 매달렸다. 피아노를 치다 엎드려 잠들고, 눈뜨면 또 작업하는 식이었다. 드라마 ‘부잣집 아들’의 OST ‘알고 있나요’가 그때 투룸에서 울다 잠든 엄마를 보며 쓴 곡이다. 그는 “허리디스크를 얻고 많은 곡을 썼다”며 “건강과 경제적 자유를 맞바꾼 셈”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제야 진짜 내 삶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했다. “쪽대본만 보고 만든 내 음악이 화면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맞물려 하나의 작품이 되는 순간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뉴미디어 콘텐트 제작에도 도전했다. “어떤 시대든 어떤 플랫폼이든 진심이 담긴 콘텐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아요. 나만의 경쟁력은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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