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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동의 축적의 시간

혁신기술, 연구실과 국회 2인3각 경주에서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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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기술혁신 방향타 쥔 국회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기술패권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연일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미국의 체제를 잘 들여다보면 행정부가 아니라 미국 의회가 궁극적인 방향타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회가 행정부의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규칙을 정할 뿐 아니라 그 규칙 자체를 바꾸는 권한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과 관련해서 의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좋은 사례들이 있다.

미국 산업정책의 특징을 규정짓는 대표적 키워드는 ‘반독점’이다. 건국이래, 특히 1890년 상원의원 존 셔먼이 발의한 ‘셔먼 반독점법’ 제정 이후 일관되게 관철해온 원칙이다. 록펠러가 세웠던 거대기업 스탠더드 오일도 이 법에 근거해 1911년 해체되었고, 당시 세계 최대의 통신회사였던 AT&T도 1982년 강제분할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1997년부터 4년여간 곤욕을 치렀고, 현재는 구글 등 소위 빅테크 회사들의 독점제재를 위한 조치들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강력한 반독점법을 만들었던 미국 의회 스스로 파격적인 예외를 만들었는데, 1984년의 공동연구개발법(National Cooperation Research Act)이 바로 그것이다. 이 법에 따라 당시 반도체 산업을 지배하던 인텔, 휴렛팩커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 주요 기업들이 연합하여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 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차세대 반도체를 공동으로 만든다면 반도체 산업의 독과점화가 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당연히 반독점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미국 의회는 과감히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배경에는 미·일간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패권경쟁이 있다. 당시는 일본 반도체 산업이 미국 산업의 목줄을 쥐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회가 미국 산업과 기술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가치판단을 한 것이다.

미 의회, 미래 산업엔 여야 한목소리
기술은 과학적 논리로만 진화 못 해
법 개정 없인 규제개혁 성과 어려워
기술혁신, 국회 초당적 노력 있어야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 여·야간 원구성 협상 난항으로 국회 공백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국회를 참관한 학생들이 텅 빈 본 회의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 여·야간 원구성 협상 난항으로 국회 공백 상태가 장기화하면서 국회를 참관한 학생들이 텅 빈 본 회의장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김경록 기자

2022년 초 미국 하원을 통과한 ‘반도체법’도 마찬가지다. 향후 5년간 반도체 분야에 60조원이 넘는 기술개발자금을 투입하고, 공급망 관리에 50조원 이상 투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특정산업 육성법안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작은 정부의 원칙하에 산업계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 자체를 터부시해왔다. 산업지원에 비교적 관대한 민주당도 중소기업이나 취약산업 지원 혹은 인프라 투자 외에 특정산업을 콕 집어 지원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은 트럼프 정부에서부터 초당파적으로 준비되기 시작해서 바이든 정부에서 통과되었다. 역시 중국의 도전과 글로벌 공급망의 혼동 속에 미국 산업의 미래가 위기에 처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산업이기에 반도체 산업의 예를 들었지만, 그 외에도 바이오와 에너지·환경·인공지능 등 다른 분야에서도 의회의 적극적인 역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의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기술선진국의 의회들이 서로 뒤질세라 잰걸음을 내딛고 있다. 요즘 기술선진국 의회들이 ‘열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이슈는 데이터법이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데이터 기반 첨단기술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서로 다른 목표 사이에 절묘한 선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각국 의회가 제시하는 데이터법의 원칙에 따라 정부 정책의 주안점과 기업의 전략적 선택, 그리고 기술개발의 방향이 결정되고, 나아가 그 국가의 기술주권 확보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의 믿음과 달리 기술은 과학적 논리로만 진화하지 않는다. 그 어떤 기술이라도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한 그 사회의 제도적 맥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이 결국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틀림없지만, 지형에 따라 굽고, 가로막히고, 갈라지다 합쳐지면서 다양한 모양으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기술혁신에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하고, 행정부가 쓸 예산을 정해주는 일을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법 제도를 만들고 고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센티브 체제라는 지형을 조정한다. 그에 따라 분야별 기술혁신의 속도가 달라지고, 어떤 분야에 자원이 몰릴지가 결정된다. 혁신적 기술은 연구실과 국회의 이인삼각 경주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오늘 국회의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시급한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탄소중립이나 디지털 전환 같은 국가적 전환 과제가 대표적이다. 원론에는 모두 동의하나 막상 각론에 들어가면 관련 분야 곳곳에서 기존 제도와 관행, 이해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을 만나게 된다. 이른바 규제개혁과 관련된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차량공유 서비스와 원격진료기술 도입, 대학정원 조정 등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서 우리 모두가 절감했던 일이다. 이런 규제개혁 과제들에서 국회의 제도 변화 없이 행정부가 기막힌 안을 낼 수 있다면 그동안 직무를 태만히 했던 것이고, 법의 테두리를 넘어 정책을 시행한다면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규제개혁 과제는 국회의 선제적 법 제도 개정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백신이나 양자컴퓨팅 기술처럼 장기간 막대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야도 많다. 모두 기술주권적 관점에서 중요하기 짝이 없는 분야들이다. 이런 곳에 국가적 자원이 흘러가도록 제도적 인센티브의 물길을 만들어주는 일도 국회의 중요한 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국회의 현실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회적 갈등 혹은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에 법 제도를 고치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핑계다. 사회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듣고, 충돌하는 가치 간에 우선순위를 이끌어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국회의 존립이유다. 그것을 하라고 투표를 하고 세비로 지원하는 것이다. 국회가 행정부처로 하여금 현행의 법 제도를 뛰어넘는 해법을 내라고 닦달하거나, 무책임하게 이해관계자들간의 타협안을 만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 더 최악으로는 반대 목소리가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뭉개고 있는 것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모범이니 따라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들도 로비스트 집단에 휘둘리고, 당파적 이해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을 항상 받는다. 그러나 최소한 한가지 교훈으로 삼을 점은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사돈관계도 맺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정파적 대립이 심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심하여 초당파적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우리 국회에서도 기술혁신을 진작하기 위한 초당파적 법안의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기술혁신의 문제를 과학기술계의 일, 혹은 과학기술 관련 상임위에 한정된 이슈로 취급하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경제안보와 외교를 이야기할 때 기술경쟁력 이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성장잠재력, 국방과 교육, 복지와 의료, 노동환경과 실업대책, 심지어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할 때도 기술은 이미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기술의 문제는 범 국회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대표적인 크로스 커팅 이슈다.

국회는 기술혁신 현장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믿거나 말거나 국가 연구개발사업의 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수치를 담은 보고서가 아직 돌아다닌다. 그 원인을 고구마 줄기 캐듯 따지고 들면 대체로 국회에 이른다. 특정 부처와 연구소, 혹은 연구사업의 성공률이나 사업화율이 저조하다는 국회의 문책성 질의가 여전하고, 담당부처 관료들과 산하기관 관계자들은 설명자료와 개선안을 만드느라 연일 회의 중이다. 재정당국은 좋은 명분을 잡은 듯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이 낮으니 예산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고, 사업화 성공률 같은 기관평가 지표에 현장의 분위기는 더 굳어간다. 국회의원들은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연구자들은 도전적인 과제 대신, 성공이 빤히 보이는 제안서를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연구자들이 순수한 과학기술의 논리에 따라 연구를 하는 것 같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인센티브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국회의 정치 감수성은 그지없이 높지만, 기술감수성은 그 어느 집단보다 낮다. 이제 국회 스스로 기술혁신이 국가의 미래 존립을 결정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술혁신을 진작하기 위해 초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국회발 소식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갑갑하기 짝이 없는 정치 관련 뉴스 건수의 반의반만이라도 되길 바란다.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