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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경의 법률리뷰

분류할 수 없는 또는 분류하기 어려운 성(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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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요즘 ‘이대녀, 이대남’이 남녀갈등의 대표어로 불린다. 청년들의 갈등이 심각한 정도를 넘어 전쟁으로 치달을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여기에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남녀 이외에 ‘제3의 성’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다. 인간의 모든 차별을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마다 성별의 정의에 ‘분류할 수 없는 또는 분류하기 어려운 성’을 추가하고 있다. 안 그래도 갈라지고 쪼개진 게 많은 대한민국, 혹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로 치닫는 건 아닌지 슬며시 노파심도 든다.

사실 성별을 새로 정의하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 구분을 없애 혼인과 가족제도를 재편성하고, 모든 사회체제의 근간을 확 바꾸려는 시도다. 인류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거창한 포부기도 하다. 헌법이 규정한 전통적 가족제도를 손보려는 이유는 “성별 이분법을 유지하는 이성애 중심사회”를 차별로 보기 때문이다. 아예 가족제도 자체를 차별과 혐오의 원천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혼인을 1남 1녀의 결합으로 묶어둘 게 아니라, 동성결혼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이유다. 이렇듯 ‘다양한 종류의 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건 ‘그래도 좋다’ 또는 ‘그래야 한다’까지 용인하는 것이고, 트렌스젠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듯 트랜스 휴머니즘의 문도 활짝 열겠다는 뜻이다.

차별·혐오를 가족제도 탓 돌려
남녀에 이은 ‘제3의 성’ 움직임
‘자기결정권’ 한계 명확치 않아
열띤 토론해 국민의사 물어야

법률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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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직업병이 슬슬 발동했다. 일단 법 만능주의식 일방통행이 불편하다. 법 요건의 심각한 훼손, 법 혼란의 무책임한 방치도 우려스럽다. ‘분류할 수 없는 또는 분류하기 어려운 성’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분류할 건가? 법은 명확해야 하는데 말이다. 상황과 기분대로 물처럼 움직이는 성, 남녀 반반인 성, 무성(無性) 등 다양한 성(性)을 상상해 본다.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 건지 궁금도 하다. 제3의 성이 초래할 수많은 법률관계는 어떻게 정리할 생각인지 청사진 하나 없이 오로지 감성 투쟁 일변도인 점도 마음에 걸린다. 미래의 삶에 대한 안내서 정도는 제공하는 게 맞지 않나. 당장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률은 어떻게 손질할 건지, 부모(父母), 부부(夫婦) 등 성 구별적 용어는 모두 폐지할 건지, 출생증명서·주민등록증·여권 등에 ‘제3의 성’을 어떻게 표기할 건지 ‘알 권리’부터 충족해줘야 한다.

실은 개념부터 모호한 제3의 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성 소수자 할당제 등 각종 우대조치를 받기 위해 제3의 성을 자처하는 사람은 없을지, 생물학적 ‘남성’이 입대를 앞두고 성별 인식이 ‘여성’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진 않을지 머릿속이 꽤 복잡하다.

언제부턴지 정상과 비정상을 인정하지 않는 ‘주관화 경향’이 대한민국을 뒤덮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든 옳고 그름의 문제를 주관적으로 해석한다. 차별금지법의 숨은 본질도 나의 주관을 강조한 ‘자기결정권’이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불합치 결정도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은 여성의 전인격적 결정이니 태아의 생명권보다 보장해 주라는 거였고, 간통죄 폐지도 혼인과 가정의 유지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앞세운 거였다. 최근 대법원의 ‘동성 간 성행위’ 무죄 파기도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내세웠다. 안락사 문제도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한 권리’란 미명으로 성큼 다가오지 않았나.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대한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 말은 너무도 고귀하다. 그러나 삶의 모든 의사결정, 심지어 성별의 결정까지도 나 자신이 하겠다는 게 인간의 마땅한 권리라고 단정할 수 있나. 혹여 ‘자기결정권’이란 이름을 달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내달리는 건 아닌가. ‘나’를 우상으로 삼는 이 시대, 쌓여가는 작은 탄식들만 무색하다.

이제 대한민국이 ‘남녀’를 대체하는 ‘다양한 종류의 성’을 인정하고, ‘가족’의 정의도 바꾸려 한다면, 밀어붙이기식 공청회 몇 번으론 곤란하다. 열띤 토론을 반복해 국민 의사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최근 과격하게 추진 중인 이 대담한 시도가 인류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진보를 알리는 횃불’일지, ‘폐허를 만드는 화재’일지 말이다. 나는 ‘인간이 경험치 못한 가장 위험한 또는 가장 혁명적인 시도’라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진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