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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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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가 체결하는 모든 계약은 경쟁계약으로 이뤄진다. 해당 계약을 맺길 원하는 여러 업체를 경쟁시켜 가장 유리한 계약 내용을 제시하는 곳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입찰이나 경매가 일반적이다.

예컨대 새 청사를 짓는다는 공고를 내면 해당 공사를 맡길 원하는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한다. 그중 공사가격을 가장 낮게 제시한 업체(최저가낙찰제) 혹은 공사가격이 가장 낮지 않아도 좋은 자재나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업체(제한적 평균 낙찰제) 등을 선정한다.

정부가 맺는 공사 도급이나 국·공유 자산 매각(불하), 관용품 구매 계약까지 원칙적으로 경쟁계약이다. 공정성을 지키고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요즘은 민간기업도 대부분 발주를 경쟁계약으로 진행한다. 해당 업체 선정을 두고 가타부타 논란 방지 효과는 물론이고 입찰에 참여한 업체간 경쟁을 통해 보다 유리한 계약 내용을 끌어낼 수 있어서다.

예외도 있다.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해 맺는 계약, 즉 수의계약이다. 지자체장이나 해당 계약 담당자가 계약의 목적·성질·규모·지역 특수성 등을 고려해 수의계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다. 그런데 그간 수의계약은 온갖 비리의 중심에 있었다. 시의원이나 지자체장의 가족이나 지인이 해당 지자체와 수의계약을 맺어 이익을 취한 사건은 셀 수 없다. 부처 공무원이 내부 정보를 활용, 수의계약으로 토지를 사들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기도 했다. 수의계약이 부정 축재의 치트키(Cheat Key, 게임 제작자만 알고 있는 속임수)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리모델링 공사 때문에 시끄럽다. 지난해 12월 창업한 신생업체에 간유리(불투명유리)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맡겨서다. 실제 기술자가 1명뿐인 영세한 업체라든가, 이미 보안성 검토를 마친 다른 업체가 있었다든가, 선정기준을 밝히라든가…. 이런 지적에 대통령실은 “공사 진행이 긴급해 수의계약했다”고 해명했다.

잘 익은 자두가 열린 나무 아래서 모자를 고쳐 쓰려고 손을 뻗어 올리면 자두를 따는 것처럼 보인다(李下不正冠). 남에게 의심받을 짓을 삼가라는 의미다.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새 정부의 몸가짐이 보다 진중해야지 싶다.